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근로장려세제, '솔로' 저소득 청년에겐 '그림의 떡'

2017. 8. 7. 22: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근로장려세제 현실화, 청년 워킹푸어를 위한 소득보장




이택준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정책·연구 담당





8월 2일, 문재인 정부가 첫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부자 증세' 기조 아래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최고세율 인상과 대기업 세액공제 축소 등이 이번 세법 개정안에 포함되었다. 증세대상을 광범위하게 잡는 '보편 증세' 대신 부유층과 대기업에 한정된 '핀셋 증세'를 통해 최소한의 증세로 공약 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개정안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증세 외에도 일자리 창출과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각종 세제 지원 방안이 포함되었다. 그 중에는 서민·중산층 세제 지원 확대라는 취지로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확대 방안도 있다.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 확대와 지급액 상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 중 하나이다. 다른 소득 지원 사업보다 확대하기 쉬워 새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에 반드시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제도 확대는 예정됐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에 있다.

"일을 통한 빈곤 탈출" 

근로·자녀장려금의 지급 근거가 되는 제도인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는 1975년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목표로 미국에서 처음 도입했다. 이후 여러 차례 확대 개편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재정 지출 규모나 수혜자 측면에서 미국 내 가장 중요한 복지제도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일반적인 복지 정책들이 재정 지출 방식인데 반하여 근로장려세제는 조세 지출(tax expenditure) 방식의 환급형 세액공제(refundable tax credit) 원리로 운영된다. 이런 이유로 제도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상 '소득에 대한 보조금'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여정부 시기인 2005년 도입을 결정했으며, 준비 기간을 거쳐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제한적으로 처음 시행했다(급여 신청 및 근로장려금 지급은 2009년). 도입 당시 "저소득층의 소득 지원 강화 및 노동 의욕 고취"를 주요 목표로 삼았으며, 이후 2011년 무자녀가구로 지급 대상이 확대되는 등 5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사업이 크게 확대되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부터)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7년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근로장려금 지급 금액은 1조6000억 원을 넘는다. 전해보다 5.1% 감소했지만, 2009년 지급 첫 해(4537억 원)와 비교하면 약 3.5배 증가한 규모이다. 지급 대상이 확대돼 지급액이 큰 폭으로 늘었지만,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영국(WTC)과 비교하면 대상은 매우 적다. 전체 인구에서 근로장려금을 받은 가구 비율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3.6%로 미국의 8.3%(자녀장려세제 제외), 영국의 6.9%(2015년 기준)보다 낮다. 가구당 지급액 역시 87만 원으로 미국(298만 원), 영국(1131만 원)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미국이나 영국보다 한국의 지급 대상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빈곤 가구나 저소득 노동자 수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월등히 적은 것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사회상(Society at a Glance)'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상대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 비율)은 14.4%이다. 이는 미국(17.5%)보다 낮은 편이지만 영국(10.4%)은 물론 OECD 평균(11.4%)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은 여전히 유효한 과제다.

부실한 근로장려세제, 부족한 개정 방안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과 영국보다 근로장려세제의 대상자가 적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제도 설계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올해 기준으로 만 28세인 청년 A 씨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서울에 거주하며 단독 가구를 형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월 소득 130만 원 안팎인 A 씨는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소득을 늘려 빈곤 탈출, 경제적 자립, 소득 재분배를 돕는 '근로장려세제'가 있음을 듣고 온라인으로 관련 정보를 검색했지만,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현행 제도하에선 배우자 또는 부양 자녀(18세 미만)가 없는 단독가구는 만 40세 이상(2018년부터 30세 이상으로 확대)만 신청이 가능했던 것이다. 

