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보편 복지',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2017. 2. 2. 14:2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보편 복지',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보편/선별' 넘어 체제 차원의 보편주의 지향해야




남재욱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팀장





2017년 새해가 밝으면서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촛불 민심은 대통령 탄핵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갈망한다. 촉박한 일정이지만, 이번 대선이 시대적 요구를 구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 중 하나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닦는 일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복지 확대를 말한다. 문제는 방안이다. 과연 어떤 복지를 어떤 방식으로 늘려가야 바람직할까? 새해를 맞아 내만복 칼럼은 주요 복지 의제별로 실태를 진단하고 핵심 개혁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내만복 대선 복지 의제 바로 가기 : ①[총론] 2017 대선 키워드, '의·교·주·노', ②[주거] 2017년 대선 후보, 사회 주택에 주목하라, ③[의료] 암 걸려도 병원비 100만 원 넘게 내지 말자, ④[재원] 대선 후보, '증세' 정공법을 써라) 


2010년 우리 사회에서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작한 무상 급식을 놓고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개개인들의 판단과 지지는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편주의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2011년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주민 투표를 시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유력 후보가 모두 과감한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민들은 한편으로는 복지 공약의 후퇴와 방기를, 다른 한 편으로는 복지 확대와 짝을 이루어야 할 증세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나아가 무상 급식이나 보육 정책에서 제기된 '복지의 질' 논란은 '보편적이기만 하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했다.  

그렇다고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합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근래에는 '기본 소득'이라는, 할당 원리로는 기존 어떤 복지 프로그램보다 더 보편주의적인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라는 2010년의 간명한 복지 담론과 달리, 이제는 복지의 양적 확대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 복지론에 대한 회의와 더 보편적인 제도에 대한 욕구가 공존한다. 보편주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 보편적 복지 담론이 등장했을 때의 논의는 "왜 (선별적 복지가 아니고) 보편적 복지인가?"였던 반면, 이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보편적 복지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 무상 급식 논쟁은 보편 복지 논쟁을 촉발시켰다. ⓒ프레시안


보편주의, 선별주의, 그리고 잔여주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과 '선별'은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선별주의'(selectivism)에서 비롯된 용어다. 다른 사회과학적 개념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합의된 정의를 찾기는 어렵지만, 이 개념들은 사회적 급여의 할당과 관련되어 있다.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필요를 가진 모든 사람이 동등한 사회 급여나 복지 서비스 수급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선별주의(selectivism)는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을 서로 다른 제도로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이 공적 노후 보장의 필요성이 있을 때, 인구 전체에게 동일한 연금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이 보편주의라면 공무원·임금노동자·자영자·농어민에게 각각의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은 선별주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 보험 제도가 일정 기간 이상의 기여를 수급의 전제 조건으로 하는 것도 엄밀하게 보면 선별주의 원리다.

선별주의를 이렇게 보편주의와 대응시켜 이해하고 보면, 2010년 당시 '보편 대 선별' 논쟁에서 '선별'을 향해 가해졌던 비판이 다소 의아하게 여겨진다. 당시 선별주의는 '빈자에게만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이해됐고, 수급자 선별을 위한 자산 조사 과정에서 빈곤층에게 낙인(stigma)이 부여된다는 것이 문제로 부각됐다. 이는 선별주의를 잔여주의(residualism)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빈곤층에게 한정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의 할당 원리는 선별주의가 아닌 잔여주의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선별주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다양한 방식의 '선별'이 가능하기에 잔여주의보다 더 넓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히 보면 2010년의 논쟁은 '보편 대 선별'이라기보다는 '보편 대 잔여'의 논쟁이었다.

선별주의가 잔여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면, '보편 대 선별'이라는 대립을 '보편 대 잔여'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까? 보편주의와 잔여주의의 관계와 달리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꼭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 필요가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그 어떤 국가도 사회적 프로그램을 보편주의 원리로만 구성하지는 않는다. 보편주의 원리와 선별주의 원리의 프로그램이 –그리고 훨씬 적은 정도로 잔여주의 원리의 프로그램도- 혼합되어 있다. 프로그램 차원에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혼합하는 것은 체제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복지국가 논의에서 보편주의나 선별주의를 할당 원리뿐 아니라 급여에까지 적용할 경우 보편주의 원리와 선별주의 원리의 혼합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원칙적으로 보편주의는 수급자의 '동등성'(sameness)에 기반하여 모든 수급자에게 동일 가치의 급여(equal treatment)를 지급한다. 반면 '차이'를 강조하는 선별주의 원리는 수급자에 따라 서로 다른 급여를 지급한다. 그렇다면 보편적 적용범위와 선별적 급여 방식을 결합한 프로그램은 보편주의인가, 선별주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보편주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그램 차원의 보편주의 : 영국의 경우 

