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영세상인 울리는 민생법안?

2014. 9. 29. 14:0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민생 말하려면 독소조항 빼야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공동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 24일 법무부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면서 권리금 법제화의 길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600만 자영업자들의 '한'이 되어버린 권리금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놓은 점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환영받을 일이다.

늘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동안 입법에 나서지 않았던 정부와 정치권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입법을 회피한 탓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가계가 파탄 나고 빚에 허덕였으며 대한민국을 원망했는지 아는가?

IMF 이후 자영업이 급격히 팽창했다. 정리해고당하고 명퇴당하거나 회사가 망한 탓에 실직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살길을 찾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베이이부머 세대들과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자영업에 뛰어 들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입법 지연과 회피는 국회와 정부의 씻을 수 없는 무능과 무책임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이제야 나온 상가 세입자 개정안

정부의 개정안은 한 진보정당이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민생정책이라고 평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민생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다. 우선 권리금을 합법의 영역에 올려놓은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임대인에게 권리금 양도에 대한 협력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표준계약서 도입 방침을 밝히고 지역별로 분쟁조쟁위 설치를 담은 것도 잘한 일이다. 월세를 전세보증금으로 환산해서 총액을 정한 환산보증금액수(서울은 4억 원, 광역시는 2억4000만 원)를 기준으로 그 이하 세입자에게만 5년 계약연장권을 보장하던 조항을 바꿔 모든 상가 세입자에게 5년 개약갱신권을 보장한 것 또한 잘 한 일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은 문제와 독소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법무부는 임차인과 임대인이 대등한 '상생'의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여전히 임대인은 갑이고 임차인은 을이라는 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 세입자는 여전히 제외돼

특히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는 법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재개발, 재건축을 앞두고 있거나 지금 진행되는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세입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는 뭐냐고 우리는 봉이냐고 우리는 국민 아니냐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재건축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새로 개업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재건축될지 전혀 모르고 들어간 사람은 수십 년 모은 전 재산을 털어 가게를 낸 사람은 권리금 전액을 잃고 손 털고 나와야 하는가? 같은 사람인데 어느 곳에 장사를 하는가에 따라 한쪽은 권리가 보장되고 한쪽은 권리가 박탈되어 알거지 신세가 되는 기막힌 모순! 이게 대한민국의 법 정의인가?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입법을 한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의 권한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이다. 우선 임대차 계약 만기 3개월 전에 계약 해지를 통지하거나 임대차 계약이 끝난 뒤 2개월 동안만 권리금 양도에 협력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계약 끝나기 3개월 전에 말하면 그 3개월 동안 권리금 받고 나가라는 말이다. 계약 기간 끝나고 2개월 동안 알아서 빼서 나가라는 것이다. 정당한 값어치의 권리금을 받고 가게 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지역에 따라, 경제 상황에 따라, 업황에 따라 임자가 제때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매우 많을 것이다.  

세입자 울릴 독소조항들

문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임대인이 가게 양도를 하는데 '협력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사유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우선 연체 3개월 규정(10조 1항 1)은 가혹하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분더바'라는 가게를 운영했던 임차인은 3개월 연체했다는 이유로 가게를 강제 집행당했다.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어갔고 초기엔 장사가 안 되어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3개월 조항'은 가게도 빼앗기도 권리금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만드는 독소조항이다. 6개월 정도는 되어야 한다.

 


둘째, '건물이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 된 경우'(10조 1항 6) 조항도 악용되기 쉽다. '일부 멸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인데 시행령에서 보다 상세히 규정되겠지만 애매한 법 규정의 범위를 넘어 설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애매한 조항을 둘 것이 아니라 건물 정밀 진단을 해서 멸실 가능성이 있는 건물은 임대를 못 하게 하거나 멸실된 경우 임대인이 권리금을 보상하게 해야 한다.

셋째, '임대인이 안전·재건축 등의 사유로 건물을 점유해야 하는 경우'(10조 1항 7) 조항 역시 독소 조항이다. 안전에 대한 개념 규정 역시 임대인 위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세입자가 입주한 건물 안전진단을 자기 돈 들여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넷째,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10조 1항 8) 조항은 '관심법' 수준이다. 국가보안법처럼 애매한 법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갑질'의 전형으로 꼽히는 현장에는 이 같은 '현저한 위반', '중대한 사유' 같은 조항이 난무했다.

