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9. 16:52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윤석열 정부 100일이 어수선하다. 대선에서 호언했던 연금개혁도 그렇다.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던 공약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애초 정부가 연금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까지 든다. 대신 국회가 나서는 모양새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하여 내년 4월까지 여야합의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이러니 행정부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공약대로였다면, 대통령직속위원회가 재정계산을 토대로 개혁안을 준비하면 무난했는데, 입법기관이 먼저 합의안을 만드는 ‘거꾸로 일정’이다.
어차피 개혁안은 입법부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있다. 연금개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바로 연금개혁 논점별 팩트 정리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금개혁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려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입장과 재정안정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공적연금에 대한 가치·노선 등에서 비롯된 차이는 당연하고 존중할 일이다. 국민연금 보장성과 보험료의 적정 수준을 두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입장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공유해야 할 사실조차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이다. 논의의 출발점인 팩트에 대한 이해가 상이하니 토론도 생산적이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완전히 상반된 복수안을 제출하고, 경사노위 연금특위 역시 3개안을 제출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한 핵심 이유이다.
이번 연금개혁 논의도 주요 팩트가 정리되지 않으면 계속 헛돌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수준의 국제비교를 두고 이견이 존재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국제 평균과 비교하여 낮은가 비슷한가? 이는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를 따질 때 등장하는 논점이다. 소득대체율 인상 쪽은 낮다고, 재정안정화 쪽은 비슷하다고 말하니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끝장토론을 벌여서라도 실체를 정리해야 한다.
둘째, 국민연금 효과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국민연금에서 실제 어느 계층이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가? 한쪽은 국민연금이 하후상박 재분배 기능을 가진다고, 다른 쪽은 노후격차를 심화시킨다고 말한다. 왜 다른 진단이 나오게 되는지, 팩트는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가입자들은 낸 것에 비해 더 많이 받는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인가? 이는 재정안정화 개혁의 강도에 영향을 주는 수치로서 보통 기여 대비 급여의 비율인 수익비로 평가된다. 그런데 현재 권위 있는 공식 수치가 사실상 없다. 정부가 기초자료를 분석하여 최근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
셋째, 국민연금 장기재정에서는 내용이 전문적인 까닭에 가입자들을 현혹시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 재정계산에서 기금소진 연도가 앞당겨지고 보험료 인상 필요가 높아지자 아예 장기추계를 믿을 수 없다는 ‘불가지론’까지 등장했다. 어떻게 70년 계산을 토대로 개혁안을 짤 수 있느냐는, 일반 시민이 듣기에 그럴듯한 설명이다. 물론 장기 추계는 늘 불명확성이 뒤따르지만, 연금재정 계산은 경제 수치를 알아맞히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 수입과 지출 면적의 관계를 따지는 분석임을 간과한 주장이다. 재정계산은 연금개혁의 첫 단추이므로 추계방법론의 의미를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넷째, 국민연금기금이 외국과 달리 대규모로 존재하니 여기서도 근거가 미약한 주장들이 나온다. 올해 5월까지 국민연금에서 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총 705조원이고 이 적립금이 만든 수익이 486조원에 달한다. 이에 기금수익을 감안하면 급여에 비해 낮은 보험료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시된다. 하지만 납부한 보험료가 적립금이 되어 수익을 만들 듯이 나중에 받을 연금액도 현재가치 반영을 위해 가입기간 동안 소득상승만큼 높여 계산된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다소 복잡한 내용이라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 논점이니, 정부가 구체적으로 기금의 기여분을 정리하여 혼선을 해소해야 한다.
왜 지금까지 기본적인 팩트조차 점검되지 못했을까? 사실을 확인하는 1차 작업조차 방치될 만큼 우리 사회 논의가 진영화, 정치화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기본 데이터를 가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논점별로 분석자료를 제시하고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검증자리를 마련하라. 모든 과정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질문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가입자들의 연금 이해도 높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 사회적 합의안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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