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퇴직해 소득 없는 김 씨 건보료, 왜 2.4배로 늘었나

2013. 4. 3. 14:0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더 미룰 수 없다

 
조창호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정책실장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부러워할 만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 건강보험 제도의 우수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고 현재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도입을 시도하는 나라들 역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벤치마킹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지만 낮은 보장성과 보험료 부과 체계 문제만큼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동안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다양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보험료 부과 체계 문제는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부과 체계야말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말한다. 가입자 역시 보험료 부과 체계에 대해 불만을 넘어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2011년도 건강보험공단의 민원 발생 건수는 총 7760만 건이었는데, 이 중 82%인 6400여만 건이 건강보험료와 관련된 민원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하나지만, 보험료 부과 체계는 4가지

2003년 건강보험 재정이 통합되었으나 보험료 부과 체계는 여전히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로 나누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통합 이전 방식이다. 가입자 간 부과 기준이 상이함에 따라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직장 가입자 간에도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되고 있고, 지역 가입자 역시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재정은 통합되어 하나의 주머니가 되었지만 보험료를 거두어들이는 기준은 4가지 방식으로 나뉘어 있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직장에서 받은 월급(보수)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월급 외 7200만 원을 초과한 종합소득이 있을 경우 종합소득에도 추가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 가입자 역시 연간 종합소득 500만 원을 기준으로 이보다 많은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 소득·재산·자동차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지만, 연간 종합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세대는 재산(전월세 포함), 자동차와 평가소득(성·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게 된다.

그리고 어린 학생 등 소득이 없는 사람 중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 가입자의 세대원이 되어 성·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사람도 있다. 보험 재정은 하나로 통합 관리되는 데 반해, 가입자 간 부담 기준은 복잡하게 나누어 보험료를 부과함에 따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경만호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은 2009년 "건강보험 재정 통합으로 직장 가입자의 평등권과 재산권이 침해됐다"며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가 2012년 5월 기각당한 바 있다. 헌재는 "건강보험 재정 통합은 사회 연대와 소득 재분배 기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의협의 주장을 일축했다. 시민단체들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해 건강보험 재정과 부과 체계를 완전히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직장에서 퇴직하면 오히려 오르는 건강보험 보험료

보험료 민원 중 가장 불만이 많은 경우는 퇴직을 하여 수입이 끊겼는데도 오히려 보험료가 오른 경우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에 보험료율(2013년 2.945%)을 곱하여 보험료를 납부하면 되지만 지역 가입자가 되면 소득은 물론 가족 수, 성, 연령에 재산과 자동차를 합산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다 보니 보험료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울에 사는 김 모 씨(남·61)의 경우 퇴직으로 소득이 없는데, 배우자와 미취업 자녀 3명, 주택 한 채(과표 : 2억1420만 원)를 보유하였다는 이유로 재직 시절 7만2610원(사용자 부담 포함 14만5220원) 납부하던 보험료가 퇴직 후에는 2.4배로 증가한 월 17만1110원이 되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공단에 하소연해보았지만 현행 보험료 부과 체계 내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 지역 가입자와 직장 가입자의 부과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간에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다. 직장 가입자 내에서도 기준이 둘로 나뉘어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같은 직장 가입자라도 월급 외 종합소득 7200만 원을 초과 보유한 직장 가입자에 대해서는 월급 외 종합소득에 대해서도 추가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박 모 씨는 직장 가입자이지만 임대소득 등으로 2011년 귀속분 종합소득이 7321만 원이 잡혀 있어 지난해 9월부터 매월 17만9660원의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납부하게 되었다. 반면, 이웃에 사는 이 모 씨는 같은 직장 가입자지만 종합소득이 6911만 원으로 부과기준선 이하로 분류되어 추가 보험료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이렇듯 소득이 비슷함에도 기준에 따라 보험료 부담 금액은 큰 차이가 나고 있다.



