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해결보다는 복지행정체계의 변화를 원한다

2022. 3. 14. 13:0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를 위한 복지행정 만들기  


최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국가

 

2022년 우리는 이제 복지국가, 복지정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경제, 일자리, 부동산 등의 문제 뿐 아니라, 돌봄, 보행안전 등 일상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서의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긴 노동시간, 수직적 조직문화를 감내하는 일에 이전과 같이 수용적이지 않다. 자녀를 키우는 일이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라고 보지 않으며, 부모를 부양하며 돌보는 일 역시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복지행정 혹은 사회보장행정이라는 말은 여전히 생소하다. 우리가 복지정책을 경험하는 형태는 '급여'이다. 복지급여는 현금급여와 현물급여로 구분되는데, 현금급여(cash benefit)는 말 그대로 현금, 즉 돈이다. 정부가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이고, 이를 다시 국민에게 돈으로 재분배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슈가 된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이 그 예이다. 돈은 계좌에서 계좌로 이동하기 때문에 뱅킹시스템만 있어도 복지급여를 시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

 

반면, 현물급여(in-kinds benefits)는 고용, 교육, 돌봄 서비스와 같이 돈이 아닌 현물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금급여로 우리의 욕구가 모두 채워진다면, 현금급여가 가장 효율적인 재분배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돈은 사람들의 욕구를 채우는 매개이지 그 자체로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원도, 미용실도, 식당도 거의 없는 농촌의 어느 마을을 상상해보자. 아이를 맡길 육아도우미나 돌봄교실이 없는 상황에서 현금급여는 워킹맘에게 큰 의미가 없다. 국가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생활) 인프라'를 공급한다. 따라서 현물급여를 공급하는 과정은 현금급여를 제공하는 것보다 전달과정이 복잡하고 신경 쓸 일이 훨씬 많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사중손실, 즉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도 피할 수 없다. 사중손실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을 의미한다.

 

일부 우파 경제학자들은 전달체계 자체에서 많은 복지자원이 지출되고 사중손실이 확대되자 이를 대체하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사회서비스, 현물급여를 대체하는 기본소득은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일지 모르나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데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사회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투자를 통해서는 내가 낸 세금 1만원을 빈곤아동에 대한 학습지원, 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서비스 등에 투자함으로써 그 이상의 가치로 우리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과정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 3월 10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사거리에서 운암1동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대통령선거 벽보를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길고 복잡한 복지행정체계 

 

정부는 양질의 현물급여, 즉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의지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행정학의 고전, 프레스만과 윌다브스키의 집행론은 정책적 의지를 가지는 것과 그러한 능력을 가지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는 '어떻게 워싱턴의 위대한 계획이 오클랜드에서 처참히 부서졌는가'이다. 저자들은 완벽한 계획과 선한 정책 의도가 실행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긴 전달체계를 지적한다. 긴 전달체계는 '방과 방사이' 게임과 같은 것이다. 게임에서 첫 번째 사람은 정답을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최선을 다해 다음 사람에게 정답을 전달한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러 사람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형태의 왜곡이 발생하며, 마지막 사람은 전혀 엉뚱한 답을 말하곤 한다. 프레스만과 윌다브스키는 이러한 왜곡이 미국의 행정체계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생생히 전달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교과서적 논의지만, 우리나라의 현물급여가 전달되는 과정을 이보다 잘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행정체계는 아주 길다. 우리나라의 복지사업은 대부분이 국비사업인데, 국비사업은 기본적으로 중앙부처에서 기획 및 관리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중앙부처는 대통령의 공약이나 부처의 정책적 의지를 담아 국비사업을 만드는데, 우리나라의 복지사업에서 국비사업의 비중은 매우 높다. 즉, 우리나라의 복지행정에서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방과 방사이' 게임의 첫 번째 사람은 주로 대통령이나 중앙부처의 공무원이며, 기초지자체나 민간기관은 이들의 정책의지를 실현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복지행정체계는 각 사업마다 개별적인 행정라인을 가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우리의 일상을 책임지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댄다. 긴 수직적 사업운영체계가 매년 새로운 복지욕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지다보면 행정체계가 복잡해지고 계속해서 무거워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업마다 서류가 다르고, 급여 신청, 관리, 평가 등 관리체계가 개별적으로 작동한다. 사업들이 많아질수록 현장에서는 깔대기 현상이 발생하여 길고 복잡한 전달체계의 중간이나 가장 하단에 위치하는 종사자들의 업무과중이 심화된다. 의욕적인 정책의도가 의욕적이기 어려운 전달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길고 수직적인 전달체계로 인한 업무과중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꾸준히 전달체계에서 일손을 도울 사람들을 늘려왔다. 정부는 사업수행을 위해 다양한 센터들을 만들어왔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이 국고보조사업의 운영관리를 대행하는 센터들이다. 

