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사보험 드는 것보다 건보료 30% 더 내는 게 백배 낫다

2013. 5. 22. 13:2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사보험 드는 것보다 건보료 30% 더 내는 게 백배 낫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건강보험 보장성, 국민의 손에 달렸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팀장, 가정의학과 의사 

 

40대 초반의 남자, 췌장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진단서를 발급받으려고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수년 전 가입한 실손보험이 있어 그 혜택을 보기 위해서다. 총 진료비는 180만 원, 그중 본인부담금은 50만 원이었다. 실손보험은 본인부담금 50만 원 중 45만 원을 돌려준다. 나는 환자에게 물었다. 실손보험료는 얼마를 내냐고. 한 달에 10만 원이라고 답했다. 다시 국민건강보험료는 얼마를 내냐고 물었다. 4만 원을 낸다 했다. 안타까웠다. 국민건강보험료가 얼마인지를 알면, 월 소득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 150만 원이었다. '가계 살림도 빠듯할 텐데, 10만 원씩이나 사보험에 넣고 있다니….'

"그런 얘기를 왜 이제야 해주십니까?"

그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당신이 부담하고 있는 4만 원의 국민건강보험료 덕택으로 총 치료비 180만 원 중 130만 원이 해결되었다고. 그리고 나머지 45만 원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은 월 10만 원씩 따로 실손보험료를 내고 있는 거라고. 만일 당신이 지금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0% 정도인 1만2000원만 더 낸다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병원비 부담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고, 1만2000원을 더 지출하는 것 같지만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 월 10만 원은 고스란히 아낄 수 있다고.

더욱이 국민건강보험은 당신의 모든 가족을 지켜주지만, 실손보험은 오직 당신만을 지켜줄 수 있다고, 그것도 젊을 때만 잠시 가능하다고, 노후에는 질병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보험료가 올라가기 때문에 비싼 보험료를 절대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결국 병원비 부담이 훨씬 큰 노후에는 별 소용이 없는 제도가 바로 실손보험 제도라고. 그 순간 환자의 얼굴이 붉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나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선생님, 그런 얘기를 왜 이제 해주시는 겁니까?"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환자와 실제로 나눈 대화다. 그는 실손보험을 해약하겠다고 다짐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아직은 국민건강보험이 온전히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가장인 자신이 쓰러지고 나면 가정은 풍비박산 날 수 있기에, 당장 해약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 처해 있는 안타까운 대한민국 현실이다.

 


ⓒ연합뉴스 

병원비 해결 민심을 저버린 박근혜 정부

지난 대선에서 수많은 서민들이 의료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꿈을 가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너졌다. 야권 후보가 내건 100만 원 상한제, 입원 보장 90% 등 보편주의적인 보장성 확대 방안을 반대했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보편주의적인 보장성 확대는 서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100만 원 상한제를 반대하였다. 대신에 4대 중증질환에 한해 100% 국가 보장을 하겠다는 선별주의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4대 중증질환은 전체 고액 진료 환자의 15%에 해당할 뿐이다. 나머지 85% 질환의 환자는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대선이 끝난 이후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 약속도 공문구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선택진료, 상급병실, 간병 등 핵심 비급여 진료비는 국가 책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해 대통령직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이 약속했던 4대 중증질환 공약을 폐기해 버렸다. 이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공약 사기죄로 박근혜 정부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발한 바 있다.

 

국민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게 서민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유

흔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자고 주장하면 나오는 비판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논리다. 박근혜 정부가 보편주의적 보장성 확대 방안에 반대하는 이유이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까닭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보험료를 올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 올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앞의 나의 환자의 예처럼 그는 뒤늦게나마 보험료를 인상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으로 병원비를 모두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자. 우리 국민은 크게 3가지 형태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첫째,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들어가는 건강보험료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본인부담액(법정 본인부담+비급여 본인부담)이다. 셋째, 낮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민간의료보험료 지출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로 21.7조 원(건강보험 총 재정은 41.7조 원)을, 환자가 직접 부담한 본인부담액으로 26조 원(간병료 포함)을, 민간의료보험료로 40조 원가량을 지출하였다.

 


1) 2012년 보장성을 63%로 가정하여 본인부담액을 산출하였고 여기에 간병서비스료를 포함함.
2) 강성욱 교수가 한국의료패널을 이용해 추정한 2008년 33조를 이용하여 2012년 규모를 추정.

세 가지 지출의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첫 번째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다. 만일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줄어 보장성이 하락하면,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할 본인부담이 늘어나며, 의료 불안은 커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은 세 번째 지출인 민간의료보험을 추가로 늘려 해결하려는 유인책이 생긴다. 따라서 국민이 부담하는 전체 의료비 부담은 증가한다. 반대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 보장성이 늘어나게 되면 그만큼 환자가 지출해야 할 본인부담액이 줄어들게 된다. 국민건강보험만으로 의료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따라서 국민이 부담하는 전체 의료비 부담은 감소할 것이다.