A 씨를 좌절하게 만든 것은 연령 기준만이 아니었다. 현행 근로장려금은 가구 구성에 따라 전년도 소득(단독 1300만 원, 홑벌이 2100만 원, 맞벌이 2500만 원 미만)과 재산 정도(토지·건물 등 재산합계액 1억4000만 원 미만)를 따져 지급되는데, 월 소득 130만 원인 A 씨는 2년 뒤 연령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소득 요건에 걸려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올해 최저임금 노동자가 만근 시 받는 월급이 135만2230원임을 생각할 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A 씨에게 근로장려금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A 씨의 사례는 어떤 특수한 가상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근로장려세제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한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자. 과연 20대 청년과 대부분의 저임금 풀타임 노동자들이 제외된 근로장려세제가 현실 안에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럼 이번 세법개정안 속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확대 방안은 근로장려세제의 문제를 개선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우선 근로장려금 지급액이 겨우 10% 확대에 그쳤다. 정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상세본을 보면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 평균 소득이 5분기 연속 감소하는 등 소득 불평등 심화를 인상 근거로 삼았는데, 최대지급액을 8만 원(단독가구)에서 20만 원(맞벌이가구)까지 늘리는 것만으로 소득불평등을 충분히 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신청 요건 문제도 핵심을 빗겨갔다. 현행 근로장려세제의 핵심적 문제는 지나치게 신청 요건이 협소하여 제도 취지상 근로장려금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실제로는 신청조차 못하거나, 장려금이 너무 적어 빈곤 완화 효과가 낮다는데 있다. 따라서 반드시 소득 요건을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했는데,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노부모를 부양하거나 중증장애인인 청년을 단독·홑벌이로 인정하는 내용만이 담겼다. 청년 A 씨에게 근로장려세제는 여전히 희망 고문일 뿐이다. 

▲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근로장려세제에서 싱글 청년들은 여전히 배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근로빈곤 청년을 위한 근로장려세제

"전 청년 수당이 꼭 필요한데,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둘 형편이 안 되는데요." 

올해 서울시 청년수당 신청 과정에서 직접 받은 전화의 한 대목이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청년 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통화였다. 청년 수당 사업들이 청년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지원 정책으로 설계되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문의를 한 청년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5년 3월 기준 중위임금 3분의 2 미만인 저임금 노동자의 규모는 451만 2000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24%에 달한다. 만15~29세인 청년 임금노동자로 한정하면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무려 30%로 높아진다. 전체 평균보다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 더 문제는 전체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2010년 27.5%에서 2015년 24%로 완만히 감소할 때, 이들 청년 워킹푸어(근로빈곤층)들의 비중은 전혀 변동(2010년 30% → 2015년 30%)이 없었다는 점이다. 청년 수당과 기초생활보장 제도 같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는 청년들의 슬픈 현실이 드러나는 통계다.

저임금 청년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으로서 근로장려세제 현실화는 청년들을 빈곤에서 탈출시켜 지속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중요한 시도다. 한국에서 근로장려세제의 빈곤 감소 및 노동 공급 증가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으며, 제도 도입 초기에 비해 최근 효과가 더 미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로장려금의 지급 수준과 규모가 저소득층의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기에 부족하고, 신청 자격이 매우 까다로워 대상자가 좁은 탓이다. 만약 제도 설계를 현실에 잘 조응시킬 수 있다면 미국에서처럼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청년 근로빈곤층의 소득 보장을 위해 근로장려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선 수급 연령 기준을 미국이나 영국처럼 아예 삭제하여 청년 전체를 제도에 포괄해야 한다. 

이후 가구별 소득 요건을 재조정하여야 하는데, 단독가구와 부양가족이 있는 가구로 가구 구분을 단순화하고 단독가구의 소득 요건을 최저임금 미만으로 정하면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끝으로 근로장려금 지급액을 10%가 아니라 50% 이상 상향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13월의 월급 정도로 인식되어야 소득 보장과 빈곤 탈출의 실효성이 담보될 것이다.  

사회 소득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근로장려세제 확대는 더 넓은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된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대선 시기 발표된 'J노믹스'의 핵심 기반인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쉽게 말해 가계 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고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고용, 납세)을 요구해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일자리 추경안을 통해 정부 주도의 고용창출 계획을 선보였으며,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17년 6470원 → 18년 7530원 16.4% 인상). 고용의 양을 확대하고 질을 높여 경제성장의 초석을 놓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정지지율이 꾸준히 70%를 상회하여 정책 추진 동력은 충분하지만, 여전히 내각을 전부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암초가 많다. 게다가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에 대한 중장기적 재정 부담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소상공인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허니문' 기간을 단축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임금 소득과 함께 사회 소득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마침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자유한국당의 이현재 전 정책위의장(8월 2일 사임)이 "EITC 등의 수혜 기준을 완화해 제도적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을 정도로 야당에서도 거부감이 적은 정책이다. 막 오른 '세법 전쟁'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근로장려세제 확대가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5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