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빈곤 아동' 현수막 걸고 사진 찍는 '복지'는 그만

2018. 2. 8. 12:1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보이는 '공감'




이성종 복지영상 대표





카메라를 들고서 사회복지 현장의 영상 이야기를 제작해 온 지 15년이 넘었다. 카메라맨의 등장에 썰렁해지는 분위기, 거절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나는 거절을 극복하기 위해 레크레이션 진행 경험까지 살려 친근한 카메라가 되도록 노력한다. 

매운 바람이 불어오는 창

예를 들어, 최근 '독거노인관리사'의 일상을 표현하는 촬영에 나섰다. 부득이하게 홀로 사는 어르신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출되는 부끄러움에 대한 본능적인 불편함을 어떻게 잘 넘어갈 것인가? 빼꼼히 열린 문 앞에서 바짝 긴장한다. 

다행히도 그동안 어르신을 정성껏 대한 독거노인관리사의 소개로 집안에 들어가지만, 어르신의 경계를 풀어야 하는 건 내 역할이다. 빠른 속도로 집안을 둘러보며 자랑할 거리가 나올 '나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버튼'을 찾아본다.  

어떤 어르신은 집안 곳곳에 붙어 있는 동자승 그림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마음의 문이 열렸고, 가지고 간 포토프린터로 기념이 되는 사진을 인화해 주면서 소설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번 할아버지는 혼자 사시지만, 깔끔하게 집안을 정리해 놓은 것을 잘 알아차려 주면 되겠다 생각하는데, 햇볕 들어오는 창틀에 놓인 새빨간 고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창으로 매운 바람이 솔솔 들어오겠는걸요."  

▲ 얼큰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 풋고추의 유혹을 견뎌내고 매콤한 고춧가루가 될 할아버지의 자랑거리. ⓒ이성종


각각 다른 요일에 놓여졌을 법한 통통한 고추부터 쭈글쭈글한 고추를 가리키며 '요건 오늘 아침 거, 요건 일주일 전 건가봐요' 카메라 렌즈로 신기한 듯 감탄하고 있으니 할아버지 말문이 트인다.  

"내가 만 원어치 고추 모종 다섯 개를 사다가 심었는데, 풋고추 열린 거 먹고 싶어도 꾹 참고 기다렸다가 빨갛게 되자마자 이렇게 말리는 거야. 고추가루 만들어서 국 끓일 때 넣어서 먹으면 얼마나 매콤한지 몰라."  

할아버지는 고추가 자라는 곳을 가리키며 서울 한복판 농부의 마음을 들려준다. 나는 독거노인이라는 딱지를 떼고서 어르신의 현재 삶을 응원하는 카메라맨이 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오랜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는 인생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남이 나의 처지를 이야기하면 불쌍하게 바라보는 3인칭 이야기가 되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하면 문제를 내놓고, 해답도 제시하는 1인칭 시점의 자서전이 된다. 

난 카메라를 들고서 연극의 조명을 비추듯 삶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눈가를 촉촉히 적셨던 비밀 몇 가지 공유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엔 '촬영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게 된다. 

▲ 만 원어치 고추 모종이 할아버지에게 '농부의 마음'을 주었다. ⓒ이성종


가족나들이에 걸친 '형광 조끼'  

이번에는 장애인 시설 촬영이다. 장애인 시설에 온 직장인들이 오늘 하루 천사가 되겠다는 표정으로 나들이 채비를 한다. 전쟁터에서 방탄복을 지급받듯 형광색 자원봉사 조끼를 겉옷 위에 걸쳐 입고, 내가 맡은 아이의 이름과 장애에 익숙해지면서 '하루 부모'가 되는 봉사다.

걷는 게 한창인 어린 남자 아이는 출발 전부터 파트너인 중년 아저씨의 평상시 운동량을 훌쩍 넘기고, 또래의 여자 아이를 데려 온 엄마는 '자기가 큰 딸' 이라고 말하는 장애인 친구의 말에 두 딸의 엄마가 되어 나들이를 떠난다.  

출발은 낯설었지만, 오후가 되니 매일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해지는 나들이 풍경을 나는 카메라로 담는다. 그러던 중 엄마의 조끼를 벗기는 큰 딸의 모습을 보았다. 놀이공원에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과 옷차림이 달라 조끼를 벗긴 것이었다. 나는 하루라도 제대로 엄마가 되어달라는 행동 덕분에 '조끼' 라는 이미지의 불편함을 깨달았다. 

▲ 가족같은 나들이를 떠나지만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고 '형광조끼'가 말해준다. ⓒ이성종


그러고 보니,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사진 찍고 돌아가자'는 인솔자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찌푸려지던 청소년 프로그램의 씁쓸한 마무리 장면이 생각난다. 

'빈곤, 소외, 조손가정, 문화체험, 지역아동센터' 이런 단어가 들어있는 현수막을 펼쳐들고서 사진을 찍는 선생님 뒤로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아이들. 영문도 모르는 선생님은 머리카락으로 가린 얼굴을 보여 달라 사정하며 '사춘기 청소년들 사진 찍는 게 힘들다'고 호소하고, 아이들은 빨리 끝내라고 성화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보다는 인원 수, 현수막 글귀같이 직접적인 단어, 노골적인 묘사, 증빙에 길들여진 복지 현장의 이미지를 보고 후원자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염려가 된다. 보아도 보질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유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복지 현장의 수많은 사건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내가 어찌해야 할지, 행동을 고민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들어 있다.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놀라운 이미지들이 그 속에 있는 실무자들의 마음만 뿌듯하게 해주고는 증발된다. (열악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이것일지도 모른다)  

▲ 동장실에 놓여진 신발에 말을 거니 부지런한 발품이야기가 나왔다. ⓒ이성종


나는 이 증발되는 이미지들을 잘 발견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하고 있는 현장을 가까이에서 동행해보면 절로 감탄이 나오고, 따라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예를 들어, 두 달이면 닳아버린다는 연희동 동장의 신발 사진을 보자. 신발은 항상 동장실에 놓여있었지만, 카메라로 발견해주고, 의미를 알아차려 주는 순간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이미지가 되었다.  

▲ 매일 관할지역을 걸어다니는 동장의 신발 이야기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이미지'가 되었다. 사진은 YTN 화면 갈무리.


또한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임이 '서로의 옷깃을 여며주는' 이미지로 표현된다. '약속 전화를 받은 날 설레서 잠이 안 온다는' 사춘기 같은 어르신들의 설레는 목소리는 사람들 마음에 안부 전화 한 통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곁에서 꾸준히 기록하면 사람의 성장이나, 지역사회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복지 현장의 이야기들을 '증빙' 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보이는 공감 

보이는 것(See)만 기록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서(Look, Watch), 대화를 통해 서로 알아가면서(Find),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보이는 (Feel) 공감을 시키는 기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항상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현장의 생생함을 증언하는 훌륭한 도구다.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복지 의식을 심어서 우리 사회에 보여주고, 들려주다 보면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좋아지고, 복지국가가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