 


 

건보 하나로 실현되면 국민 부담 6.5조 감소, 실손보험료 지출 18조 줄어

만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해 국민이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늘린다면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 여기에서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제시하는 방안이 실현된다고 가정하자.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국민건강보험료, 사업주 부담금, 국고지원금을 각각 지금보다 30% 인상하여 총 14조 원의 재원을 확보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이 중 13조 원은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고 연간 100만 원 상한제, 입원보장 90%, 간병료 급여 등 보장성 확대에 사용되고 나머지 1조 원은 저소득층과 영세 사업장의 보험료 지원에 사용된다.

사회연대적 보험료 인상 시 국민은 건강보험료로 6.5조 원을, 사업주는 4.4조 원을, 국고는 3.3조 원을 추가로 부담한다. 이 경우 건강보험료, 본인부담지출, 민간의료보험료 지출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국민과 사업주의 추가 보험료 인상액은 6.5조 원, 4.4조원이나 각각 0.5조 원 및 0.6조 원은 저소득층과 영세 사업장 보험료 지원에 쓰이므로 국민 부담액은 6.0조 원이 추가된 27.7조 원, 사업주는 3.8조 원이 추가된 18.5조 원이 됨.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41.7조 원에서 54.7조 원으로 증가하는 반면, 본인부담은 26조 원에서 13조 원으로 감소한다. 여기서 국민이 국민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위해 추가로 내야 할 건강보험료 인상액은 13조 원이 아니라 6.5조 원만이다. 나머지는 국고와 사업주가 분담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으로 6.5조 원의 부담이 증가하지만, 그동안 국민이 전액 부담해 왔던 본인부담금은 26조 원에서 13조 원으로 줄어들어 13조 원이 감소한다. 더불어 보장성 확대로 인해 연간 100만 원 상한제가 작동해 가계 파탄의 위험과 의료비 부담은 사라진다.

이와 함께 민간의료보험료 지출 중 현행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사실상 사라질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대폭 확대되면 민간의료보험에 의지할 필요가 없게 되어, 민간의료보험 지출이 대폭 줄어든다. 이론적으로 민간의료보험 지출(총 40조 원 이상으로 추정) 중 암보험, CI보험과 같은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의 수요도 감소할 것이나,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할 경우, 실제 민간의료보험 지출의 감소분은 실손보험에서 발생한다.

현재 가입자가 부담하고 있는 실손보험료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8.31 실손의료보험 종합 개선 대책' 자료를 참고하면 대략 추계가 가능하다. 당시 실손보험 가입자는 3000만 명 정도이며, 이들은 월 평균 5-7만 원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실손 목적의 보험료는 1-2만 원이나 각종 의료특약을 끼워 팔고 있어 통합 보험 형태로 가입하고 있기에 그렇다. 이 경우 총 규모는 18조~25조 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구현될 경우, 국민들은 적어도 18조 원에 이르는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과 보험료, 가입자인 국민이 직접 결정하자

내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건강보험료율을 결정하는 건강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이제 곧 열린다. 건정심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그에 필요한 재원을 결정하는 사회적 결정기구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 8인, 의약계 대표 8인, 공익 대표 8인, 정부 1인(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매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과 항목, 그리고 국민건강보험료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이제 6월말까지 내년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범위와 보험료를 결정하기 위해 공방을 벌일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는 올해 건정심에서 특단의 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건정심에 참여하는 위원들이 지금까지 획기적으로 보장성을 올리는 결정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공약조차 폐기한 박근혜 정부여서 정부에도 기대할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아니 건정심의 주인인 국민, 가입자가 나서면 된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자신의 국민건강보험료와 보장성 범위가 어디서 결정되는지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나서자. 우리가 나서서 국민건강보험료를 인상할 테니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풀뿌리 복지국가운동 시민단체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와 야권이 요구해온 100만 원 상한제 등의 보장성 확대 방안을 지지하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 기업, 국가가 모두 국민건강보험 재정 책임을 늘리자는 주장을 꾸준히 해왔다. 지금보다 각각 30%씩 부담을 더하자. 가입자의 경우 1인당 평균 약 1만 원을 더 내면 된다. 기억하자. 이 방안은 의료비 파탄을 해결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의 전체적인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가입자를 대표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과 보험료를 논의하는 건정심에 요구한다. 건정심을 투명하게 운영하게 국민에게 논의 내용을 소상히 알려라.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여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를 위해 사회연대적 정신에 의거하여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