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의사들도 반대하는 민영화, 왜 못 막나?

2014. 1. 6. 15:5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의료 민영화 배후엔 자본이 있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팀장, 가정의학과 의사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심상치 않다. 오죽했으면 보건복지부조차 '의료 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는 알림글을 홈페이지에 큼지막하게 내걸었을까. 정부는 원격 의료나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려는 것이 의료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변명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며칠 전 <문화일보>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의 51.3%는 현 정부가 의료 분야를 민영화할 것이라고 보았고, 34.3%만이 민영화하지 않을 것으로 답했다.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정부의 의료 정책이 의료 민영화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여론은 더욱 높았다. 철도, 의료 등의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서는 반대가 61.7%로 찬성보다 2배가량 높았다.

국민이 이렇게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의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에 있다. 원격 의료나 의료 분야 투자 활성화 대책 등은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의료 현장을 맡고 있는 의료인조차도 대부분 반대한다. 그래서 설령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기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강력히 밀어붙인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런 정책으로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가늠하기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의료기관의 수익 추구 경향이 더욱 커지리라는 점이고 이는 국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를 더 털어내기 위한 정책일 뿐이다.

의료 민영화의 배후에 자본이 있다

 

▲ 대한의사협회 소속 회원 2만 명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고 '원격 의료, 영리 병원' 철회를 촉구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의 배후에는 자본의 요구가 있다. 자본은 의료 분야를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로 판단해왔다. 자본 입장에서 철도, 의료, 수도, 전기 등 공공 분야는 국민의 필수재이고, 이를 사유화할 경우 안정적이면서도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정부 부처 중 기획재정부는 이런 자본의 요구를 대변하는 사령탑 구실을 해왔다. 중요한 의료 민영화 정책은 모두 기획재정부가 계획하고 추진해 왔다. 기획재정부는 의료 분야를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줄 사회보장 제도가 아니라, 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인 '의료산업'으로 바라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 계획',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신성장 동력 고부가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 여러 차례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고, 그 속에는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영리 의료법인 허용, 경제자유구역 영리 병원 추진, 유헬스 활성화, 민영 건강관리 회사 허용 등 무수히 많은 의료 민영화 정책들이 담겨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원격 의료,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 등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온 기획재정부 구상의 연속선상에 있다. 기획재정부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여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 정책을 주도해 왔다.

의료 민영화란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어야 할 보건의료를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일컫는다. 의료 민영화가 되면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데도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모든 국민이 필요한 만큼 평등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 사정이 의료 이용의 여부를 결정하는 의료 양극화로 귀결될 것이다. 미국식 의료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이 간다.

의료 민영화는 당연히 반대해야 하겠지만 반대를 넘어서는 활동도 중요하다. 설령 원격 의료나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을 국민적 여론으로 저지한다고 해서 의료 민영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료 민영화 반대를 넘어 그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 민영화 이미 진척되고 있어

우리는 의료 민영화 반대를 10여 년 동안 외쳐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료 민영화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왔다.

현재 3000만 명, 국민의 60%가 가입하고 있는 실손 의료보험이 의료 민영화의 대표적인 결과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취약하여 의료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다보니 보험 자본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한계를 메워주겠다고 나섰다. 이전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통계 자료를 보험사에게 넘겨주어 실손 의료보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2007년 출시된 개인대상 실손 의료보험 상품은 매년 300만~500만 명씩 날개돋친 듯 팔렸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1인당 월 실손 의료보험료로 5만~7만 원씩을 부담한다고 하니 연단위로 계산하면 무려 18조~25조 원에 이른다.

실손 의료보험의 출시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급격히 증가했다. 차라리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한다고 하면, 국민 전체가 부담해야 할 국민건강보험료는 6.5조 원에 불과하다(국민건강보험은 국민, 기업, 정부가 함께 재원을 분담하기에 국민이 6.5조 원의 보험료를 부담하면 기업과 정부의 분담금을 합치면 14조 원이 된다). 즉, 현재 3000만 명이 부담하고 있는 연간 실손 의료보험료의 3분의 1~4분의 1정도를 국민건강보험료로 돌리면, 3000만 명만이 아니라 전체 국민 5000만 명이 병원비 걱정없는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의료 불안을 국민건강보험이 아닌 민간 의료보험으로 해결토록 함에 따라 국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몇 배 높아졌다. 여러분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의료비 부담을 해결한다고 해보자. 아마 보험료가 수십만 원에 이를 것이다. 감당이 가능한가? 반면 실손 의료보험 대신에 국민건강보험료를 30% 더 내서 동일한 의료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면 각각 추가 부담분을 비교해 보라. 이것이 의료 민영화의 한 단면이다.

