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오늘] 이재용 게이트, 국민연금이 3조원 ‘삥뜯기’ 공범이었다

2016. 12. 26. 14:3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다시 삼성을 묻는다 4] 국민연금의 이해할 수 없는 합병 찬성, 그리고 집중 매수... 투자위원회 논의 과정도 의혹


[미디어오늘 홍순탁 회계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


20년 전인 19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가 매우 낮은 가격에 발행된다. 정상적인 주주라면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 없지만 삼성전자, 제일모직, 중앙일보, 삼성물산 등은 이러한 기회를 모두 포기한다. 주주가 포기한 전환사채는 이재용 남매에 배정되어, 단숨에 이재용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다. 편법상속의 시작이다. 에버랜드는 레저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계열사 일감 물량을 확보하면서 건설, 급식/식자재 유통, 건물관리 분야에도 진출하게 된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한다. 자기자본은 1999년말에 0.4조원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2009년 2.3조원까지 증가한다. 주주의 돈을 더 투자하는 증자는 없었다. 계열사들의 도움이 있었을 뿐이다. 

2010년 에버랜드의 자기자본이 급증한다. 2009년 2.3조원이던 자기자본이 1년 만에 4.3조원으로 증가한 것이다.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이 상장되었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상장차익을 보험계약자와 공유하지 않고 주주가 모두 차지하도록 한 결정의 수혜를 받아 그 상승폭이 더 컸다.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의 취득원가는 348억원인데, 삼성물산과의 합병시점에서 그 주식의 시가평가액은 3.7조원에 달했다.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되는데 큰 몫을 담당하게 된다. 

2011년 삼성이 바이오산업에 진출하기로 하면서 에버랜드는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주주로 투자하게 된다. 막대한 현금보유를 한 삼성전자와 투자 여력이 많지 않은 에버랜드가 동일한 비율로 투자하게 되는데, 초기 투자비율은 삼성전자 40%, 에버랜드 40%, 삼성물산 10%, 외국인 투자자 10%였다. 유망한 사업기회를 재벌 오너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몰아주는 행태로, 이재용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투자비율이다. 

이후 지속된 증자에 삼성물산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분율이 점차 줄어들어, 합병시점에서 에버랜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46.3% 보유하게 되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4.9%까지 줄어들게 된다. 합병 시점까지 에버랜드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투자한 금액은 4,800억원이며, 장부가액은 3400억원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은 내부적으로 합병비율을 계산할 때 이 비상장주식을 6.6조원으로 평가했다. 역시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정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2013년 12월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를 약 1조원의 가격으로 인수한다. 비상장 회사의 거래였기 때문에 거래금액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설명하려면 패션사업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야 하는 딜레마가 생긴다. 한편, 에버랜드는 2014년 1월 건물관리사업부를 에스원에 매각한다. 매각대금은 4948억원이었는데, 처분이익이 4791억원이었다. 

2014년 7월 제일모직은 삼성SDI에 합병되고, 에버랜드가 회사명칭을 제일모직으로 변경한다. 합병 시점을 기준으로 이재용, 이건희, 이부진, 이서현 등 4명은 제일모직(에버랜드)의 지분을 42.2% 보유하고 있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바뀌는 과정은 재벌 총수일가가 자본시장을 왜곡한 역사의 축소판이다. 

삼성전자 등이 에버랜드의 저가 전환사채를 포기함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계열사의 나머지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 삼성생명의 상장차익을 주주가 독점함에 따라 수많은 보험계약자들이 정당한 몫을 빼앗겼다. 일감 몰아주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 기회, 제일모직 및 에스원과의 사업부 양수도 등도 에버랜드와 거래한 상대방의 기타 주주는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를 4.1%(보통주 기준), 삼성SDS를 17.1% 보유하고 있었다. 합병직전인 2015년 3월말 연결재무상태표 기준으로 상장된 삼성계열사 시가총액은 13조원이었다. 여기에 비상장주식 0.6조원, 매각예정 주식 0.5조원과 관계기업 투자 0.9조원을 포함하면 총 15.0조원이다. 자산규모 면에서 제일모직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영업측면에서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에서 각각 업계 1위를 다투는 강자였다. 2014년 연결기준 영업이익도 6524억원으로 제일모직의 2134억원의 3배를 넘었다. 객관적인 지표에서도 구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보다 우수한 영업실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의 보유지분은 없었다. 이재용, 이건희, 이부진, 이서현의 지분율 모두 합해도 1.4%였다. 이재용 일가에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 

주식시장에는 삼성물산과 같은 ‘대형주의 주가는 조작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2015년 상반기에, 삼성그룹이 이재용 일가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누르고 있다는 수많은 소문이 떠돌았지만, 쉽게 입증되지는 않았다. 

