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퇴직연금을 공적연금으로 전환하자

2019. 3. 8. 17:1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⑨ 퇴직연금, 중상위 계층 노후 소득 보장 제도




<1회> 문재인 정부 연금안 평가 : 재정 개혁 방기
<2회> 국민연금 재정 계산 : 70년 계산 믿을 수 없다?
<3회> 국민연금의 특징 : 미래 재정 불안정
<4회>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 : 재정 균형
<5회> 외국에서 연금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
<6회>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 가능한가?
<7회> 국민연금의 역설 : 재분배 vs. 역진성
<8회> 기초연금의 강점 : 사각지대 없는 노인 기본소득
<9회> 퇴직연금의 잠재성 : 중상위계층 노후 소득 보장
<10회> 연금 개혁 대안 : 한국형 다층 연금 체계



근래 한국에서 다층 연금 체계를 논의할 때 등장하는 제도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민간이 관리하는 사적 연금이고 아직 연금으로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엄연히 법정 연금으로서 위상을 지닌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령사회에서 국민연금, 기초연금만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도 논의의 중요한 배경이다. 2007년까지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연금밖에 없었지만 이후 기초연금이 도입되어 이원 체계가 자리잡았다. 법정 의무 제도로서 퇴직연금까지 연금으로 성숙된다면 명실상부한 다층 연금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기대이다.

퇴직금이 퇴직연금으로 

한국은 1961년에 법정 의무로 퇴직금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금은 회사에서 퇴직했을 때 지불하는 '후불 임금'의 성격이 강했다. 동시에 당시 공적 연금이 없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중장년 이후 은퇴하는 사람에게는 노후 대책의 의미도 지녔다.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근로자 퇴직급여제도의 설정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안 제안 이유"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여 현재 일시금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 노후 소득재원 확충을 통한 근로자의 노후 생활안정에 기여하려는 것임. 


이 퇴직금 제도는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제정되면서 퇴직연금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법 제1조(목적)는 퇴직연금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으로 명시한다. 법안을 제안한 이유도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여 현재 일시금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 노후 소득 재원 확충을 통한 근로자의 노후 생활 안정에 기여"한다는 취지를 명확히 밝혔다. 이 법에 의하면 퇴직연금에게 공식적으로 '연금'으로서 위상이 부여된 셈이다. 
 


서구의 퇴직연금은 거의가 산별 협약에 의해 도입되고 운영된다. 이와 비해 한국은 법률에 의해 시행되므로 퇴직연금의 제도적 근거가 훨씬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퇴직연금, 다층연금체계를 구성한다. 

퇴직연금은 서구에서 다층 연금 체계의 한 층으로 다루어진다. <그림 1>에서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후 소득 보장 연금 체계를 보면, 1층은 가장 최소한의 기초 보장 성격의 제도로서 기초연금, 2층은 젊었을 때 소득을 보전하는 의무적 제도로서 공적 연금인 소득 비례 연금과 사적 연금인 퇴직연금이 자리잡고 있다. 3층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개인 연금이다.  

여기서 OECD가 주목하는 제도는 의무적 연금이다. 개인이 임의로 가입하는 개인 연금을 빼고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의무적 연금이 그 나라의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기초연금, 소득 비례 연금, 퇴직연금이 의무적 연금에 속한다.

ⓒ프레시안(이한나)


외국에서 산별협약으로 도입되는 퇴직연금이 어떻게 '의무적' 연금일 수 있을까? OECD는 민간이 운영하더라도 노동자 대다수에게 적용된다면 '의무적' 연금으로 간주한다. 노사 단체교섭에 의하더라도 퇴직연금이 전체 노동자의 85% 이상에게 적용되면 이에 해당한다. 

<표 1>은 OECD 나라들의 의무적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보여준다. 이 수치들은 현재가 아니라 나라별로 정해진 향후 개혁 내용을 반영한 2060년 즈음의 전망치이다. 즉 지금 신규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연금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공적 연금 소득대체율은 회원국 평균 40.6%인데, 소득 비례 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까지 포함된 수치임을 유의하자. 