의료 민영화가 진척된 또 다른 측면은 의료 관광과 외국인 영리 병원이다. 이명박 정부는 영리 병원 허용,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국민건강보험 민영화 등 전면적 의료 민영화 추진이 촛불에 의해 좌절되자, 지엽적인 의료 민영화에 공을 들였다. 그것이 의료 관광과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영리 병원 허용이다. 내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영리 병원과 영리 추구 목적의 환자 유인·알선이 어렵게 되자,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리 추구를 하는 것은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며 피해나갔다. 이에 대해서는 대중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에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의료 관광이 상당히 허용되어 병원에 외국인 환자를 알선해주고 합법적으로 수수료를 받는 환자 유치 사업이 활발하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인 영리 병원도 법적으로는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외국인 영리 병원은 김대중 정부 후반부터 추진되었는데, 영리 병원 허용이라는 비판이 일자, 당시 정부는 외국인 전용의 의료기관일 뿐이므로 내국인 영리 병원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외국인 영리 병원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이 나타나지 않고, 경제자유구역도 활성화되지 않자, 내국인 진료도 필요하지 않느냐며 슬그머니 법을 바꾸었다. 내국인 진료를 해야 하니 외국인 영리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도 내국인이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외국인 의사는 10%만 충족하면 되도록 했다. 결국 외국인 영리 병원은 외국인이 50% 이상 투자하고(내국인이 49% 투자 가능), 10%의 외국인 의사를 고용하여(90%는 내국인 의사), 주로 내국인을 진료하는 병원이다. 이것이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된 외국인 영리 병원의 최종 모습이다.

의료 민영화 반대 넘는 처방 필요

이렇듯 의료 민영화는 상당히 진척되어 왔다. 그간 10여 년 이상 정부는 의료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고 진보적 시민단체 등은 반대하는 싸움이 진행돼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며 오리발을 내밀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관철시켜 나갔다. 즉,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은 잠시 의료 민영화 흐름에 제동을 걸 뿐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그만큼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의 이해와 요구가 거세다. 지금의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는 자본의 요구에 쉽게 흔들릴 만큼 매우 취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의 특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취약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은 의료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암보험, 실손 의료보험과 같은 민간 의료보험을 구매해서라도 의료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국민들은 막대한 민간 의료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의료패널에 의하면 2010년 가구당 민간 의료보험는 월 23만 원에 이른다. 보험자본의 급격한 성장 배경이 여기에 있다.

둘째, 자유방임적 민간 중심의 의료 공급 체계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은 국가가 직접 병원을 지어 의료 공급을 담당해왔다. 그래서 공공 병원의 비중이 60% 내외가 보통이다. 반면 우리는 국가가 직접 의료기관을 설립하기보단 민간 공급에 의존해왔다. 공공 병원의 비중이 10%도 안 되는 이유이다. 더욱이 국민건강보험의 취약한 재정으로 인해 보험수가는 저수가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대신 비급여의 경우, 민간 병원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게 하였다. 민간 의료기관은 저수가를 보상받기 위해 과잉 진료와 비급여 수가를 매우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또한, 조금씩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을 늘려나가더라도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 시민사회단체, 의료단체, 노동조합 등의 반대에도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은 끝내 폐업됐다. 한국의 공공 병원 비중은 10%가 채 안 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경쟁적 의료 환경에 놓인 민간 의료기관들은 동네 의원, 병원, 종합 병원이 서로 협력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 전달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환자를 두고 서로 무한 경쟁하였다. 그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 자본의 투자가 절실하였다. 재벌 병원들은 든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투자로 병원의 대형화를 이끌며 병원 간 양극화를 조장하였다. 이렇듯 의료 공급 체계가 자유방임적 시장 경쟁에 놓이면서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한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지금의 의료 공급 체계는 이익을 추구하는 외부 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었다.

