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스웨덴 거리에 넘쳐나는 휠체어와 유모차를 보고

2012. 5. 21. 18: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사, 복지국가를 꿈꾸다!




_이진희 대전사회복지사협회 사무국장


10여 년 전 일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도착한 후,지리도 익히고 필요한 물품도 챙길 겸 가장 번화하다는 곳으로 나갔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로서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번잡하다는 곳에서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노인들, 유모차를 탄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이나 불편 없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사회복지사라서, 한국에서는 접해 보지를 못해서, 그 모습이 나를 사로잡은 것일까? 사람이 사는 사회의 그저 평범한 풍경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스톡홀름에서 '생활 구역 차별이 없는 도시'를 만나다

나는 그 당시 우리나라 도시 중심부 한복판에서 그들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들이 살고 있었을 텐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나는 당시 우리 사회를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야만 그 안에서 안도할 수 있는 사회로 기억한다. 지금도 나는 복지에 관한 한 우리 사회를 이렇게 느낀다. 구역이 분리되어 노인과 아이의 영역이 다르고 부자와 가난한자의 자리가 다르며, 장애인이 사는 곳이 구분되는 사회, 대한민국에서는 '가치 있는 자'와 '가치 없는 자'가 따로 떨어져 산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스웨덴 사회의 사회통합을 말하려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부족함을 들추려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스웨덴과 같은 복지모델이 회자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들 한다. 내 자신도 스웨덴의 전통과 문화, 견고한 노동조합, 정치적 합의, 국가에 대한 신뢰 등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 놓은 복지국가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따라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복지국가는 그 나라의 것이라 부러워하기만 했다.

▲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 요구안'에 서명하는 장애인ⓒ프레시안(김윤나영)



복지국가, 희망은 보았으나…

그러나 이제 희망을 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란이 전국을 휩쓸었고, 4.11 총선에서도 각 정당들의 복지공약이 넘쳐나면서 복지이슈가 선거의 전면에 등장했다. 복지 문제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선거 이슈로 등장한 것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복지국가, 보편적 복지가 대한민국 화두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해 보았을까?

그러나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했던가?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을 찾고, 상인들이나 지나가는 서민들과 악수와 포옹을 하며,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지원을 약속하는 이른바 정치권의 민생투어는 단지 표심을 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정치권 인사들의 태도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진정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진정한 복지국가로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이념적 뿌리가 없이 선거 득표만을 위해 움직여온 한국 정치의 한계를 다시 본다.

우리는 왜 늘 그래 왔을까? 진정한 복지국가를 건설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장과 국가 사이의 선택을 둘러싼 치열한 이념적 논쟁을 거쳐야 하고, 자본이나 노동,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어 온 우리에게는 스웨덴을 닮은 보편적 복지국가는 이상형일 뿐이며, 이를 토대로 한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우리의 풍토에서는 반복지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복지국가를 향한 불씨를 살리고 우리의 복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자면 정치인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운동으로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복지운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복지문제에 관하여 정치권의 허풍 섞인 논리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근래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2008년 광화문 거리를 밝힌 촛불시위, 무상급식운동, 희망버스, SNS를 통한 선거참여 등이 그것이다.

나는 사회복지사이다. 시민의 복지운동을 활성화하는데,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의 윤리강령을 보면, 전문에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사회제도 개선과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사회복지사가 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우리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사회복지사들은 복지수급자나 취약계층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서비스를 전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처음 듣고 아는 정책집행자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그들에 대한 이해나 실천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정치권의 의사결정자와 그들 사이의 정보의 흐름을 연결함으로써 사회복지정책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앞에 놓인 걸림돌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복지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동안 왜 사회복지계가 사회복지 관련 정책이나 논의에 소극적이었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일상 업무의 분주함 속에서 정책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수급자에 대한 즉각적인 원조의 필요성 때문에 시간을 요하는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실천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 실천에 대한 순수성을 지키고자 이념이나 정책으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원할 수도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정치 참여나 사회 행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이직 및 소진(burn-out)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과중한 근무시간, 열악한 보수, 비정규직 지위, 낮은 직장만족도 등으로 인해 사회복지사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역할을 다하거나 특히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둘째, 사회복지 교육과정이나 실천현장에서 개인, 가족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미시적 실천과 사회제도나 정책을 다루는 거시적 실천 사이의 연계가 부족하다. 실천현장에서의 개인과 가족에 대한 직접서비스는 사회개혁이나 사회정의에 관한 이슈로부터 벗어나 상담이나 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교육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전공영역도 직접실천과 행정 및 정책영역으로 나뉘어져 서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 오고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들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강요되는 일종의 소명의식이다. 사회복지실천은 헌신과 봉사라는 전통적 관념 때문에 사회복지사들은 스스로의 열악한 처우나 근로조건을 감내해야 하며, 그들 스스로나 사회복지 대상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활동이 단기적으로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때문에 그들은 복지의 증진이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사회적 행동에 소극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최근 화두가 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에서 우리의 복지사회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우리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회복지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물론 현재 사회복지사들이 처하고 있는 불편한 여건들로 인하여 바람이 바람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우리의 의식전환과 새로운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기대해 본다.

먼저 사회복지사들이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대변해야 하는 그들의 옹호자임을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들이 할 수 있는 옹호전략은 사회복지서비스에 있어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것이 단순한 조건이 아닌 문제라는 것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문제의 공론화를 위해서는 관련 단체나 집단과 제휴하며,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일반 시민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 연계망(network)을 구축하는 일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지역사회의 각종 복지기관이나 단체들에서 실천하고 있는 실천가들 사이의 결속에 힘쓰는 것은 물론이고, 풀뿌리 시민들,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긴밀한 연대를 모색하여 사회 저변으로부터 복지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권한부여(empowerment) 활동을 전개하여 그들의 사회적 권리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복지운동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복지권운동으로서 복지수혜자집단, 시민운동가, 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전공 학생, 사회복지사협회 등의 참여와 지원으로 복지국가실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지역에서 '복지국가 사회복지연대'를 결성하였고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복지국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이와 같은 지역단위의 결성체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교육현장이나 실천현장에서, 그리고 사회복지사들 스스로가 실천과 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정책이 어떻게 실천에 영향을 미치고, 실천이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인식하며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길, 사회복지사가 개척하자

사회복지사가 배제된, 아니 스스로 참여하기를 포기한 복지국가 논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도 그러하다면 복지국가 바람은 이룰 수 없는 희망사항으로만 남지 않겠는가? 이제 사회복지사들이 나서야 한다. 복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목소리를 낸다면,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의가 풍성해 질 것이며, 복지국가 운동도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에게 길을 묻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사들이 만들어가는 복지국가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