의혹에서 끝나는 줄 알았지만 반전이 생긴다.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청구한 주식매수가격 결정판결(2016년 5월30일)에서 서울고등법원이 가격 재산정의 근거로 삼성물산의 주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이 주식매수가격을 변경하라고 한 이 결정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명시된 기간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2015년 상반기의 삼성물산 주가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이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에 준하는 사건이 있었기에 주식매수가격 결정의 기준일을 5개월 앞당기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은 삼성물산의 의도적인 실적 축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로 지적된 것은 국내수주 문제였다. 2014년 하반기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많은 조치가 취해졌고, 그 결과 미분양 주택이 빠르게 감소했다.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건설사들은 발 빠르게 2015년 상반기부터 공격적으로 분양물량을 늘려갔다. 

그런데 유독 삼성물산만 이러한 흐름에서 빠져 있었다. 모처럼의 대목시장인데 시공능력으로 보나 브랜드 이미지로 보나 업계 1위인 삼성물산이 주택공급을 늘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국내수주 부진이 삼성물산 주가 낮추기와 연관이 있다고 강하게 의심했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리스크가 있는 국내 분양시장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경영전략의 변경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전략의 변경을 뒷받침하는 내부 문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합병과정이 다 끝난 후 서울 지역 등에 만여 가구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해외 수주문제로, 삼성물산은 합병 이사회 결의일 이전인 2015년 5월 13일 카타르에서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금액이 2조원인데, 이는 2014년 해외 수주액의 25%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그런데,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 합병과정이 다 끝난 이후인 2015년 7월28일에서야 공개했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5월13일은 계약해지가 가능한 제한착수 지시서를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시를 하지 않았고 7월28일에 계약해지가 불가능한 낙찰통지서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공시행위가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1심 재판부는 규정 위반이 아니므로 이 부분을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물산의 과거의 공시 관행까지 확인했다. 2011년 사우디 복합화력발전소 공사에 대해서는 제한착수 지시서만을 받은 상태로 공시한 적이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은 해외 수주 미공시도 주식매수가격 재산정의 근거로 인정했다. 

세 번째로 계열사 내 수주 상황의 변화가 지적되었다. 삼성물산이 주관하던 공사 중 일부가 2014년 말과 2015년 초에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넘어갔다. 삼성전자가 발주한 베트남 투자 프로젝트 2차 공사의 주관업체가 2015년 2월 경에 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변경되었고, 서울대학교 내 부설연구소 공사업체도 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바뀌었다. 

독립적인 경영진이었다면 정상적으로 하고 있던 공사를 계열사에게 넘기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물산의 경영진은 발주처의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계열사로의 물량 이전도 주식매수가격 재산정의 근거로 인정되었다. 

2015년 1월2일 대비 5월22일까지 건설업종 지수는 28.7% 상승했다. 주요 건설사 모두 비슷하게 상승하여, 같은 기간 동안 GS건설은 33.0%, 대우건설은 31.5%, 대림산업은 29.6%, 현대건설은 17.2% 상승했다. 다만, 삼성물산은 나 홀로 8.9%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의 주가가 하락하여 이재용 일가에 가장 유리한 시점에서 합병을 결정했다. 합병비율이 1 대 0.35 까지 내려가, 이재용 일가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극대화 되는 시점에서 합병이 결정되었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을 1 대 0.35라는 매우 유리한 비율로 흡수합병한 후 다시 회사명칭을 삼성물산으로 변경하였다. 이재용 일가는 유리한 합병비율에 힘입어 통합 삼성물산의 30.42%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2015년 9월15일 재상장일 종가 기준으로 이 지분의 가치는 9.4조원에 달한다. 




2015년 3월26일 기준으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주식을 1784만8408주 가지고 있었다. 지분율로 계산하면 11.43%에 해당한다. 그런데 합병비율이 산정되는 기준일인 합병 이사회 결의일 전일까지 지속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한다. 총 294만1962주들 매도하여 2015년 5월22일에 1490만6446주(9.54%)만 보유하게 된다. 약 300만주는 삼성물산의 거래량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물량이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이 부분을 문제 삼은 서울고등법원도 이러한 주식 매도가 정당한 투자판단에 따른 매도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상한 매매패턴이 계속 이어진다. 

