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복지 늘려도 모자랄 판에, 돌봄센터 폐업 통보라니요?

2017. 9. 18. 15:3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관료주의와 정치 논리에 노출된 지역 사회복지








나는 지역에서 작은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수년간 지역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회 사업을 해왔던 내가 이른 아침 일어나 난생처음 종로경찰서로 향해야 했다. 힘내보노라 샀던 음료수를 집회 신고를 받으러 나온 앳돼 보이는 경사에게 건넸다. 나는 무슨 일로 경찰서에 들러 집회 신고까지 해야 했을까? 

지역 사회복지 연구자가 집회 신고에 나선 이유

나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자체의 '무한돌봄센터 설치 및 운영조례'에 근거하여 2011년 11월 설치된 사회복지기관으로, 저소득 계층 지역 주민에 대한 사례를 관리하고, 아이들에게 돌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순조롭게 운영하던 지역 사회복지 기관을 일순간 폐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7월 경기도 화성시가 사회복지전달 체계(읍․면․동 복지허브화)를 개편한다며 우리에게 2017년 10월로 사업 폐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참고 기사: 화성시, 무한돌봄 5개팀 폐지···'복지서비스 저하 우려') 

▲ 화성시청 앞에서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 폐지에 항의하는 주민들. ⓒ이정희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대책 없이 우리에게 사업 폐지를 통보했다는 점이다. 화성시는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를 2017년 1월까지 LH기부채납시설 봉담 지역 사회복지기관에 흡수시키겠다고 했지만, 이조차 해당 부서의 행정 착오로 인해 없던 일이 됐다. 결국 지자체는 이렇다 할 대체 기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북부네트워크의 폐업을 강행하고 있다. 지역 사회복지에 공백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자연히 이용 시민들도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거절당해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가 운영하는 공부방에 다녀오면 아이들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고, 정서적으로 좋아지는 효과도 보았는데, 일순간 그 복지기관이 사라지고 원치 않는 이별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시민들은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 지키기에 나섰다. 먼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치인을 만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폐업 거부 집회도 했다. 돌쟁이 아이까지 업고 아픈 허리도 어루만지며 비 오는 날도 어김없이 집회 길에 나섰다. 마을 온라인 카페에도 시민들은 이번 사태에 제각기 의견을 담아 성토 글을 올렸다. 기관 보존에 대한 온라인 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 기관은 사회복지 등록 시설이 아니라, 지자체 조례로 운영되는 기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바람 앞에 작은 등불 신세처럼 해다마 운영에 기복이 심했다. 결국 폐업 위기까지 처하게 된 것이다. 지역 사회 복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지역 사회복지는 어디까지 왔나 

참여 정부의 지방자치시대 개막은 우리에게 지역 사회복지에 대한 많은 희망과 기대를 갖게 했다. 지방 자치는 주민 자치를 핵심으로 하고, 이는 곧 주민자치복지로 이어져 지역 주민들의 욕구에 걸맞은 복지시스템 구축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현장은 물론 학계에서도 지역 사회복지에 대한 회의와 문제를 거론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첫째, 복지 재정의 지방 분권화의 부작용인 복지 예산의 축소, 지역 간 복지 불균형, 둘째, 지역 사회복지 계획 수립에서 민관 거버넌스 체제의 결여, 형식적인 복지욕구 및 자원 조사, 사업 주체 역할 구분의 모호함으로 인한 책임 복지의 실패, 셋째 자원 부족, 취약한 복지인프라, 지역 주민의 낮은 복지 인식 등이 문제로 꼽혔다. 

지역 사회복지는 정책적 접근과 기술적 접근을 동시에 활용하면서 지역 사회 수준에서 실천해 나가는 특성이 있다. 지역사회 복지의 정체성 요소로는 주체성(주민 참여), 지역성(지리적 권역), 종합성(전체성) 등이 꼽힌다.  

첫째, 주체성은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에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주민 참여는 지방자치단체와의 주민이 동등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둘째, 지역성은 지역 사회복지가 주민의 생활권역을 기초로 하여 전개된다는 점을 일컫는다. 지역성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셋째, 종합성은 중앙 정부의 분리된 서비스 공급 시스템을 주민의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지역에서 이용하기 쉽도록 전환시키는 것고, 전체성은 이용자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관료주의와 정치 논리에 노출된 지역 사회복지 

지역사회 복지의 자원은 자연발생적으로 동원되고 조직화되지 않고, 권력과 연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지역사회 복지 관련해 간과한 것이 자원과 권력의 문제다. 그 예로서 지역사회 복지는 하향식 사회복지 정책의 성과주의 경쟁에 노출되어 공공 현장에서는 모금 액수나 연계 건수 등의 실적을 평가 기준으로 내세워 실적화하는 작업에 매몰되어 있다. 본연의 업무인 '찾아가는 복지'를 방해하는 역설이다.  