복지 급여 할당 원리로서의 '보편주의'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역사적 문헌은 저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다. 1942년, 전후 영국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담은 이 보고서에서 베버리지는 '누구나 빈곤에 빠질 수 있으므로 사회 급여는 모두를 위해 적용돼야 하며, 따라서 소득이 있는 모든 국민이 같은 제도에 기여하고 정액의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전의 구빈법(잔여주의)이나 노동자 보험(선별주의)과는 다른 원리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보편주의 프로그램의 발전은 순조롭지 않았다. 영국 복지국가의 핵심 프로그램인 국민보험은 보편주의의 엄격한 동등성 원리에 따라 설계됐다. '누구나 같은 제도에 포함된 것'뿐 아니라 기여와 급여를 모두 정액으로 하였다. 그러나 정액 보험료와 정액 급여에 기초한 체계로는 급여 수준을 낮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로는 빈곤을 막을 수도 없었고, 중산층 이상이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급여 수준에서만이라도 선별주의 원리의 결합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이와 같은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증가하는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잔여적 프로그램인 사회 부조로 대응했다. 중산층 이상은 고용주와의 협상을 통한 직업 연금이나, 사적 연금 등 시장이 제공하는 복지에 의존했다. 뒤늦게 공적 소득 비례 연금(SERPS)과 같은 중산층 이상을 위한 공적 제도가 도입됐지만, 도입 시부터 적용 제외(contracting-out) 규정을 두어 사적 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대처 정부 이후 공적 소득 비례 연금을 약화시키고 사적 연금을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크게 약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영국 국민들은 낙인 속에서 사회 부조를 수급하는 이들과 공적 복지 체계를 벗어나 시장에서 복지를 구매하는 이들로 분리되었다. 보편주의의 이상이 '하나의 제도 안에 전체 시민을 포괄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성을 확대한다'는 것에 있음을 고려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동일한 제도, 동일한 급여로 보편적인 사회 보장을 추구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사회적 연대성을 약화시킨 것이다. 

체제 차원의 보편주의 : 북유럽의 경우 

북유럽에서 보편주의는 이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북유럽 국가들도 연금 제도를 비롯한 현금 급여에 전 국민을 포괄시키는 보편적 적용 원리를 채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로그램 차원의 보편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특히 급여 측면에서- 여러 할당 원리를 결합했다. 연금 제도에서 스웨덴이 1960년, 핀란드가 1962년, 노르웨이가 1967년에 공적 소득 비례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1960년대에 북유럽 국가들은 연금뿐 아니라 질병, 재해, 실업 보상 영역에서도 단일한 정액 급여를 소득 등급별 급여로 전환하였다. 급여에서 과거 소득을 고려하는 선별주의 성격을 혼합하여 급여 적절성을 개선함으로써 중산층이 사적 영역의 복지로 이탈하지 않도록 하였다. 

저소득층에 대한 보충 급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핀란드와 덴마크에서는 초기부터 기초연금에 저소득층에 대한 보충 급여를 결합했으며, 1960년대에 북유럽 4개국 모두에서 주거 수당을 비롯한 저소득층 대상 급여들이 크게 확대했다. 이는 소득 조사를 거친다는 점에서 잔여주의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공공 부조의 자산 조사보다 느슨한 소득 기준을 적용하고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인구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낙인 문제를 감소시켰다. 보편주의의 기반에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 원리를 결합한 것이다.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모든 사람을 소득과 무관하게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되, 프로그램의 운영은 필요를 고려하여 완전한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였다. 그 결과 빈곤층도 별도의 사회 부조가 아니라 보편적 제도 내에서 필요를 해결할 수 있었다.

북유럽에서 일찌감치 발달한 사회 서비스는 아동·노인·장애인 등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였는데,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북유럽 복지국가의 중요한 지지층이 된 것은 보편적 서비스의 영향이 크다. 또한 국민보험을 정액 보험료에 의존함으로써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급여 조정이 어려웠던 영국과 달리, 사회 지출의 많은 부분을 국가 재원으로 조달한 점도 정액 기여와 정액 급여의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다.

북유럽 보편주의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편주의의 동일성 원리로 인한 획일성·경직성에 대한 비판은 북유럽에서도 나타났다. 1960년대 말에는 스웨덴에서 경제 발전과 보편적 복지로 인한 생활 수준 향상을 따라가지 못한 사회적 취약 집단들을 위한 '관대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에는 성, 민족, 장애 등 개인의 다양성이 부각되면서 보편주의의 '동등한 대우'를 넘어 다양성의 수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북유럽에서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은 보편주의 원칙의 폐기보다 개선을 요구하였다. 역사적으로 북유럽의 보편주의는 '필요를 가진 모든 시민을 공적 제도로 포괄한다'는 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다양한 할당 원리를 유연하게 결합해왔기 때문이다. 