ⓒ프레시안(이한나)

   
현재 OECD 35개국에서 의무적 퇴직연금을 운영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스웨덴 등 12개에 이른다. 소득대체율은 덴마크, 네덜란드가 약 70% 수준으로 높고 노르웨이는 6%로 낮지만 대부분 18~34% 사이이다. 공적연금 평균 소득대체율이 40.6%임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그리 낮은 건 아니다. 공적연금에 퇴직연금을 합쳐 계산하면 의무적 연금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52.9%에 이른다. 

퇴직연금 소득대체율 : 국민연금의 절반 수준 

우리나라 의무적 연금의 소득보장성은 어느 수준일까? 우선 공적연금을 보자. OECD 전망치에 따르면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9.3%로 회원국 평균에 근접한다. 한국의 소득대체율 계산 방식을 두고 논점이 존재하지만(소득대체율 기준 소득의 차이, 기초연금의 미포함 등), 여러 요인을 상쇄시키면 이 수치는 유의미하다. 미래 우리나라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과 비슷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의무적 사적 연금까지 포함한 소득대체율을 비교하면, 한국의 노후 소득 보장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OECD 평균은 52.9%로 상향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대로 39.3%이다. 한국의 퇴직연금은 법에 따른 제도이지만 의무적 연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이 1년 이상 가입된 상시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퇴직연금은 법적으로,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하는 제도이다. 앞으로 연금으로 제 역할을 발휘되도록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퇴직연금은 사용자가 1년에 한 달 치 월급을 기여하니 보험료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8.3%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9%와 비슷한 수준이니 결코 작은 제도가 아니다. 

ⓒ프레시안(이한나)

  
<표 2>에서 보듯이, 퇴직연금을 수지 균형에 부합하도록 계산하면 소득대체율이 21%에 달한다. 근래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해 이보다 소득대체율이 낮게 제시되는 분석도 있지만, 이 소득대체율은 확정 급여형을 기준으로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서 사용된 변수들을 적용한 결과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2배가 다소 넘으므로 8.3%의 기여율에 조응하는 소득대체율이 20%보다 낮을 듯하지만, 퇴직연금에는 유족연금 등의 급여가 없으므로 대략 20% 수준의 소득대체율이 도출된다)  

연금액으로 계산하면, 40년 가입 기준 평균 소득자는 48만 원이다. 만약 25년을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실제 받는 퇴직연금액은 월 30만 원이다. 특히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기여금을 내는 소득에 상한이 없다. 국민연금 기준 상한소득자(468만 원)가 30년 가입하면 약 75만 원 받고, 소득이 더 높으면 퇴직연금액도 더 많은 것이다. 중상위계층 노동자에게는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 대책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퇴직연금이 지닌 세 가지 한계 

하지만 서구에서는 의무적 연금으로 인정받는 퇴직연금이 한국에서는 '연금'으로서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이에 다층 연금 체계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퇴직연금이 아직은 거의가 일시금으로 수령하지만, 기금이 회사 밖에 적립되는 법정 제도여서 연금으로서 성장할 DNA를 지녔다고 기대한다. 반면 비판적인 쪽에서는 앞으로도 노동시장 조건을 감안할 때, 조기 은퇴와 국민연금 수령 사이에서 '가교 연금' 역할을 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한쪽은 바람이 담긴 기대를, 한쪽은 현실을 반영한 주장이기에 모두 경청할 내용이다. 

그만큼 퇴직연금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소득대체율에서는 국민연금 절반 수준이지만 명실상부한 연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첫째, 가입 대상이 보편적이지 않다. 퇴직연금은 1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에게만 해당된다. 2017년 기준 경제 활동 인구 조사에서 임금노동자가 약 2000만 명인데,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는 1083명에 머문다. 노동자의 절반만을 포괄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퇴직연금이 모든 경제 활동 인구를 포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퇴직연금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1년 미만 근로자(계속근로기간 3개월 이상) 퇴직 급여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정규 노동자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직 퇴직금 제도를 그대로 운영하는 사업장도 많다. 2017년 퇴직연금 가입자는 전체 가입대상 1083만 명의 딱 절반인 약 540만 명이다. 퇴직연금 가입 대상이 점차 퇴직금에서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전환을 추진하는 정책도 이러한 방향에 부합한다. 

