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문재인 정부, 국민 연금 재정개혁 책임을 방기하다

2018. 12. 20. 16:5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① 보험료 1%포인트 인상 마법의 비밀







보건복지부가 2018년 12월 14일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이번 정부안이 재정 안정화 방안을 회피했다고 비판합니다. 기초연금을 확대할지, 국민연금을 확대할지, 바람직한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어느 정도일지를 두고 시민사회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프레시안> 현 국민연금 제도를 살펴보고 연금 개혁 대안을 모색하고자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연재를 10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1회> 문재인 정부 연금안 평가 : 재정 개혁 방기

<2회> 국민연금 재정계산 : 70년 계산 믿을 수 없다?
<3회> 국민연금의 특징 : 미래 재정 불안정
<4회>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 : 재정 균형
<5회> 외국에서 연금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
<6회>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 가능한가?
<7회> 국민연금의 역설 : 재분배 vs. 역진성
<8회> 기초연금의 강점 : 사각지대 없는 노인 기본소득
<9회> 퇴직연금의 잠재성 : 중상위계층 노후 소득 보장
<10회> 연금 개혁 대안 : 한국형 다층 연금 체계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했어야 할 정부안이었는데 지각 발표다. 게다가 정부안에 담긴 방안이 무려 네 가지다. '사지선다'로 제시해 공을 국민에게 넘겼다고 비판받을 만하다. 

문재인 정부, 국민연금의 재정 균형을 사실상 포기 

더 심각한 건 정부안에 담긴 내용이다. 네 가지 방안 어디에도 실질적인 '연금 개혁'은 포함돼 있지 않다. 물론 정부안에는 기초연금을 올리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실상 연금 개혁이 빠져 있다고 지적하는 건, 애초 이번 연금 개혁 논의가 출발한 근본 목적, 즉 국민연금법이 명시한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균형' 노력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국민연금 재정 불균형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노력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이는 국민연금법에 의해 재정 균형 방안을 국회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 행정부로서는 심각한 책임 방기이다.

국민연금법

제4조(국민연금 재정 계산 및 장기재정균형 유지) 
① 이 법에 따른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② 보건복지부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수지를 계산하고, 국민연금의 재정 전망과 연금보험료의 조정 및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계획 등이 포함된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승인받은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시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연금 개혁을 논의한다. 제4조 "국민연금 재정 계산 및 장기 재정 균형 유지" 조항이 근거이다. 이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 수지를 점검하고 장기적으로 재정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계획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즉,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는 유족연금, 출산크레딧 등 보장성 강화,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기금 운용 개선 등 여러 내용이 담길 수 있지만, 그 중에 핵심은 '장기 재정 균형 유지'이어야 한다. 

국민연금법은 급여와 보험료의 균형을 명령하지만… 

국민연금 재정 계산 결과를 보면, 현재 국민연금법에 따른 제도(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를 그대로 놔두면 205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 보통 국민연금 재정 진단에서 소진 연도가 부각되는데, 정작 중요한 건 소진 이후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미래 세대가 납부해야 하는 필요 보험료율이다. 우리는 지금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있지만, 2060년에는 약 27%를 내야 한다. 과연 미래 아이들이 우리와 동일한 40% 대체율을 적용받으면서 3배에 이르는 보험료율 순순히 받아들일까? 

국민연금은 지금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연금을 받는 제도이기에 세대 간 영속성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벌이는 연금 개혁이 바로 미래에도 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국민연금법이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는 이유이다. 

작년 겨울부터 정부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재정 계산 결과를 토대로 '장기 재정 균형'을 도모하는 개혁안을 논의했다. 지난 8월 보고서를 발표하는 공청회에서 위원회가 가장 강조한 건 '재정 목표'였다. 국민연금법이 정한 '장기 재정 균형'의 지표로 향후 '70년 후 적립배율 1배'를 설정했다. 지금부터 70년 후인 2088년에 국민연금기금이 당해 연금 지출 1년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이를 '재정 균형'으로 해석하자고 위원회가 합의한 것이다. 즉, 지금 가입하는 청년 가입자가 앞으로 대략 70년 후 90세 쯤에 사망할 것이기에, 향후 70년 기간은 연금을 지급할 수 기금을 보유하자는 재정 목표이다.  

<그림 1>을 보면, 현재는 2057년에 소진될 빨간색 기금 곡선을 2088년까지 이동하는 것이 재정 목표다. 위원회는 이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을 비롯한 재정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프레시안




기금소진연도 연장이 지닌 착시  

<표 1>은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4개 방안이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제시한 복수의 자문안, 전국 순회 여론 수렴을 통한 의견 등을 종합했고, 또 한달 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가 전면재검토 지시를 받고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내놓은 개혁안이다.