역사적 보편주의의 교훈 

영국과 북유럽에서 전후 보편주의 원리의 도입은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영국은 포괄적 적용 범위, 정액 기여, 정액 급여와 같은 프로그램 차원의 보편주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 인구 집단의 다양한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북유럽에서는 포괄적 적용 범위라는 보편주의의 핵심 원칙 위에 개인별, 집단별 필요에 따라 급여 수준이나 형태를 달리하였고, 이는 사회적 연대와 평등이라는 보편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좀 더 성공적이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왜 나타났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핵심은 보편적 복지국가가 어떻게 서로 다른 사회집단들의 필요를 제도화했고, 이것이 다시 사회집단 간 연대를 형성했는지에 있다. 영국은 국민보험을 통해 적용 범위 차원의 보편성을 확보했지만, 낮은 급여 수준 문제로 중간층은 직업 복지나 시장 복지에, 노동 계급의 하층은 공공 부조에 의존하게 되었다. 보편주의 원칙이 사회집단 간 연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편화한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복지 프로그램 자체가 사회집단 간 연대와 타협의 과정에서 제도화됐다. 스웨덴 사민당이 1930년대 보편주의 방식을 수용한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노동자 계급보다는 연정 파트너였던 농민당의 필요를 의식한 것이었다. 핀란드의 보편적 기초연금 및 보충 급여 또한 농민들과의 타협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1960년대 소득 비례 급여의 도입은 전체 사회의 생활 수준 개혁에 맞추어 공적 급여가 중간층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편적 사회 서비스는 중간층은 물론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필요도 묶어냈다. 

이처럼 노동자, 농민, 중간 계급과 같이 서로 다른 집단들의 연대 과정에서 형성된 제도는 때때로 보편주의의 이념형에서 벗어났지만, 다양한 필요의 공통분모를 찾아냄으로써 보편적 복지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요컨대 보편주의를 위한 연대는 보편주의 원칙의 유연한 적용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들의 상이한 필요를 묶어낼 수 있는 의제를 제도화함으로써 형성됐다. 이에 대해 복지국가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학자 볼드윈은 "사회적 연대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위험'이라는 공통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우리에게는 어떤 보편주의가 필요한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가?" 

누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편 대 선별' 논쟁이 벌어진 2010년에 비해 우리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헬조선', '지옥불반도', '흙수저'와 같은 담론이 상징하듯 점점 더 상황은 나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복지 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각지대'다. 국민연금, 실업 급여,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 등 주요 사회 보장 제도가 모두 상당히 큰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사각지대에 이 제도들의 지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는 가장 유연하게 적용할 경우에도 '필요를 가진 모든 이들을 포괄하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복지 급여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는 데 보편적 복지가 가장 적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보편주의의 교훈은 무조건적인 보편주의 원리 강화가 체제 수준에서의 보편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동일성(sameness) 원칙에 대한 집착은 개인별·집단별 필요의 종류와 수준에서 나타나는 다양성 문제에 봉착한다. 이 충돌에서 프로그램 차원의 보편주의를 원칙적으로 고집한 것은 평등과 통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보편주의 원리의 유연한 적용을 통해 사회 집단들의 다양한 필요를 결합해냈을 때, 사회적 연대가 확대되고 평등이 증진되었다. 더 원칙적인 보편주의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기본 소득'을 통한 접근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기본소득은 '필요에 따른 보편성'에 입각한 기존 사회 수당보다 더 무조건적인 보편성에 기초한다. 물론 제도가 형성된 시대적 배경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겠지만, '보편성 원칙'의 강화로 사회의 다양한 필요를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역사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부분은 보편주의의 확대가 사회적 약자의 상황까지 자동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집단들의 다양한 필요의 반영은 중산층 이상뿐 아니라, 빈곤층의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를 포괄한다. 근래 부각되고 있는 성, 민족, 장애 등으로 인한 개인의 다양성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인 '다양한 필요를 고려한 보편주의의 유연성과 포용성'은 현재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의제 중심의 사회적 연대를 향하여 

보편적 복지국가가 그것을 추동하는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우리의 상황은 서구 복지국가 확장기와 크게 다르다. 고용 형태, 기업 규모, 성별 등에 의해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으며, 종사하는 부문에 따라, 개별 노동자의 숙련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노동 환경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계급 간 협력을 말하기에 앞서 '노동 계급의 공통성'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노동조합 조직률도 낮고 진보 정당은 영향력이 미약해 계급 간 연대를 주도할 주체도 연대의 파트너도 정치 세력으로 뚜렷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가능성은 보편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연대의 핵심이 계급보다 공통의 이해라는 데 있다. 과거처럼 '노동자', '농민', '중간 계급'이라는 대규모 집단의 공통의 이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의 여러 집단이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컨대 '고용 불안정'은 한국 사회의 대다수 경제 활동 인구가 공감할 수 있는 의제다. 고용보험의 적용 범위와 급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을 넘어 연대를 형성하는 의제가 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여 의료비 문제를 해결고자 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대다수 건강보험 가입자는 물론 의료 급여 수급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의제다. 보육이나 노인 돌봄 영역의 공적 서비스 확대나 기초연금 강화를 통한 노후 불안 해소도 빈곤층에서 중산층 이상까지 연대할 수 있는 의제가 된다. 

과거보다 계급 구조가 복잡해지고 노동 계급의 지도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처럼 다양한 필요를 묶어내는 의제를 통해 연대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촛불 시민'이 보여준 정치적 영향력은 '의제 중심 연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간의 촛불은 주로 대통령 탄핵과 같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 공동의 이해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의제를 발굴할 수 있다면 그 에너지를 보편적 복지국가의 기반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전통적 복지동맹이 허약한 우리 사회 환경에서 '조직'이 아닌 '의제'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 네트워크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