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중은 외면하고 있다...민주노총이 답답하다!

2017. 7. 27. 11:5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성과를 없애나?





이광호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





지난 15일 2018년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됐다. 16.4%, 역대급 인상률이다. 오랜만에 노사 양쪽이 퇴장하지 않고 표결에 참여해 결정했다. 고무적인 과정과 결과다. 민주노총은 지난 16일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성명서 제목은 '시급 7530원. 대통령 공약에 가로막힌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최저임금 결정 구조와 방식 반드시 뜯어 고치겠습니다'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성명의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감하기 어려운 민주노총 입장 

하지만 민주노총에 대한 실망이 이번뿐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전 아는 사람으로부터 최저임금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민주노총의 주요 간부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민주노총의 태도와 관련된 개인 소견이라도 쓰고 싶어졌다.  

'대통령 공약에 가로막힌 1만 원 요구'라는 성명의 제목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은 그 반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때문에 그 정도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오른 것으로 보는 게 현실에 가깝다. 민주노총은 또 이번 결정이 '전무후무한 최악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노동 쪽이 퇴장하면 공익위원들이 중심이 돼 사용자 쪽 요구에 가까이 최저임금이 결정되던 관행에 비하면 노사가 표결 끝에 합의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다. 왜 이를 두고 최악이라 하는지 이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으면 예년처럼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민주노총 정도라면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과에 대해, 문 대통령이 공약 이행을 위해 노력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럼에도 아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만큼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더욱 노력을 해 주기 바란다는 수준이면 적절했다고 본다.  

피해자 코스프레, '패자의 분노' 연출 

또 높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 때문만이 아니고, 적잖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업장 안팎의 어려운 조건과 일부 언론의 비판을 뚫고 파업을 결행한 것에 따른 성과라는 점도 언급됐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자신들의 성과는 없애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패자의 분노'를 연출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이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있었고, 사용자 쪽과 공익위원들이 높은 인상률에 합의를 할 수 있었던 밑바탕을 촛불 민심이 받쳐주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어야 한다. 촛불은 보수 여당을 두 동강으로 쪼갰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무력화시켰다. 최저임금 인상에 '과격하게'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의 대표적인 보루들이 상대적으로 힘을 잃은 상황도 최저임금을 16% 이상 인상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최저임금제 도입 자체가 1987년 반독재 시민 항쟁의 결과라는 점도 환기해 볼 만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노총이 이같은 '성과적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을 위한 힘을 축적시켜야 할 좋은 계기를 놓치고, 온통 불만투성이에다가 오로지 제 것만 챙기는 조직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여러 모로 부적절했다고 본다.  

나아가 민주노총이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인상률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 수립에 대한 정부 발표를 주목하고 이런 정책이 현장에까지 철저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하고, 내셔널 센터로서의 민주노총도 필요한 협조는 하겠다는 자세 정도는 표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단 한 문장의 언급도 없다. 오늘의 영세자영업자들의 상당수는 어제의 노동자였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새로운 지평을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불평등 구조 혁파를 위한 견고한 진지라는 믿음을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제 잇속만 챙기는, 덩치만 큰 조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올해로 민주노조 운동 30년째가 되는데도 성숙한 조직의 이미지가 전혀 없다. 리더십과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  

과거 노동 운동이 어려웠던 시절 헌신성, 선도성, 현장성 등으로 무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포부가 가득했던 활동가들로 구성됐던 정파들의 긍정적인 측면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정파는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람들의 도구로 전락됐다. 전국 조직에 걸맞은 역량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위원장 자리를 획득한 정파의 끈을 타고 내려온 일부 무능한 사람들이 조직의 결정을 좌우하는 것도 민주노총의 현재 모습을 있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민주노총 핵심 지도부 가운데에는 9월 총파업 투쟁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할 말을 잃었다. 절박하고 당면한 이유도 없는 습관적인 '뻥 파업' 얘기가 또 나오고 있는 것이다. 투쟁은 수단이다. 조합원, 노동자, 국민의 행복이 목적이다. 사회를 내다보는 시력도, 과제를 풀어나가는 실력도 없고, 국민대중은 물론 조합원에게 신뢰와 지도력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보면 답답하다.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것은 그가 '친노동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소득(임금)주도 성장'이라는 전략과 '공정한 시장경제 창달'(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재벌의 합리적 규제)이라는 원칙 아래 정책을 펴나가고 있으며, 최저임금 인상도 그런 과정 가운데 선택된 정책이다.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 아래 어떤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 갈 것인가, 정책 협력과 한계를 지적하는 비판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라는 보다 큰 그림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할 때다. '9월 총파업' 운운할 때가 아니다. 

올해 말에 민주노총 위원장 등 임원 선거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에서 노동 운동의 '적폐'를 청산할 만한 젊고 당당한 사람들이 새로운 리더 그룹으로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던 제도지만) 조합원 직선제로 대표단을 뽑게 됐으니, 실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자리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자들은 배제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비전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그 이전에 그런 후보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 지난 20~30년의 긴 세월 동안 여전히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많은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글이나 끄적이는 나보다는 훨씬 훌륭한 그들에게 이 글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필자)


※프레시안은 열려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가 오가기를 바라면서 지면을 열어 놓겠습니다. 편집자(ilys123@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