'권리금 양도 협력' 의무를 배제하는 조항은 더욱 심각하다. 우선 법 규정부터 살펴보자. 


   10조의 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

  1.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가 보증금 또는 차임을 지급할 자력이 없는 경우
   2.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가 임대차계약에 따른 의무를 위반할 것이 명백하거나, 그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와 임대차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3. 임대인이 임차건물을 1년 이상 영리목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


가게 양도에 대한 협력의무 기간이 2-3개월인 점을 생각할 때 위의 1호, 2호 규정은 임대인 위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3호 규정은 '독소 중에 독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항 자체가 얼마나 애매모호한가! 어떻게 법률 규정이 저렇게 포괄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건물주가 비영리 목적으로 뭔가 한다고 할 때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권리금 보호에 목적이 있는 법률인가 의심이 드는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임대료 상한제 강화하라

앞에서 말한 환산 보증금 문제를 조금 더 짚어 보자. 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5년 계약을 유지하는 안을 냈지만 일정한 환산보증금 이하(서울은 4억 원)의 세입자에게 적용되던 연 9% 상한제는 이번에 언급이 없다. 모든 세입자에 대해 인상률을 규제하지 않고 '영업 5년 보장'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눈물겨운 초기 투자와 희생으로 가게가 될 만하면 '임대료 상승 폭탄'을 던져서 내쫓는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엔 사실상 상한제 없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엔 이 상한제가 있어 그나마 다행인데 환산보증금 일정액 이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내친 김에 이번에 모든 세입자에게 상한제를 적용하는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하나 덧붙이면 제로 금리 수준 가까이 이자율이 내려가고 장사는 안 되는 요즘 연 임대료 상한률 9%는 너무나 높은 수준이다. 물가 수준으로 상한을 낮을 것을 제안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계약기간 되면 상가 세입자가 나가야 된다'는 사고방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집을 보금자리로 보아야 하듯 상가도 보금자리로 보아야 한다. 보금자리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누가 내쫓을 수 있단 말인가? 건물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한 곳에서 50년, 100년 사업을 하고 건물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건물 소유주의 보금자리가 중요하면 세입자의 보금자리도 중요하다. 보금자리를 타의에 의해 옮겨야 한다고 하면 이미 보금자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계약기간 10년으로 늘려야

상가 세입자의 경우 장기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드는 현 경제 정세를 맞아 그야말로 악전고투하고 있고 망해 나가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반면에 인테리어 고급화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터리어 비용은 폭증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5년의 기간은 너무나 짧다.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모임)와 많은 법률가, 시민단체에서는 적어도 10년은 보장해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처럼 9년 이하의 계약은 금지시키거나 영국처럼 무제한으로 보장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앞에서 살폈듯이 이번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많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소 조항을 담고 있고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법률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맘상모 회원 가운데는 오늘도 명도 소송의 위협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분들이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금 바로 입법 작업을 해야 한다. 피해 당사자인 상가 세입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상가 세입자의 권익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개정안을 내기를 바란다.

민생 정치한다면 독소조항 없애라

박 대통령은 '100% 국민통합'을 내걸고 대통령이 되었다. 상가 세입자, 주택 세입자 같은 사회적 약자가 임대인과 대등한 관계로 설 수 있도록 민생 입법을 해야 국민 통합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까지 말로만 '민생을 하겠다고 하는' 대통령, 말로만 '서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하는 정치인을 수도 없이 보았다. 이제 거짓말과 속임수는 안 통한다. '오로지 민생 정치', '오로지 민생 정책',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새누리당에는 임대인 국회의원들이 많이 있다. 새정치연합에도 임대인 국회의원이 여럿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입법을 지연시킬 생각일랑 애시 당초 접기 바란다. 부디 이번 입법안 정신을 살리고 독소 조항을 제거한 수정안을 내서 민생을 적극 돌보는 정치를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