 

이들 조직은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인력과 예산규모가 제한적이며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이들 기관에 대한 예산지원은 1년 단위로 사업에 따라서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전문역량을 갖춘 인력이 생애직업으로 종사하기 힘든 일자리이다. 예산여건이 여의치 않아 연차별 인건비 상승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처우가 사업 초기 상황에 고정되어 경력인정이 되지 않기에 장기근무가 쉽지 않다. 청와대 청원에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장 종사자들이나 중간조직의 열악한 처우를 고발하는 경우가 종종 올라오는데 이들은 대부분 이러한 조직에서 속해있다. 우리의 일상을 책임지는 국가는 실제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길고 수직적인 전달체계, 불안정한 지위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서 시민을 대면하는 일선의 근무자들은 주어진 정책의 틀에서 급여를 전달(delivery)하는 역할만을 한다. 우리의 일상을 책임지는 현물급여가 전달되는 방식은 대개 이러하다. 

 

나의 일상을 책임지는 대통령?! 

 

이러한 복지행정체계의 문제는 외국에서는 흔히 발견하기 어렵다. 대개의 경우 중앙정부에서 책임지는 사업과 지방정부에서 책임지는 사업이 보다 뚜렷이 구분된다. 서구에서는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를 경험하면서 민주적 정책과정 내에서 복지행정체계를 안착시켰다. 반면 우리나라의 복지행정체계는 복지가 중요하지 않던 시기의 행정체계 위에서 최근에야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복지서비스가 많지 않을 때는 지금의 수직적이고 긴 전달체계가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역이 되어 대중에게 부각되고 싶어하는 시기에는 그렇지 않다. 굵직한 성과들로 생색내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욕망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달체계 문제를 복잡화하는데 기여해왔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원론적인 답은 긴 전달체계를 짧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나의 일상을 책임지는 대통령'은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의 일상을 책임지려면, 대통령의 지휘명령이 많은 단계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방식, 국가가 약속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비사업을 만들고 지역으로 하여금 비용을 보조하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일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내 집 앞에 보행안전을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가급적 복지사업을 기획한 주체가 운영관리까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지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컨대, 디지털 정부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소득자산 조사는 지방정부가 직접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완벽한 뱅킹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현금급여의 관리는 지역의 전달체계가 없어도 충분히 집행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통령이 내 아이의 보행안전을 위해 내 집 앞 가로등의 조도를 조절할 수 없으며, 앉은뱅이 조명을 설치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일은 지방정부의 일이다. 

 

우리는 대통령만 선출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도 선출하고, 지방정부의 의원과 지방정부의 장도 선출한다. 지역의 일은 직접 지방정부에 요구하고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일은 대개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정부에 요구해야 하며, 우리는 선거를 통해 이들의 실천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기존 행정시스템에서는 요원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도, 복지에 대한 경험도 중앙정부 중심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시작이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행정부의 수장이 선출됐다. 대통령이 주인공이 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실제 우리의 일상에 닿을 수 있는 복지행정체계의 변화를 이끌어주길 기대해본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해결보다는 복지행정체계의 변화를 원한다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국가 2022년 우리는 이제 복지국가, 복지정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경제, 일자리, 부동산 등의 문제 뿐 아니라, 돌봄, 보행안전 등 일상을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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