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한노인회장 새누리 비례 신청, 우연일까?

2016. 3. 23. 17:4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인들이 총선에서 바라는 것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빨간색, 파란색, 연두색 잠바를 입은 사람들이 명함을 뿌리고 있다. 그 앞을 손수레에 폐지를 싣고 가는 노인이 지나간다. 명함을 돌리던 사람들이 차례로 노인에게 다가간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손을 꼭 잡고 지지를 호소한다. 노인은 무표정하게 후보자를 한 번 흘기더니 다시 손수레를 끌고 가던 길을 간다.

이번 총선이 폐지를 주워 살아야 하는 노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새누리당은 노인 복지 정책을 전담하는 노인복지청을 신설해 복지 전달 체계를 일원화한다고 한다. 또한 치매 어르신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공약은 2006년 5월 지방 선거 당시 한나라당 공약을 재탕, 삼탕한 것이다. 선거 때마다 여당이 수차례 약속해 왔지만 지키지 않았던 헛공약들이다. 

65세 이상 어르신 의료비 정액제 기준이 1만5000원이다. 병원비가 1만5000원 기준액 이내에서는 본인이 1500원만 부담하면 되지만, 1만5000원에서 10원만 더 나와도 그 이상의 진료비에 대해서는 30%의 의료비를 본인이 부담한다. 의료비 정액을 1만5000원에서 2만 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린다는 공약. 공공 실버 주택을 연간 800호 수준으로 공급한다는 내용이 그나마 새롭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4년간 전체 공약에 약 15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증세 없는 복지를 통해 가능하다며 정부의 가용 재원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용 재원이라는 게 뭔지 애매모호하다. 

매년 10만개 일자리를 만든다는데 증세 없이 가능할까?

노인 공약과 관련해서 가장 큰 난센스는 일자리 공약이다. 새누리당은 어르신 일자리로 매년 재능 나눔형 일자리 1만 개, 공익 활동형 일자리 6만 개, 시장 취업형 일자리 3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연간 10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늘려나가, 4년 후엔 78만7000개의 어르신 맞춤형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특히 재능 나눔형 일자리의 경우 어르신들의 애로 사항을 반영하여 현행 6개월의 활동 기간을 9개월로 확대한다고 한다.



▲ 2016년 노인 일자리 사업 방향. ⓒ보건복지부


위 표대로 단순히 계산해도 재능 나눔형 일자리에 90억 원, 공익 활동형 일자리에 1940억 원, 시장 취업형 일자리에 7200억 등 매년 9230억 원이 필요하다. 4년간 3조6900억 원이 추가로 예산에 반영되어야 한다. 

대한노인회에게만 제공된 특혜 

재원 조달뿐 아니라 일자리 특혜도 문제다. 2014년 5월 국민 연금과 연계한 기초 연금법이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년유니온 어르신들과 당사자들이 반발했는데, 유일하게 대한노인회가 정부 정책을 수용했다. 국민 연금과 연계하고 소득이 아닌 물가와 연계한 기초 연금으로 소득 저하를 우려한 노인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일자리가 '재능 나눔형' 일자리다. 

재능 나눔형 일자리는 대한노인회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노인 일자리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은 노인 복지관, 시니어 클럽, 대한노인회가 있다. 이 세 기관은 재능 나눔형을 비롯한 다른 유형의 일자리를 할 수 있다. 노인 복지관, 시니어 클럽을 제외하고 대한노인회만 재능 나눔형 일자리를 하게끔 한 것은 특혜가 아닐까?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고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전수하고자 했던 김순길(가명·75) 어르신은 재능 나눔형 일자리를 하려고 복지관이나, 시니어클럽에 찾아갔더니 "재능 나눔형 일자리는 대한노인회에서 하는 거예요, 대한노인회에 가서 신청하세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왜그러냐?"고 하는 김순길 어르신 물음에 "지침이 그래요"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대한노인회는 왠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곳으로 인식돼 가기 싫어, 가도 대한노인회 회원으로 가입해야 일자리를 얻지 않겠어? 자기 회원이 우선일 테니까." 김순길 어르신은 덧붙였다. "어르신 애로 사항을 반영해 6개월에서 9개월로 한다고? 솔직히 대한노인회 회원들 애로 사항이겠지." 이번 총선에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2월 15일 어르신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대표 인사말을 했다. ⓒ청와대


고령자 적합 업종에 정년 철폐  

"어르신은 노인 일자리를 하세요. 이 일자리는 안 돼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돼요." 장승익(가명·76) 어르신은 구청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장승익 어르신은 독거노인이다. 고시원에서 매월 20만 원을 내고 산다. 수입은 기초 연금 20만 원, 노인 일자리 급여 20만 원이다. 월세를 내고 남는 20만 원으로는 식비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난다. 수입이 좀 나은 일자리을 찾다가 구청에서 낸 지역형 마을 공동체 일자리 공고를 봤다. 주 30시간 근무에 한 달 급여가 92만 원이다. 이거다 싶어 서류를 들고 구청을 찾았던 것이다. 

