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 10:51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공동운영위원장
우리나라 재정정책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꼼수가 도를 넘는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일으키고 책임을 지기보단 상대방에게 전가하니 사사건건 갈등 비용만 더한다. 왜 이리되었을까?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의 재정 공약만 본다면 오늘의 사태를 상상하기 힘들다. 누구보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가장 꼼꼼하고 체계적이었다.
예를 들어, 문재인 후보가 기초연금, 장기요양, 장애인급여, 기초생활보장 공약에 필요한 소요재정을 하나의 묶음으로 발표해 내역을 검증할 수 없었던 반면 박근혜 후보는 항목별로 필요재정을 제시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또한 소요재정을 계산할 때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부담 증가도 포함하고 해당 재원을 충당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국정운영의 시야가 돋보였다. 취임 후에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역대 정부 최초’의 일이라며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공약 이행과 정부 재정 운용에 불신이 큰 우리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재정 분야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자부심도 커서, 대통령의 이야기만 들으면 지출개혁을 통해서 대규모로 돈을 마련하고 해외 탈세도 금세 잡아낼 듯했다.
결국 문서와 말뿐이었다. 복지공약에 따라 지자체 대응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인정해 “지방재정 부담 충분히 감안한 재원조달” 원칙을 천명했으나 대표 공약인 기초연금에서 국고보조율을 그대로 고수해 지자체 허리가 매년 휘고 있다. 누리과정 어린이집 몫까지 감당할 교육청 부담을 고려해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을 공약집에 명시했으나 기존 교육교부금으로 운영하라고 책임을 떠넘겨 매년 누리과정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금고에 돈이 없다. 임기 4년에 누적 재정적자가 126조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총 135조원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건만 아마도 퇴임할 땐 그 이상의 적자를 남기는 ‘재정 낙제’ 성적표를 받을 듯하다. 국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한 조세부담률임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강행된 감세를 유지한 자업자득이다. 애초 지출개혁 공약이 과장돼 있었고, 재정수지는 세입과 세출의 짝이기에 지출에서 성과가 없으면 세입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건만 ‘증세 없는’ 국정을 고집한 결과이다.
대신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내세웠다. 바로 지방정부이다. 자신이 약속한 ‘한국형’ 복지국가와 별개로 지자체, 교육청 곳곳에 낭비가 있다는 논리다. 작년부터 박근혜 정부는 지자체가 벌이는 자체 복지를 유사중복 사업으로 몰며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기초연금 지출 증가로 살림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지자체에 장수수당과 같은 다른 노인복지를 줄여 비용을 충당하라는 압박이다. 교육청에는 다른 사업을 줄이거나 다음해 재정을 당겨쓰면 누리과정 예산 여력이 생긴다는 억지를 편다.
최근에는 지방정부 편가르기 카드까지 내놓았다. 지자체끼리 세입을 나눠 가난한 지자체 형편을 개선하자는 지방재정 개편안이다. 해당 지자체로선 필요경비를 스스로 마련해 지방자치 행정을 구현하는데 갑자기 세입을 넘기라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들 지자체가 잉여 재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녕 지자체 내부 분배를 제안하려면 방식도 지금과 같은 일방통행이어선 안된다.
중앙정부의 책임 전가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당사자인 지방정부에 달려 있다. 중앙정부의 갈등 유발 의도를 직시하고 지방정부들의 분명한 노선과 연대가 필요하다. 지방재정은 부족과 격차라는 두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근래 전체 틀을 옥죄고 있는 건 부족이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로 지방정부의 주요 수입원인 지방교부세, 교육교부금이 제자리이고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정 책임 회피로 지방정부 지출은 증가했다. 몇 개 지자체 세입을 돌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제를 야기하고 증폭시키는 것도 중앙정부이고 해결의 열쇠인 교부금과 보조금의 인상도 중앙정부 몫임을 분명히 확인하고, 현재 중앙정부의 재정력을 감안하면 증세 테이블도 과감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세입 기반을 지닌 지자체들의 통 큰 연대 노력도 요청된다. 지역간 경제력 격차가 큰 우리나라에서 이웃 지자체가 선보이는 신규 복지사업을 바라만 봐야 하는 가난한 지자체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지자체 내부에서 격차를 다루는 진지한 논의도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는 중앙정부에 대항해 재정개혁을 바로잡아갈 지방정부의 힘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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