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4. 14:57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 감염 가능성에도 긴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권진 예명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비롯한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득과 건강, 그리고 정보의 불평등도에 따라서 그 대상이 가려졌습니다.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여실하게 드러난 셈입니다.
우연히 눈길이 간 한 뉴스 영상에서,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푸드뱅크 서비스를 받기 위하여 길게 서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마치 그들이 맛집에 줄을 서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맛집에 줄을 서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기다리는 풍경은 요즘 사회에서 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푸드 팬트리(food pantries)의 입구로부터 늘어진 몇백 미터의 긴 행렬을 본 순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식이 부족하다는 것, 결식의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지난 과거의 옛 일처럼 여겨지는 듯합니다. 아시아개발은행(Asia development bank)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극빈곤층 비율(1일 1,90$ 미만)은 0.2%로 나타나고 있으며, 5세 미만 아동의 영양부족 비율 또한 2.5%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의식주 기본 생활 여건 수준의 상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기준으로 끼니를 거르거나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18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이 31만 명이 넘는다는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보면, 비율의 문제가 아닌 절대 숫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푸드뱅크는 IMF 외환위기와 함께 태동하여 성장하였습니다. 당시 폭발적으로 증가한 실업자, 노숙인 등과 노인, 장애인, 취약 아동의 결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민간의 자발적 음식 나눔 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이를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 사업으로 확대시킨 대표적인 민관협력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약 2200억 원에 달하는 식품 및 생활용품 모집 실적을 가지고 있고, 전국적으로 400개소가 넘는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국의 수많은 취약계층이 푸드뱅크 서비스의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업과 개인의 식품 및 생활용품 기부품을 무상으로 지원받으며 일상을 보다 건강하게 영위해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국 푸드뱅크의 긴 행렬을 바라보며 한국에서도 그러하겠거니 생각을 했습니다만, 불행히도 한국의 푸드뱅크는 멈춰있었습니다. 사업을 멈출 수밖에 없는 일면 타당한 이유들이 공존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바이러스의 전파장소가 되었더라면, 푸드뱅크나 푸드마켓 이용자 중 확진자가 발생했더라면, 그 비난과 원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취약계층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이나 가족의 굶주림이 해결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대로 먹을 것 없이 하루하루 버티느니,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을 안고서라도 푸드뱅크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그 긴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푸드뱅크는 기부를 받아 무상으로 전달하는 복지 시스템입니다. 현금이 아닌 현물이라는 특성과, 그중에서도 주로 식품을 다룬다는 특수성 때문에 전문성도 필요하고 기부 물품의 수집과 배분에 있어서 충분한 시설과 장비도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전반을 이해하는 인력 또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푸드뱅크 사업이 도입된지 불과 20여 년 만에 기부-배분이 2000억 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비결은 이 사업을 지원하는 공공영역(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과 이를 운영하는 민간영역의 합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사태에서 푸드뱅크는 공공의 정보력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민간이 수행하고 전달하는 복지 시스템으로서의 그 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오히려 공공과 민간의 협력적 운영이다 보니 서구와 같은 순수 민간 자원봉사의 기치 아래, 코로나 사태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취약계층을 지원하고 더 많은 후원물품과 후원금을 모집하는 '위기 속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지원하고 민간이 수행하는 협력적 거버넌스가 위기의 상황에서 한발 물러서 안정을 택하였다는 점은 일면 타당하면서도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푸드뱅크 사업은 공공과 민간이라는 두 운영주체 중 어느 한쪽의 관심만 소홀하더라도 운영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법적으로는 중앙 및 지방정부에서 사업의 운영비 또는 사업비를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의무사항은 아니나, 푸드뱅크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몇몇 지자체에서는 예산에 반영하여 사업운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의 결식을 완화하여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최일선 전달체계인 푸드뱅크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여 이를 수행하는 공공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국의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단 20개 지자체만이 조례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푸드뱅크를 지원하고 있고, 이는 전체 기초지차체 중 8.8%에만 해당됩니다. 즉 기초지자체들의 관심이 부족하고 운영에 있어서 실제적인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박미현, 임은의, 임유진, 2020).
Global Foodbanking Network(이하 GFN)는 전 세계 국가들의 푸드뱅크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고 푸드뱅크가 없는 국가에 푸드뱅크 시스템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국제 NGO 단체입니다. GFN에서 한국 푸드뱅크 사례를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하여야 할 운영시스템으로 손꼽았고, 이러한 평가의 핵심은 한국의 정부-민간 협력적 운영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정립하여 몽골과 베트남에 전수하기도 하였고, 앞으로 더 많은 동아시아 내 국가들에 한국형 푸드뱅크 시스템을 전수할 것입니다. 한국형 복지시스템이 외국에 전파되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러한 대외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사업 내적으로는 당면한 과제 많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밝혀졌습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한끼 식사권리를 보장하고 기부를 활성화 시킨다는 기본 목적에 부합되지 못한 점, 그리고 사업의 성장에 걸맞지 않게 지자체의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 이 두가지 부분은 앞으로 한국의 푸드뱅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어느덧 7월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코로나 가을 대유행의 시즌이 다가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우수한 방역과 마스크 5부제를 정착시킨 대한민국입니다. 소외된 이웃의 한끼 식사가 끊어지지 않은 채로 이 어려운 시기를 다같이 이겨내기 바랍니다. 푸드뱅크,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131557456754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 내만복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만복 칼럼] 정부의 빈곤 정책이 가난한 사람을 사라지게 했다 (0) | 2020.07.28 |
---|---|
[내만복 칼럼] 세법개정안,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이유 (0) | 2020.07.25 |
[내만복 칼럼] 형제복지원 사건, '과거사' 아닌 '현재사'다 (0) | 2020.07.08 |
[내만복칼럼] 복지급여의 빈약과 최저임금의 과잉정치화 (0) | 2020.06.30 |
[내만복 칼럼] "이태원에서 혹여 게이인 게 들킬까 봐 무섭다고 했어" (0) | 202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