지역형 마을 공동체 일자리 지침에는 노인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65세 …이상 어르신 사업 참여 희망자가 있으면 노인 일자리로 안내를 한다. 그래도 사업 참여를 희망할 경우엔 주 15시간에 46만 원을 지급한다. 16년에는 지자체별 선발 인원의 20%만 노인으로 선발한다. 17년부터는 선발을 제한한다. 

노인 참여를 제한할 만큼 강도가 높은 일일까? 공원 관리, 재활용 관련, 마을 가꾸기, 공동 작업장 운영인데 얼핏 보아도 어르신 적합 직종이다. 

"한 70만~80만 원은 벌어야 하는데, 그래서 지역형 마을 공동체 일자리를 지원한 건데…. 하긴 다른 곳에서도 서류 합격해도 등본만 제출하면 나이가 많다고 안 써." 장승익 어르신은 거의 하루를 집에서 보낸다. 나가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주변 관계들이 끊어진다며 걱정한다. 

"가족이 없으니 바다에 뿌려주세요"라며 고독사한 노인 부부 사연을 방송에서 듣고 남 일 같지 않다고 한다. "돈이 없어 집에만 박혀 있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내 모습이 떠올라."

서울시립대에서 청소를 하던 70대 노동자들이 겪은 아픔도 정년 제도 때문이었다. 간접 고용 형태였던 청소 노동자들을 서울시가 직접 고용하면서 정년 65세 규정을 들어 65세가 넘은 어르신들을 계약 해지했던 사건도 있었다. 용역업체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일하는데 지장만 없으면 70세가 넘어도 고용이 되었던 분들이었다.

연령 차별은 고용 보험에도 있다. 65세가 넘어서 취업을 했다가 일시적 실업에 처해도 실업수당을 받지 못한다. 같은 노동을 하다 실업을 당해도 나이에 의해 받고, 못 받고 한다.

"고령자 고용 적합 직종에서만이라도 정년을 폐지하고, 65세 넘어도 실업 수당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장승익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릴 정당이 있으면 좋겠다.

12년간 동결 노인 일자리 급여 

2004년 노인 빈곤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도입된 제도가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당시 급여가 20만 원이었다. 12년이 지난 2016년에도 노인 일자리 급여는 변동이 없다. 물가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30%가 상승했다. 노인 빈곤이 감소되지 않고 치솟는 이유 중 하나가 물가 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낮은 노인 일자리 급여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인 일자리 급여를 단계적으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임기가 2년이 채 남지 않았음에도 약속 이행 여부에 대한 말이 없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 연금 20만 원 지급 약속을 지키지 못해 노인들에게 사과 한 것과 비교가 된다. 노인 일자리 급여가 40만 원이 되면 기초 연금 20만 원을 보태 1인 최저 생계비 62만 원을 거의 맞출 수 있다. 

'줬다 뺏는 기초 연금' 중단 

노년의 삶은 일자리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된다. 연금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일할 수 없는 어르신들도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노인 93%가 기초 연금이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기초 연금의 주요 사용처가 식비(40.2%), 주거비(29.9%)라고 응답한 노인이 70%에 달한다. 기초 연금이 노인의 기본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노인인 기초 생활 보장 노인 약 40만 명은 사실상 기초 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 분들은 기초 연금 20만 원을 받고 곧바로 생계 급여에서 20만 원을 감액당한다. 생계 급여는 최저 생계비 기준액과 개인별 소득 인정액의 차액만큼 지급되는데, 기초 연금이 소득 인정액에 포함되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 한국헬프에이지(조현세 회장)의 노인참여나눔터 회원들이 2014년 10월 16일 충북 충주체육관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반대한다'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국헬프에이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기초 연금을 3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다. 만약 '줬다 뺏는 기초 연금'이 해결되지 않으면, 기초 생활 수급 노인들은 30만 원 받고 다시 30만 원을 빼앗기게 된다. 하위 소득 70% 노인이 기초 연금을 누리는데,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이 받지 못하는 것은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초 생활 수급자인 김호태(71) 어르신은 "현행 기초 연금법이 분명히 기초 생활 수급 노인에게 기초 연금 전액을 지급한다고 돼있어. 정부 논리대로 생계 급여의 보충성 원리가 중요하다면, 노인 생계 급여 기준을 기초 연금만큼 올려야지"라고 말한다. 이런 개선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그 때까지는 기초 연금이 생계 급여와 별도로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령층 유권자 표심에 주목하라 

지난달 기준으로 60세 이상 인구는 974만 명을 넘어서 약 1000만 표에 가까워졌다. 60대 이상은 투표율도 어느 세대보다 높다. 19대 총선에서는 60세 이상 투표율이 전체 연령층 중 가장 높았고, 18대 대선에선 투표율이 80%에 육박했다. 때문에 고령층 유권자 표심은 총선 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라 있다.  

무심히 명함을 받고 지나간 폐지 노인이 먼저 정치인들에게 다가와 "덕분에 살기 좋아졌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이번 총선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