이렇듯 취약한 보건의료 체계가 유지되는 한 의료 민영화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이 취약한 보건의료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만이 의료 민영화의 지긋지긋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유일한 길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주목하자

앞에서 취약한 보건 의료 체계의 두 가지 측면을 언급하였다. 이 두 가지를 정상화해야 한다. 첫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여 민간 의료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그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사회 연대적 보험료 인상을 통해 국민건강보험만으로 병원비를 해결할 재원을 확충하자는 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에서는 현재 국민이 부담하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0%를 더 내면(대략 국민 1인당 1만1000원) 14조 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하여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 없이 국민건강보험으로 전체 의료비 부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리되면 민간 의료보험에 전혀 가입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가 일어나 무조건 국민에게 유리하다.

둘째, 자유방임적 의료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병원들이 과잉 진료하지 않고, 수익이 아니라 환자를 중심에 두고 진료할 의료 환경을 갖추는 것, 병원들이 환자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전달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맡은 고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방임적이고 낭비적인 의료 공급 체제를 혁파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첫 번째 문제보다 훨씬 어렵다. 이해집단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첫째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간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기 힘든 목표라고? 물론 쉽지 않다. 그런다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의료 민영화를 포기하고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본다. 현 정부에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

5월 열리는 건정심, 지금부터 준비하자

하지만 정부에 의지할 게 아니라 국민이 직접 나선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첫째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방식의 보장성 강화 방안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급여 범위, 보험료 등의 결정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국민의 대표가 참여하고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라는 곳이다. 건정심은 가입자 대표 8, 공급자 대표 8, 공익 대표 8명과 위원장(보건복지부 차관) 등 총 25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국민을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이 가입자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그간 건정심의 논의 과정이나 내용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였다. 논의되는 의제와 결정들은 대체로 정부의 의도대로 관철되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 대표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정부의 의제를 뛰어넘는 수준의 대응은 만들어내지 못한 거다.

▲ 의학적 타당성이 있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적정 부담-적정 급여-적정 수가 체계를 확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건정심의 주요한 결정은 매년 5월경에 이루어진다. 내년 2015년의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는 올해 5월에 건정심에서 결정된다. 만일 5월 건정심에서 우리의 대표들이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릴 테니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확대하자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이리되면 건정심 논의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조건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총 25인 중 몇 명의 요구로 통과되기란 어렵다. 건정심은 가입자, 공급자, 공익 대표가 모여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결정되기에 그렇다. 하지만 최근 의사협회의 움직임을 보면 긍정적이다.

그간 의사협회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보장성 확대로 비급여가 급여 대상으로 결정되면, 수가가 대폭 삭감되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그간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정부는 보험 수가를 저수가로 묶는 대신 비급여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자율적으로 책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의료기관은 비급여를 매우 높게 책정하였는데 낮은 보험 수가를 보상받기 위함이었다. 그간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한 수가 삭감에 반발한 것이었다. 그들은 보험 수가의 저수가로 인해 과잉 진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해왔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나는 건정심에서 의사협회 등의 의료공급자 대표들과 국민이 충분히 서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의사협회 등 의료공급자들의 합리적 주장은 인정해야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의료공급자도 충분히 합의 가능한 방안이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의학적 타당성이 있는 비급여를 전부 급여로 전환하되, 그 비급여의 총액은 급여화하더라도 그대로 보전해주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보험 수가의 저수가 문제는 보건 의료 체계를 정상화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를 개선해야 과잉 진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보장성 문제와 의료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저수가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며, 둘 다 보건의료 체계를 정상화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여타의 의료 공급 체계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용이하다. 일차의료 강화, 의료 전달 체계 확립, 지불제도 개편,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 등이 연이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다면 더 이상 의료 민영화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8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많은 국가들이 작은 정부를 외치며 사회공공 분야의 민영화를 추진하였지만, 보건의료만큼은 민영화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탄탄한 국민건강보험 제도(혹은 국가보건서비스)와 같은 공적 의료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가 컸을 뿐 아니라, 자본의 입장에서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통계를 보면 공공의료가 탄탄한 국가들의 국민 의료비 중 공적 비중은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의료 민영화 반대를 넘어, 자본이 더 이상 넘볼 수 없도록 국민건강보험을 튼튼히 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다. 올해 5월 건정심 대응 준비를 지금부터 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