지역 가입자 보험료 부과에 재산과 자동차가 61% 차지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부과 체계는 더욱 복잡하다. 연간 종합소득 500만 원을 기준으로 500만 원 초과 세대에 대해서는 소득·재산·자동차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500만 원 이하 세대에 대해서는 재산(전월세 포함), 자동차와 평가소득(성·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 부과 기준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가족 수가 늘어나거나 나이만 바뀌어도 보험료가 변동하게 된다. 매년 재산 과표나 자동차 연식이 바뀌기 때문에 보험료도 변동하게 되어 보험료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에 사는 56세 이 모 씨의 경우 배우자(50)와 자녀 2명, 아파트 1채(과표 3억 원)와 자동차 1800cc(3년, 세액 28만 원) 1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실직 상태로 소득이 없음에도 보험료는 월 19만7390원을 납부하고 있다. 10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해마다 재산 과표가 인상되어 보험료가 덩달아 올랐고 내년이면 둘째 자녀가 20세가 되어 보험료가 또 오르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지역 가입자의 건강보험료 중 재산이나 자동차에 부과되고 있는 보험료 비중이 61%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지역 건강보험료가 또 다른 형태의 재산세라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재산 비중 보험료가 이렇게 과다하게 되면서 퇴직이나 실직으로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었을 시 보험료가 크게 오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특히 8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현행 부과 체계는 엄청난 민원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 제도 또한 보험료 불공평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피부양자 제도는 직장 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으로서 보수나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보험료 부담을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따라서 피부양자로 등재되면 보험료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직장 피부양자로 등재된 가입자가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40.6%인 2014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피부양자 중에는 소득이 있는 사람도 213만 명에 달한다. 부담 능력이 있는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역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모든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단일화해 가야

그렇다면 이렇게 불공평한 보험료 부과 체계를 바꿀 방안은 없을까?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은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 체계 단일화 방안"을 발표하고 이를 정부에 건의해 놓고 있다. 또한 지난 수년간 많은 전문가가 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공단의 건의안과 전문가들의 안을 종합해보면 방향은 하나로 모인다. 즉,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있어도 자료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 과도기적으로 재산을 부과 요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현재 직장과 지역을 기준으로 4가지 방식으로 나뉘어 있는 부과 체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하고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 역시 모든 소득으로 확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소득이 있는 곳에 보험료가 부과된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와 같은 건강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기준이다. 직장 가입자에게만 인정하고 있는 피부양자 제도 역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 2월 21일 인수위가 발표한 신정부의 국정 과제에도 소득 중심 부과 체계 개편안이 포함되어 있다.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부과 기준을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를 관장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이런 개편 방향에 신중한 입장이다. 복지부는 현행 보험료 부과 체계의 틀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보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과 체계 개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부과 체계 개선 논의가 있었지만 정치적 부담을 우려하여 부분적으로 손질하는 데 그쳤다. 부과 체계 개선으로 보험료가 내려가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겠지만 보험료가 올라가는 가입자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보장성 확대 위한 전제 조건

부과 체계 개선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바탕이 되는 부과 체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더 이상 제도의 존속을 장담할 수 없다.

인구 고령화와 질병 구조 변화에 따른 의료 비용의 급팽창에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선진국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및 만성질환 의료비 증가 등으로 보험급여비는 연간 약 13%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10%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의료비의 33.3%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향후 고령화의 속도에 따라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만성질환 진료비도 의료비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2002년 만성질환 진료비는 4.8조 원이었으나 2010년에는 15.2조 원으로 증가했다. 8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증가 둔화 및 저성장 경제 구조의 확립에 따라 재정을 부담할 계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데 반해 진료비를 써야 할 계층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는 힘들다.

부과 체계 개선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80%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62.7%에 머무르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이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고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중 보험료는 전체 보험 재정의 87.46%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 재정의 기제가 되는 부과 체계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행 부과 체계의 틀 내에서는 획기적인 보장성 확대가 요원하다는 것을 현재의 보장 수준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선한다고 해도 늦은 것이 사실이다. 벌써 개선되었어야 했다. 부과 체계 개선은 사회 연대성은 물론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획기적인 급여 수준 확대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