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정말 포용국가로 가고 있는가?

2018. 12. 12. 12:4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나라다운 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다. ‘이게 나라냐’고 절규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시작은 뭉클했다. 취임 3일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했다. 며칠 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역사에 남을 감동극이었다. 대통령과 유족의 포옹에 모두가 울었다. 아픔을 보듬은 눈물, 이제 나라가 제대로 가겠구나 하는 벅참의 눈물.


1년 반이 지났다. 대통령 지지율이 절반 아래까지 내려갔다. 주변 여론도 심상치 않다.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다. 머뭇거리는 민생 정책을 한탄한다. ‘나라다운 나라’가 떠오르지 않고, 묵직한 발걸음도 보이지 않는다고.


청와대는 억울해할지 모르겠다.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주창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 분야를 포괄하는 ‘포용국가전략회의’도 개최했고, 포용과 혁신의 가치를 지닌 비전과 전략도 발표했다. 얼마 전 OECD는 포용국가론의 첫 사례로 한국을 연구하겠다고 말할 정도이지 않은가.


그렇다. 포용국가 문서에는 시대가치를 담은 단어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아 보인다. 촛불정부가 내세운 국가비전이라는데 왜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걸까?


지금부터 10년도 더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비전 2030’을 제시했다. 비록 임기 후반에 나오고 재정방안이 없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앞으로 도달할 미래상과 경로를 담았다. 반면 포용국가에는 우리가 살 집의 조감도도, 그곳을 향하는 로드맵도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험을 축적했을 문재인 정부이기에 어디엔가 마련했으리라 생각했건만,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새로 진용을 갖춘 청와대 정책실이 내년까지 수립한단다. 아, 아직도 만드는 단계라니.


좋다. 국가비전은 단지 방향이라 치자. 중요한 건 나라꼴을 제대로 갖출 실제 정책들이다. 우선 일자리정부라고 자처했으니 이 분야를 보자. 현재까지 성적은 좋지 않다. 원래 고난도 과제이기에 재촉해서 이룰 일은 아니다. 관건은 내실을 다진 계획이다. 공공부문 몇 개 영역을 합산해 81만개 일자리를 공언하고, 일자리 동향을 대통령 집무실 전광판으로 점검하겠다던 초반의 어설픔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의문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초단기 인턴마저 동원하는 무리수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그제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포용국가 철학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근로장려세제, 아동수당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물론 복지 확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다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기엔 집권 초반에 고삐를 놓친 교육, 부동산정책이 뼈아프다. 월 10만원 아동수당이 도움을 주겠지만 높은 사교육비, 주거비에 휜 허리까지 펴지는 못한다. 노후불안을 대비하는 연금개혁도 오리무중이다. 5년 주기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오래전에 정해진 일이고, 결과도 예상대로인데도 아직도 정부 개혁안은 윤곽조차 알 수 없다.


재정 분야도 실망스럽다. 100년을 이어갈 개혁안을 만들겠다며 재정개혁특위가 발족했지만 상반기에 종합부동산세 개혁안을 권고한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 기획재정부 견제 아래서 맴돌다 내년 초에 종합보고서를 발표하고 간판을 내릴 모양이다. 또한 재정정책의 위상을 높인다며 청와대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하고서도 올해 봄에 열린 재정전략회의는 오히려 요식행위에 그쳤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정에 ‘전략’을 담자며 심혈을 기울였던 회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렇게 형식화되어 버리다니. 심지어 올해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담긴 5년 후 조세부담률 목표는 20.4%이다. 이미 작년에 도달한 20% 선을 넘을 의사가 없다. 지금 수준의 재정으로 새로운 나라가 가능하다는 건가.


비교되는 분야는 보건의료 쪽이다. 국민건강보험 체계에서 핵심 문제인 비급여에 정면 대응하고 의사들과 일전을 불사하는 뚝심을 보였다. 시민단체 눈높이에선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청사진이 분명하고 무언가 진행되는 움직임이 전해온다. 문재인케어라는 브랜드를 얻을 만하다. 탄탄한 준비, 담대한 추진력이 승부수임을 알려준다.



내년이면 어느새 3년차. 남북관계와 문재인케어처럼 여러 민생 분야에서 새로움을 보고 싶다. 함께 사는 대한민국 공화국을 열망하며 시민들이 무혈혁명으로 만든 정부이지 않은가. 대통령은 당선 첫날 현충원 방명록에 ‘나라다운 나라’를 적었던 심정으로 민생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꿈이 컸던 만큼 역사적 평가가 호될 수 있다. ‘기대의 역설’을 두려워해야 한다.


* 출처 :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812112037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