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쿱 생협] 국민건강보험 개혁, 풀뿌리가 나서자

2015. 4. 19. 13:2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피니언 칼럼]

 

국민건강보험 개혁, 풀뿌리가 나서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내가 활동하는 단체 회원들이나 강연에서 만나는 시민들에게 묻는다.

‘올해 가장 주목해야할 핵심 복지 의제가 무엇일까’라고.

가장 많은 대답하는 것이 ‘병원비’다.

5천만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유일한 복지가 바로 국민건강보험이다. 2013년 지출 규모도 거의 40조 원으로 복지 부문에서 가장 크다.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병원비에 대한 걱정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괜찮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복지를 누려보지 못했다’고 탄식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으면 금새 수긍한다.

유럽 복지국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식코’의 나라 미국에 비한다면 자랑할 만한 제도이다. 그런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있다.


10년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 초반대이다.

동네 개인병원도 자주 가면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큰 병이 생겨 수술을 받거나 만성 질환을 앓는다면 본인부담금이 가계를 무겁게 누른다. 이 틈을 비집고 어느새 우리 일상 자리를 차지한 게 사보험이다.

거에는 암보험처럼 아프면 일정액을 보상해주는 ‘정액형’ 상품이 주도했으나 이제는 병원비 중 본인부담금을 지원해준다는 다양한 ‘실손형’ 보험이 널리 퍼져 있다. 어느새 국민건강보험의 성장마저 가로막는 위치에 서 있다.



물론 사보험도 개인의 병원비 위험을 가입자 전체가 분산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입원한 친지나 지인을 방문하면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사보험이다. ‘그나마 가입해 둔 보험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그런데 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 가입자가 치루는 비용이 너무 크다.
우선 사보험은 병원비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이익, 보험설계사 수당 등 사보험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가입자의 보험료로 충당한다. 모든 가입자가 사보험으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싼 상품에 가입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보장 범위도 빈약하다.



▷SBS에서 방영한 <최후의 권력> 중 ‘금권천하’ 의 한 장면


게다가 사보험은 불공평하다.

막상 급여를 받을 때면 조건이 까다로워 분쟁이 빈번하다. 작년 8월 노인실손보험이 출시되었는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이 진행한 가입 실태 조사를 보면 노인 10명 중 7명이 가입을 거부당했다. 건강한 노인만 골라 가입시킨다는 이야기다.

      


병원비를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사보험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을 더 키우면 된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은 가입자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가입자, 기업, 정부가 함께 재정을 마련한 덕택이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자신이 낸 만큼을 기업이 함께 납부하며, 정부도 보험료총액의 20%를 지원한다(애초 국고지원금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역할로 도입).

이 중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도 소득에 따라 정률로 정해진다. 그 결과 2013년 하위 5% 저소득층은 월 1만 5천원, 상위 5% 고소득층은 월 33만원씩 냈다. 동일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사보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은 가입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납부한 보험료 크기와 무관하게 아픈 질환에 따라 병원비를 동일하게 지원하고, 질병 전력이 있듯 없든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가입자로 인정한다. ‘능력에 따라 내고, 기업과 국가가 보조하며, 아픈 만큼 진료 받는’ 사회연대제도이다.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자.

방법은 명확하다. 사보험에 내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리면 된다.

2013년 세대별 평균 국민건강보험료가 월 9만원이다. 여기서 30%, 약 3만원만 더 내면 1년에 1인당 병원비 본인부담금 총액 상한을 100만원으로 정하는 ‘1백만원 상한제’가 가능하다. 비급여를 포함해 병원비 총액이 500만원이면 내가 100만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400만원, 총액이 1억 원이면 내가 100만원, 공단이 9,900만원 책임지는 방식이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병원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취약계층은 전액 정부가 책임지는 의료급여 적용).


이 방안에 대해 몇 가지 비판이 있는데, 거의가 오해 혹은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환자 부담이 사라지면 과잉진료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럴 듯한 추정이지만 실제는 반대이다. 병원비는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급여진료와 그렇지 않는 비급여진료로 구분된다.

급여진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공공기관이 진료 내역 심사를 거친 후 건강보험공단이 병원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한다.


반면 비급여진료는 병원과 환자 사이 직거래로 완료된다. 현재 과잉진료의 온상은 전문기관의 심사 사각지대인 비급여진료 영역이다. 건강보험 재정 확충으로 1백만원 상한제가 실시되면 의료 성격을 지닌 비급여 진료가 모두 급여로 전환되어 공적 심사체계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병원비가 심사받아야 하기에 불필요한 진료가 억제되고, 표준 진료 심사를 엄격하게 강화하면 기존 급여 지출도 줄일 수 있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을 반대하는 시민들


비급여의 급여화는 공공병원의 토대도 강화한다.

준표 경남도지사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때 이유가 의료원의 적자운영이었다.

공공병원은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 하지 않고, 여기서 일하는 의사들 도 대부분 교과서에 근거한 소신진료를 펼치기에 비급여 진료에 연연하지 않는다.

진료비 가격을 의료수가라 부르는데, 현재 급여진료 의료수가는 원가의 75% 수준이어서 진료할수록 적자를 야기하지만, 비급여진료는 190% 수준이어서 큰 이익을 낸다. 급여 진료에 충실한 공공병원의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착한 병원일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어처구니없는 구조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확충되어 기존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 모든 의료수가의 원가보상률을 비슷하게 조정할 수 있다. 공공병원 경영도 안정되어 지역주민 의료 센터로 뿌리를 튼튼히 하게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가장 뼈아픈 비판은 보험료 부과체계 형평성 문제이다.

근로소득 이외 종합소득을 가진 직장가입자,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피부양자, 지역의 고가재산가 등 상위계층이 경제적 능력만큼 보험료를 내지 않고, 대신 일반 지역가입자는 과도한 보험료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 올해 부과체계 개혁이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했다. 비록 박근혜정부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다루어질 것이다.


몇 년 전 시민단체들이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 병원비를 해결하는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을 추진했다.

안타깝게도 시민운동 내부의 갈등으로 불씨가 금새 꺼져 버렸다. 그럼에도 병원비를 걱정하는 민심의 에너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생활에서 매번 접하기에 어떤 복지보다도 시민들에게 익숙한 제도가 국민건강보험이다.



사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새롭게 ‘아래로부터’ 풀뿌리가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