둘째, 수급자 대부분이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표 3>을 보면, 2017년 퇴직연금 수급 개시자 중 연금 형태로 수령한 비율은 1.9%에 그친다. 아직 퇴직연금이 연금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핵심 근거이다.  

ⓒ프레시안(이한나)

  
앞으로는 연금 형태 수령자가 늘어날 수 있을까? 당분간은 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퇴직연금이 연금제도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성숙 단계까지 기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퇴직연금이 도입된 건 2006년이다. 아직 10년을 조금 넘은 기간이어서 적립액이 적어 연금 수령으로 발전하기에는 적립액 크기에서 구조적 제약을 지닌다. 

<표 4>의 퇴직연금 수령액을 보면, 일시금의 경우 1인당 1649만 원에 불과하다. 매월 연금으로 쪼깨 받기에 너무도 금액이 적다. 이와 비교해 소수이지만 연금 형태로 퇴직연금을 받는 사람은 적립금이 1인당 2억 3000만 원으로 일시금 수령에 비해 14배나 많다. 

ⓒ프레시안(이한나)

  
 
이에 생애기간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 향후 퇴직연금 역사가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적립액도 커지리라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중간해지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현재는 노동자가 회사에서 나오면 퇴직연금이 '개인형 퇴직연금(IRA)' 계좌로 전환되고, 이후 이 계좌를 유지할 수도, 해지해서 전액 수령할 수도 있다. 사실상 중간 해지가 자유로운 상황이다. 이러한 방식에선 은퇴까지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나기 어렵다. 

일시금 대신 연금 수령을 독려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연금 형태 수령에 따른 정책적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금 형태로 이끌어야 한다. 

셋째, 현재의 조기 은퇴 상황에서는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 대책보다는 은퇴에서 노후까지 '가교연금'에 머물 개연성이 크다. 퇴직연금은 55세부터 수령한다. 2019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2세이지만 앞으로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될 예정이다. 퇴직연금이 노인이 되기까지 생활비를 충당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구조이다.  

공적 연금 수급 개시 연령까지 소득 단절 기간이 최소화되도록 '점진적 은퇴' 방안이 절실하다. 대담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년 노동자의 노동시간 피크제를 통한 고용/노동시간/여가의 조합, 노인 역할을 확충하는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 등 '노후의 재구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요청된다. 이래야 퇴직연금도 노후 다층연금체계의 하나의 기둥으로 온전히 발전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공적연금으로 전환하자 

퇴직연금이 위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까? 쉬일 일이 아니지만 초고령사회에서 노후 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물론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 연금 체계의 완성은 상당한 시간이 요하는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지속적으로 연금 형태 수령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동시에 노인들이 '점진적 은퇴' 과정을 밟도록 노동시장을 혁신해 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퇴직연금의 전망을 세워가자. 

첫째, 퇴직연금은 다층 연금 체계에서 중상위계층의 노후 소득 보장 대책으로 위상을 지닐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격차를 감안할 때 퇴직연금이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연금 제도이기는 어렵다. 앞으로 '한국형 연금체계'는 계층별 특성을 지닌 연금들을 다층으로 조합해 '계층별 급여적정성'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 긍극적으로 퇴직연금을 공적 연금으로 전환하자.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민간의 자발적인 단체협약이 아니라 법률에 의거한 의무제도이다. 지금처럼 민간금융사가 운영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퇴직연금공단을 만들어 공적 연금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러면 퇴직연금의 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가입자 참여를 증진하며, 기금 운용에서도 사회적 성격을 가미할 수 있다. 퇴직연금이 공적 연금으로 전환되면 우리나라 공적 연금의 소득대체율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31652#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