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후보들은 정책 논쟁을 하라

2017. 4. 23. 16:2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이제야 후보들 복지 공약의 대략을 알게 되었다. 지난 월요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들의 10대 공약을 공개한 덕택이다. 선거가 고작 3주 남은 시점에서 말이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책 공방보다는 후보 자질, 선거 구도 등이 부각될 텐데 앞으로 얼마나 실질적인 토론이 이어질 수 있을까?


[정동칼럼]후보들은 정책 논쟁을 하라

매번 대통령선거 때마다 뒤늦은 공약 발표에 문제를 느껴왔다. 이번에는 아무리 조기대선이라도 너무하다. 유력 후보들이 일찍부터 대선을 준비해왔기에 더욱 그렇다. 선거만큼 자신의 뜻을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진정 자신의 국정 계획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싶다면 하루라도 빨리 공약을 내야 했다. 치열한 논의를 거친 공약일수록 실행 가능성도 높다. 널리 공론화되고 점검된 공약을 근거로 승리했기에 집권 이후 정책 추진도 강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이 워낙 짧아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공약 평가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다. 아무리 평가가 제기돼도 후보들이 무시하면 그만인 게 우리 선거 풍토이다. 몇 번 방송토론이 열리지만 제한된 형식이라 역시 한계를 지닌다. 


이제는 후보와 캠프가 직접 논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네거티브 검증 논평 발표하듯이, 상대 후보의 정책을 서로 비판하라. 법인세, 단설 유치원 주제에서 보듯이, 후보들이 참여한 논점은 금세 시민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이는 후보들이 지금까지 시간을 허비한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후보들이 선관위에 제출한 복지 공약을 보면, 복지 바람이 불었던 지난 2012년 대선보다 강도가 조금 높다. 아동수당 도입,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청년 실업부조 도입,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지난 대선에서 선보였지만 못 이룬 공약들, 그리고 기초연금 30만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 한발 더 나아간 공약도 있다. 


공약 논쟁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2차 보편·선별 논쟁은 어떤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보육료 지원을 계층별로 차등하고, 아동수당도 하위 50% 계층에게 지급한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하위계층 노인에게만 기초연금을 인상한다고 했다. 후보들은 이 논점을 토대로 자신의 복지 철학을 펼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무상보육, 기초연금 제도 위에서 진행되기에 과거 보편·선별 논쟁보다 성숙한 결과를 이끌어내리라 기대한다. 후보마다 자신의 복지국가 비전을 주창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부양의무자 제도를 두고 논쟁할 수 있다. 문 후보는 안 후보에게 왜 ‘개선’에 머무느냐 비판하고, 안 후보는 왜 ‘폐지’가 지금 무리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러면 시민들이 부양의무자 제도의 실태와 해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누가 당선되든 자신의 공약을 실행할 토대도 튼튼해진다. 


재정 공약은 더 뜨거운 주제이다. 복지 공약이 엇비슷하더라도 자신만의 꼼꼼한 재정방안으로 비교우위를 보여줄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세제를 개편하지 않아도 매년 10조원씩 추가 세수가 생길 거라는데 이러한 막연한 가정이 국정운영계획일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작년 세수가 예상보다 증가한 게 근거라면 그 이전 4년 내내 예상보다 미달했던 건 어떻게 설명할지 물어야 한다. 또한 재벌기업들의 법인세 감면을 모두 없애도 연 3조원 이상 조달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여전히 명목세율 인상이 추후 논의 주제인지, 나아가 다른 세목에 대한 공약도 밝히라 요구해야 한다.


안철수 후보 역시 엄중히 질문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 지금까지 복지 공약별 소요액도 밝히지 않고 ‘기존 일자리예산과 연구·개발(R&D)예산 조정, 중복사업 정리’ 등 지출개혁 이야기만 되풀이해 평가의 소재조차 찾을 수 없다. 결국 중부담 중복지를 주창하는 유승민 후보, 유일하게 종합적인 증세 공약을 발표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몫이다. 유력 후보들의 재정 공약을 거세게 비판하라. 연일 캠프가 정책 논평을 내며 끈질기게 논점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주고받는 말이 비슷하다. 두세 달 전에 오늘 같은 선거 분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미래를 향한 정책 경쟁을 보고 싶은 거다. 남은 기간,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후보만이 할 수 있다. 정책 논쟁에 온 힘을 쏟아라. 논점이 생길수록 변화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도 강해진다. 치열한 정책 공방을 통해 후보들은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고, 시민들은 거기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할 것이다. 남은 20일, 혹 속절없을지라도 간절히 바란다. 정책 논점을 만들어내는 후보를 보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182101035&code=990308#csidx3cee0f5f792f18393df602e4a58ecc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