2015년 5월26일 합병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합병비율이 약 1 대 0.35로 정해졌다. 이렇게 합병비율이 정해지고 나면, 실제 합병주식이 발행될 때까지 차익 거래가 가능하다. 이 비율대로 합병이 이루어지면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0.35주는 같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즉, 제일모직의 주가와 삼성물산의 주가의 비율이 0.35를 넘으면 비싼 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제일모직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반대로 그 비율이 0.35에 미달하면 비싼 제일모직 주식을 팔고 삼성물산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2015년 5월26일 이후 합병 주주총회일까지 대부분 기간동안 그 비율이 0.35를 넘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상식적인 투자자라면, 당연히 삼성물산의 주식 보유비중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주식을 열심히 매수했다. 2015년 6월30일까지 376만4652주를 매수하여 1867만1098주로 보유지분을 늘리게 된다. 

이사회 결의일 이후 이해할 수 없는 매수행위는 서울고등법원 결정에 영향을 준다. 단순 의심 수준이었던 이사회 결의일 이전 매도행위가 납득하기 어려운 그 이후 매매패턴으로 인해 좀 더 강한 의심으로 발전한다. 결과적으로 주식매수가격 재산정의 근거로 인정된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보면 의결권은 기본적으로 국민연금공단 내부에 설치되는 투자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다. 결정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의 자문의견을 구할 수 있고,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문의견을 구하는 것과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하는 것이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러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은 민감한 사안인 경우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하는 관행을 보여 왔다. 

자문의견을 살펴보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명확한 반대의견을 낸다. 이 뿐만 아니라 ISS, 글래드루이스,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여러 자문기관도 모두 반대의견을 낸다. 특히 ISS는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 심각하게 불리(significantly disadvantageous) 하다며 반대한다. ISS가 평가한 적정 합병비율은 1 대 0.95로 알려졌지만 최종적으로는 1 대 1.21까지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ISS는 삼성물산 주주입장에서 심각하게 불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일모직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건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삼성물산의 지분율이 높은 만큼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의 기준은 삼성물산 입장에서의 유·불리에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모든 자문의견이 ‘반대’인 상황에서 국민연금공단은 내부 투자위원회 논의를 다음의 조건에서 진행하였다. 

첫째, 투자위원회 구성인원을 변경하였다. 뉴스타파의 11월24일 보도에 따르면 대체투자실장은 투자위원회 직전인 7월1일 교체되었다. 교체된 윤아무개 실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교체된 이유가 그동안의 투표 행태를 볼 때 반대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팀장급 참석자 중 2명도 통상적으로 들어가던 팀장에서 다른 팀장으로 변경되었다. 홍완성 본부장의 지시였다. 공교롭게도 새로 교체된 3명은 모두 찬성투표를 했다. 

둘째, 표결방식을 변경하여, ‘전문위원회 부의’라는 선택지를 없앴다. 4가지 표결결과 중 하나에 투표하라고 하는데, 4가지 선택지는 ‘찬성’, ‘반대’, ‘중립’, ‘기권’이다. 4가지 선택결과 과반이 나오지 않으면 ‘전문위원회 부의’가 되는 방식이나, 종전 방식과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이러한 변경은 안건 자체가 복잡하고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워 ’전문위원회 부의‘로 투표하고 싶은 위원들도 억지로 무언가에 투표하도록 만들었다. 

셋째, 합병 시너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삼성이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 확보는 이미 삼성계열사가 97.5%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계열사간 지분변동일 뿐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협력도 계열사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방안들이었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의 채준규 리서치팀장은 독자적인 검토 없이 삼성그룹이 제시한 내용을 토대로 상당히 큰 합병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넷째, 합병비율에 대한 내부 검토결과가 불공정하게 작성되었다. 회계법인 2곳의 산정결과도 세부내역을 검토해 보면 심각하게 불공정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자체적으로 두 기업의 기업가치 분석을 수행하여 1 대 0.46이라는 적정합병비율을 도출했다. 회계법인 2곳도 기업가치 분석에 근거하여 각각 1 대 0.38, 1 대 0.40이라는 적정합병비율을 산출하였다. 3개의 평가결과는 1 대 0.35라는 실제 합병비율이 크게 왜곡된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수치였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과 회계법인의 산정내역을 세부적으로 검토해 보면, 현금성자산의 누락, 상장주식에 대한 과도한 할인율 적용,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과대평가, 토지와 영업가치 평가의 불공정 등이 발견된다. 이러한 차이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할 경우 적정합병비율은 모두 1 대 1에 가깝게 산출된다. 공정한 평가결과가 산출되어 투자위원회에 보고되었다면 결론이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는 차이이다. 