사회복지기관 평가가 재위탁 등의 직접적인 지방자치단체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복지가관은 실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불필요한 행정과 서류를 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래서 이용 시민과 지역 사회에 집중하는 제대로 된 실천을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 실천이 정치적 환경을 반영하여 발전하여 왔음을 인정해야 하고, 권력의 논리에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운동, 시민 운동 등의 정치적 연대를 통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관철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지역 사회복지의 핵심은 지역이 중심이 된 지역 친화적이며 주체적인 복지이다. 하지만 한국의 지역사회 복지는 지자체 지원이라는 당근과 정치 권력이라는 지형 속에 있어서 지역 주민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재원의 대부분을 정부나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자체와는 수직적인 예속 관계에 머물렀다.  

이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의 부정적 정치 현상까지 나타난다. 지역 주민들의 욕구와 의견을 수렴하여 지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마땅하지만, 이러한 명분과 정당성은 훼손되곤 한다. 지자체 의원들은 지역 주민의 대표라는 의미 못지않게 권력을 가진 토호세력으로 작동하고 있고 사회복지기관 수탁과 프로그램 선정 예산 등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지자체와 지역 정치인의 끼인 존재로서 때로는 외줄타기와 같은 실천을 해야만 했다. 자연히 지역주민은 고려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역사회 복지는 관료주의와 정치 논리에 폐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지역 사회복지, 이제 정치적 역량도 강화해야 

정치적 권력 구조 속에서 실천의 힘을 강화할 방법은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정치적 힘을 배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관료주의라는 커다란 맥락 속에서 정치를 통해 제압하는 정면 돌파의 전략보다는, 전문성을 강화하고 지역주민을 조직화하여 돌파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자신들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어떻게 보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본질보다는 현실 문제 개선에 치중된 협실 타협형의 미시적 실천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정치 담론은 사회 복지의 거시적 차원인 정책 수립에서부터 미세한 실천 영역까지 고루 퍼져 있다. 권력 또는 정치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혈관이다. 혈관은 대동맥과 모세혈관으로 구성되고, 대동맥의 피가 모세혈관에까지 퍼지듯이 권력 또는 정치 담론은 거시 영역에서 미시 영역까지 일관된 기조로 연계되어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경제 논리에 경도되어 많은 사회복지 제도를 폐기하거나 축소했다. 이러한 환경 뒤에는 경제 논리와 함께 정치 권력이라는 또 다른 조정 기제가 있다. '중복 복지'를 효율화한다는 논리로 지자체들이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 사업 폐지를 통보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본다. 

여기에 맞서려면 한국의 사회복지도 이제는 정치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사회복지 관련 소수 엘리트들의 정치 입문으로는 부족하다. 사회복지계의 정치 역량 강화는 서비스 이용자의 이익으로 귀결되어야 하기에 대중적 전략과 동원이 필요하고 그 중심에는 지역 주민과 서비스 이용자가 있어야 한다.  

폐업을 이기고 지역복지 강화의 불꽃이 점화되길 

최근 폐업 사태를 겪으며 참으로 많은 경험을 한다. 말 그대로 분열이다. 내가 서울의 경찰서로 집회 신고를 다녀온 사이 동료들은 지역 주민, 이용 시민들과 함께 폐업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생각해보니 지역 주민과 이용 시민들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어 늘 이런 집회를 열거나 어떻게든 의견을 표출하지 않으면 소외되어 왔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 집회를 열어 의견을 표출하겠다 다짐한다. 심지어 지역의 다른 문제들도 문제 제기하여 부정의했던 일을 변화시켜보겠다 한다. 

역설적으로 이번 폐업 사태가 관료주의, 정치 논리에 침식된 지역 사회복지의 오랜 관성을 깨우고 있는 셈이다. 실없이 축소되거나 폐기되던 지역 사회복지 강화의 불꽃은 재점화될 수 있을까? 

(이정희 선임연구원은 화성시 '무한돌봄 북부네트워크' 센터장입니다.)



*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9686&ref=nav_search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