2020. 8. 2. 12:4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기본소득의 가치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것이 대안인지는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
진정 절박한 사람을 위한다면 ‘필요’ 기반 복지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기본소득은 고발한다. 기존 복지체제가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절박한 생계로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청년에게는 온전한 일자리가 제공되지 못하며, 아무리 일해도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도 많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 시대까지 이야기되니 사람들의 불안도 깊어진다. 이제 기존 분배체제는 유효하지 않다! 기본소득은 열망한다. 사회로부터 배당을 받는 세상을. 이는 빈약한 소득으로 사는 시민들에게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엄청난 재정이 든다지만 다수가 낸 것보다 많은 기본소득을 받기에 증세 정치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이야말로 복지 사각지대와 증세 장벽에 갇혀 있는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시대 비전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주로 복지 사각지대의 빈곤층, 가난한 청년과 불안정 노동자들을 호명한다. 그런데 호명된 사람뿐만 아니라 괜찮은 소득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려니 소액일 수밖에 없다. 90조원에 육박하는 올해 보건복지부 총지출을 모두 기본소득에 사용해도 월 15만원에 그친다.
그래도 몇만 원이나마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으니 지금보다 낫다고 해야 할까. 옹호자들은 재원을 누진적으로 마련하면 재분배도 구현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공공재정은 애초 재분배를 지향하는 돈이다. 만약 같은 재정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훨씬 증진된 재분배를 이룰 수 있다. 호명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면서 말이다.
보편적 복지의 원리인 ‘필요(needs)’ 기반 급여에 충실하자. 현재 소득이 아예 없는 최빈곤층에게는 1인당 월 53만원, 실업으로 소득이 단절된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 약 월 180만원, 일하고 있지만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근로장려금으로 최대 연 150만~360만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노동시장 밖에 있지만 사회적 필요를 인정해 아동에게는 월 10만원, 대다수 노인에게는 월 30만원을 제공한다. 올해 이 다섯 가지 제도에 소요된 재정은 약 40조원이다. 예산의 제약으로 자격 심사가 과도하고 금액도 충분하지 않다. 만약 40조원을 추가할 수 있다면 대상도 대폭 늘어나고 금액도 크게 오를 수 있다.
물론 심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와 낙인 문제가 가볍지 않다.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동시에 이는 기본소득도 마주해야 하는 과제임을 직시하자. 기본소득이 53만원을 훨씬 넘지 않는 한 생계급여제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기본소득이 180만원을 넘지 않는 한 실업급여도 계속 운영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을 시행해도 아주 오랫동안 맞춤형 현금 급여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현행 복지체제를 지나치게 불신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세청 역할, 과세에서 복지로
마침내 코로나 재난으로 복지체제를 혁신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시작으로 4대 사회보험의 토대를 ‘자격’에서 ‘소득’으로 전면 전환하면 사각지대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국세청의 행정 역할을 과세에서 복지체계로 확장하면 취약계층 복지도 한층 촘촘하게 정비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금을 강화해 저소득계층 소득을 보강하고, 사회보험으로 전체 취업자의 소득, 질병, 산재, 은퇴 위험에 대응하는 복지체제 혁신이다. 사회수당도 대폭 확장하자. 아동수당을 청소년수당으로 확대하고, 사실상 청년수당 격인 최초구직자수당을 시행하며, 예술인과 농민처럼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집단에게 직능수당을 신설하자. 혁신 복지체제는 기본소득보다는 훨씬 적지만 당연히 추가 재정을 요구한다. 증세 정치가 신뢰와 연대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실질적 안전망이 강화된다면 세입 확충도 가능한 일이라 판단한다.
인구 대다수가 노동에서 해방(혹은 배제)되는 인공지능 시대라면, 소득 보장은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방식으로 전화할 것이다. 대다수가 동일 수준의 현금지원 필요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용률 66%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분배를 상상하되, 진정 절박한 사람을 위한다면 지금은 ‘필요’ 기반 복지체제를 공고히 할 때이다.
editor@sisain.co.kr
* 출처 : 시사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27262?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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