다섯째, 합병 시너지와 합병비율에 대한 자료를 활용하여 회의를 찬성방향으로 유도했다. 홍완선 본부장과 채준규 리서치팀장은 회의를 주도하면서 합병 시너지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합병비율은 좀 불리해 보이나 큰 차이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합병비율을 상향조정해 합병을 가결시키면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에서 더 좋은 결과가 도출되나 이러한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합병비율 수용과 합병 무산의 2개의 선택만 가능한 것처럼 회의를 진행했다.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위원의 경우 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모든 조치가 반영된 결과 12명의 투자위원회 위원 중 8명이 찬성하였다. 2명의 선택이 바뀌었다면 찬성결정을 할 수 없는 근소한 차이였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러한 표결결과를 가지고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부의 절차가 필요 없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의 도움으로 삼성물산의 합병은 가결되었다. 당시 주주총회는 83.57%의 주주가 참석하였고, 이 중 69.53%가 이 사건 합병 안에 찬성하였다. 11.2%를 소유하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이 반대하였다면 이 사건 합병 안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는 상황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진행된 비슷한 안건은 다른 절차로 진행되었다. SK SKC&C 간의 합병은 최태원 일가의 지분율이 다른 두 회사를 합병하는 건으로 삼성물산 합병과 매우 유사했다. 국민연금공단은 SK합병 건의 경우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했다. 전문위원회에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며 ‘반대’를 권고했고, 그대로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를 했다. 

합병비율에 따른 이해관계자 간의 이해득실에 대한 여러 정보가 혼란스럽게 돌아다닌다. 대표적인 자료가 국민연금공단 회의록에 나온 자료와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이다. 

국민연금공단 회의록의 자료는 합병비율이 증가하여 전체 주식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주가가 유지된다는 비합리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재벌닷컴의 방법은 합병이후 매매를 통해 주식수가 변동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확한 방법이다. 또한, 합병 이후에 주식을 보유할 것인지 매도할 것인지의 결정은 별도의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다. 합병 이후 전체적인 주가가 하락하여 발생하는 손실까지 합병에 따른 손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위에서 언급된 두 방법의 단점을 보완하여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하였다. 우선, 계산시점은 합병이후 재상장일(2015년 9월15일)로 정했다. 합병 이후 전체적인 주가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다음으로, 합병이 성사되면 통합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주식수와 무관하다는 가정을 사용하였다. 자사주 효과와 동일하게 가정하는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하여 유통주식수를 줄이면 그 효과만큼 주가가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를 적용하였다. 




만약 합병이 1 대 0.46의 비율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이재용 일가의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28.01%가 된다. 1 대 0.35로 합병한 후의 실제 지분율이 30.42%이기 때문에, 2.41%p 만큼 지분율 차이가 발생한다. 그 지분율 차이에 재상장 시점의 시가총액 30.9조원을 곱하여 이재용 일가의 이득추정액 7445억원을 계산하였다. 

지분율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략 국민연금공단이 입은 손실의 6배 만큼 이재용 일가의 이득이 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의 자체분석이나 회계법인들의 적정 합병비율 산정결과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정하게 계산하면 1 대 1의 비율이 산정된다. 1 대 1를 기준으로 하면 국민연금공단은 약 5000억원 손실을 보았고 이재용 일가는 약 3조원의 이득을 챙겼다. 

합병 비율 협상은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이재용 일가의 이득과 국민연금공단의 손실 차이만큼은 나머지 주주에게 귀속된다. 나머지 주주에는 외국인투자자도 있지만, 직접 소액투자자도 있고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자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입은 손해만 부각되고 있으나 직접 소액투자자와 펀드 간접투자자도 만만치 않은 손실을 보았다. 

삼성 이외의 다른 재벌들도 3~4세 상속과정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자본시장을 활용한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해서라도 삼성물산 합병과정의 문제점은 철저히 수사되어야 한다. 이 편법적인 거래를 통해 이득을 본 이재용 일가, 그것이 가능하게 도와준 국민연금공단 관련자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에 그러한 압력을 행사한 사람 모두 강력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편집자주> '다시 삼성을 묻는다' 기획 연재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slw.or.kr)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홍순탁 회계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