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연금개혁에서 미래 세대는 어디에

2019. 3. 13. 19:0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가 4월 활동시한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회의에선 경영계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국민연금)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상은 동시에 추진하되, 보험료와 연금급여의 수급불균형을 줄여나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더 내고 더 받으면서 지속 가능성까지 도모하니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의 이해를 고려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회의록을 보면 실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대체율을 올리면서 기존의 수지불균형까지 줄이려면 보험료율 인상 폭이 무척 커진다. 현재 보험료율이 9%이지만 연금수리적으로 대체율 40%에 부합하는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2배인 18% 안팎이고 여기서 대체율을 올리면 필요보험료율은 20%가 넘는다. 그런데도 정부안은 대체율을 45~50%로 높이면서 보험료율은 12~13%에 그치고 연금특위 다수의 의견도 정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서민 가계의 어려움과 국민연금기금의 과대화를 생각하면 큰 폭의 보험료율 인상을 제안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결국 추가 대체율만큼만 보험료율을 올리니 기존 수지불균형은 사실상 방치된다. 회의에서 세운 원칙은 그럴듯하나 현재 세대의 이해에만 충실하다. 


연금개혁에서 사회적 대화는 특별하다.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카풀, 신공항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 대부분은 현재 세대끼리 논의하면 된다. 반면 연금은 나중에 받을 금액을 우리가 결정하지만 실제 받는 건 수십년 이후이다. 연금개혁이 정작 연금을 지급할 미래 세대를 감안하는 ‘세대 간 계약’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의사결정권은 우리 세대가 갖지만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미래 세대를 보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연금특위에 청년 대표들이 참여한다고? 엄밀히 따지면 연금 논의에서 미래 세대는 아직 국민연금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청소년과 아이들이다. 


지금 청년은 현행 대체율과 보험료율이 적용되는, 어쩌면 국민연금에서 처음으로 세대 간 갈등에 직면할 현재 세대일 수 있다. 사람들이 보통 기금소진연도 2057년에 관심을 두지만 연금정치에서 먼저 주목할 시기는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는 2042년, 앞으로 23년 후이다.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이 조금 올라도 인상 속도마저 점진적이어서 적자 시점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이때 자신이 가입할 때부터 재정이 적자로 들어서기에 신규 가입자가 국민연금에서 느끼는 불안과 위협은 실질적이다. 어찌 이렇게 제도를 놔두었느냐는 이들의 항의에 대답해야 하는 주체는 그때 중장년, 바로 지금 청년이다. 발등에 떨어진 재정안정화 과제를 두고 미래의 청년들과 홍역을 치를 것이다. 나를 포함한 중장년은? 괜찮다. 조만간 법제화될 ‘국가의 지급 보장’에 따라 연금을 받을 뿐이다.


주위 청년들이 이야기한다. 우리도 노후가 불안하니 국민연금 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취지는 공감하지만 대체율 인상은 현재 노동시장 상황에서 가입기간이 긴 중상위 계층일수록 혜택을 더 가져가고, 또한 필요보험료율 수위를 높여 향후 연금개혁 논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후보장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보다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보강해 노후를 대비하는 다층연금체계가 공평성과 지속 가능성에 부합한다. 이는 앞으로 국민연금을 이끌어갈 선배로서 미래 후배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근래 논란이 되는 ‘청년 국민연금’도 우리 세대만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기도가 18세가 되는 청년에게 국민연금 첫 보험료를 대납해주겠단다. 아직 의무가입 대상은 아니지만 일찍 보험료를 한번이라도 내면 나중에 이후 기간을 추후 납부할 수 있기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그런데 이미 현행 제도에서도 자동가입되는 27세부터는 추후 납부가 가능하다. 65세까지 38년의 납부가능기간이 열려 있는데, 굳이 추후 납부 기회를 더 늘려야 할까. 나중에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유리한 이 사업이 지금 그토록 절실한 ‘청년정책’에 속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래 청년이 또 묻는다. 국민연금의 수지불균형으로 인해 가입자 혜택이 크다면 제도를 고쳐야지 지자체까지 나서서 그 틈새를 활용하다니요? 


서구에서 공적연금은 세대 간 연대가 낳은 열매이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세대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가? 서구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이 심각함에도 미래는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지 말자는 윤리론에 안주한다. 덕분에 머지않아 나도 그 혜택을 받겠지만 말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122041015&code=990308#csidxe81c9b8baadc40b9751587ac3b97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