장고 끝에 악수인가. 정부는 기존에는 연금 개혁이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두었으나 이번에는 "노후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를 균형 있게 고려했다"고 말한다. 아니다. 정부안에는 재정 안정화 조치가 없다. 4개 방안을 살펴보자. 



▲ <표 1> 문재인 정부의 연금 개혁안. ⓒ프레시안

  


첫 번째 현행 유지 방안은 지금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그대로 유지한다. 따라서 2057년에 소진되는 빨간 기금곡선 전망을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두 번째 기초연금 강화 방안은 기초연금만 애초 30만 원 공약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한다. 기초연금은 오르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국민연금법이 행정부에 명령한 '재정 균형'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방안이다. 

나머지 두 방안은 기초연금은 그대로 유지하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함께 올린다. 세 번째는 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 네 번째는 소득대체율 50% , 보험료율 13%이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을 인상해 기금 소진 연도가 2057년에서 5~6년 연장되므로 마치 재정 안정화를 일부 이룬 것처럼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국민연금에서 기금 소진 연도를 해석하는 데 주의가 요구된다. 보험료율과 대체율이 지닌 시차로 인해 기금 소진 연도에 착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5년 연금 개혁 논의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가입자 단체들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은 10%로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그래도 기금 소진 연도가 변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연금 개혁 카드라는 설명이다. 

왜 보험료율은 1% 포인트만 올렸는데도 기금 소진 연도에는 변화가 안생길까? 국민연금 재정구조가 지닌 특수성 때문이다. 국민연금에서 가입자는 은퇴 이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은퇴 이후에는 수급자로 위치를 바꿔 연금을 받기만 한다. 이러한 재정 구조에서는 보험료율과 대체율을 함께 인상해도 보험료율 인상은 초반부터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대체율 인상은 가입자 계좌에서만 계산돼 있다가 가입자가 수급자가 되는 대략 30~40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발휘한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상향해도 기금 소진 연도가 유지되는 이유이다. 

이번에 정부안에서는 소득대체율을 45~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은 12~13%로 3~4%포인트 인상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1% 포인트만 올려도 기금 소진 연도를 유지할 수 있기에 이보더 더 인상하므로 소진 연도는 뒤로 늦쳐진다. 정부안을 기금 소진 연도가 2057년에서 2062~2063년으로 뒤로 간다.  

이것이 재정 안정화를 의미하는 걸까? 국민연금에서 대체율 10%에 부합하는 수지 균형 필요보험료율은 대략 5%로 추정된다(이전까지 약 4%로 논의돼 왔으나, 최근 기대여명을 반영해 수령 총급여를 계산하면 5% 이상). 결국 보험료율 3~4% 포인트 인상은 대체율 인상에 따른 조치일뿐, 기존 40% 소득대체율 제도가 지닌 재정 불균형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다. 

정작 문제는 기금 소진 이후이다. 이때는 현재 20~40대가 연금을 받을 시기인데, 인상된 대체율로 지출이 늘어나므로 당시 가입자의 부담은 더 무거워진다.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현행 40% 소득대체율에서 기금이 소진되면 미래 세대가 내야할 필요 보험료율은 약 27%이다. 단순 계산하면, 50% 대체율에서는 필요보험료율이 약 34%에 이를 것이다. 왜 정부는 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가?  

아래로부터 '시민 토론'이 필요한 때 

점점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나라에서도 연금 개혁은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공적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현재 가입자의 책임이 높아지는 개혁안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행정부는 국민의 반발, 지지율 하락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연금 개혁안을 제출한다. 그것이 국정을 운영하는 행정부의 책임이다. 행정부가 연금의 지속가능성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절충점을 만드는 게 연금 개혁의 일반적 과정이다.

우리는 다르다. 처음부터 행정부가 이 책임을 회피한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그러했고, 이번에 문재인 정부 역시 그렇다. 

연금 개혁 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투명하고 균형 있는 정보이다. 그래야 불편한 주제이지만 사회적 지혜와 담긴 합의안이 나올 수 있다. 지금처럼 행정부가 자신의 소임을 방기할 경우 연금 개혁은 더 어려운 숙제로 뒤로만 넘어갈 위험이 크다. 그럴수록 국민연금 재정 불안은 심화되고 노후를 대비하는 시민들의 불안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노후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하루하루 삶이 힘들지만 미래 아이들의 문제를 모른체할 시민은 결코 아니다.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연금개혁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 글이 아래로부터 '시민 토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1701&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