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2020. 6. 11. 22:4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 교훈 헛되지 않으려면 '전 국민 고용보험' 제대로 설계해야"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재난은 한 사회의 가장 약한 부위를 드러낸다. 코로나19도 그렇다. 아직 재난이 다 지나간 것도 아니건만 이미 우리 사회의 약점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불안정 노동에 대한 보호가 그중 하나다. 감염병으로 인한 고용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한 것은 임시·일용직 노동자, 하청·파견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 안전망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어 위기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서로 접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이다. 사실 어느 쪽이든 이미 위기에 처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위기에 대한 대응은 신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 제도들이 현실화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위기가 닥쳐왔을 때 미봉책으로만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을 놓고 이루어지는 논의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의 공통점과 차이점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의 공통점은 불안정 노동의 증가와 기존 복지제도의 부정합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명시적으로 현재의 고용보험 밖에 있는 이들을 포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소득 역시 노동시장 불안정성의 증가에 따른 사회안전망 밖 인구의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관심을 모았다. 물론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 자체야 그 역사적 연원이 길지만, 흔히 '프레카리아트'로 불리는 불안정 노동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난 몇 년 사이 기본소득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이처럼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제도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복지국가의 기존 제도를 고쳐서 포괄범위를 넓히고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맞게 개선하려는 접근이라면,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국가 프로그램들과는 상당히 다른 원리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접근이다. 

'노동'을 보는 시각 역시 두 접근의 큰 차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유급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하고 있거나 일할 의사가 있지만 일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소득보장"을 꾀하고 있는 반면, 기본소득은 탈노동 패러다임 위에서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끊거나 최소한 완화하자는 입장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사용자와 피용자 관계를 전제로 하는 고용 관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기본소득은 유급노동과 소득이라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노동의 상품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그 범위가 확대되더라도 여전히 '보험'의 원리에 기초한다. 따라서 특정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해 공동으로 재원에 기여하고, 그 재원을 바탕으로 위험이 실제로 발생한 이들을 지원한다. 급여를 지급하는 기간 역시 한정되어 있는데, 보장 대상 위험이 사라지거나 대개 기여 기간에 비례하여 결정되는 급여수급 기간이 종료되면 급여가 정지된다. 종전의 고용보험과 새롭게 논의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보장대상 위험이 '실업'이냐 '소득의 급격한 감소나 단절'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종의 보험제도로서 이와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의 생존에 대한 권리 및 공유자원에 대한 권리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정치공동체의 시민이라면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지급된다. 특정한 위험의 발생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정한 기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충분성, 정기성, 현금 지급이라는 5가지 원칙들은 기본소득의 이와 같은 특성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 함께 추진하자? 

기본소득은 다른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지급하기에 원칙적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불안정 노동과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부정합 문제의 핵심이 사각지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장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크다. 전 국민에게 1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연간 62조 원이, 30만 원을 지급하면 186조 원이, 50만 원을 지급하는 311조 원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1년 예산이 513조 원(2020년) 수준임을 고려하면 대단히 큰 금액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지급가능한 최대 50만 원의 금액 1인 가구 생계급여 기준(52만7000원)보다 적다. 종전의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실업자 1인당 평균 144만 원 지급됐음을 고려하면, 이 금액은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생활 보장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본의 고용보험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이들(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고용보험으로 포괄하면서, 동시에 전형적인 임금 근로 관계가 아닌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의 상황에 맞게 제도를 보완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기여는 임금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급여 역시 실업이 아닌 소득의 급격한 감소 시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 국민 고용보험은 사회보험이며, 최소한의 노동 이력과 보장대상 위험의 발생, 그리고 정해진 수급 기간을 급여의 조건으로 한다. 그 결과 기본소득보다 훨씬 적은 재정으로 수급자들의 생활 보장이 가능한 급여를 지급할 수 있지만,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 이력이 전혀 없는 신규실업자나 정해진 수급 기간을 경과한 장기실업자가 그 예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이 꼭 대립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충분한 보편성 확보 시에도 급여를 수급할 수 없는 이들을 발생시키는 반면,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원을 소모하고도 불안정 노동자의 생활 보장수준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이 두 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대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두 제도를 함께 운영함으로써 서로를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본소득론 중에서도 이른바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이렇게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 프로그램을 보완 관계로 설정한다.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둘 다 좋은 제도니 둘 다 도입하자'라고 결론짓고 넘어가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본소득보다 훨씬 재정소요가 적은 접근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재원을 소모한다. 2020년 구직급여 예산은 약 9.5조 원이다. 코로나 재난으로 늘어난 실업자를 고려하면 실제 지출은 더 늘어날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구직급여의 잠재적 수급권자를 두 배 이상으로 증가시킨다. 게다가 이들의 상당수가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기에 새로운 가입자는 기존 가입자보다 급여수급 가능성이 클 것이다. 또한 급여수급의 조건을 '소득의 급격한 감소'로 변화시키게 됨으로 인해 나타나는 효과 역시 재정소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10조 원,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보다 훨씬 큰 재정을 필요로 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민 1인단 30만 원씩만 지급한다고 해도 연간 186조 원의 재원이 소요된다. 물론 이 경우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등 일부 항목의 예산을 절감하게 되겠지만, 이를 고려해도 막대한 예산이다. 따라서 이 두 제도를 함께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는 막대한 재정소요를 요구한다. 특히 기본소득의 도입은 정부재정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제하지 않으면 어렵다. 바로 이 재원의 문제가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확충이라는 접근과 기본소득이라는 접근을, 최소한 한시적으로는 경합 관계에 놓이게 한다. 예산의 과감한 확대를 전제로 하더라도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먼저 배분할 것인가?'라는 정책 우선순위에 관한 질문에 직면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의 입장에서는 토지세, 생태세, 로봇세, 구글세, 시민세 등 새로운 항목의 조세를 통해 재원마련이 가능하고 이는 기존 복지제도의 확충과 경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슨 항목의 세목을 어떻게 신설하든 결국 이는 국가가 사회로부터 수취하는 조세의 일부분이며,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든 그에 대한 재정소요는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즉, 증세를 통해 사회적 지출의 확대를 전제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두 배로 증세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모든 프로그램을 동시에 도입할 수는 없으며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이때 우선순위는 무엇이 지금 여기의 문제해결을 위해 더 나은 접근인가에 기초해 결정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에게 따라붙는 재정소요에 대한 질문이 재정의 확대 여부가 아닌 지출의 우선순위라고 보면, 기본소득이 재정소요라는 입증해야 하는 것은 토지세, 생태세, 로봇세 등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면 된다거나, 기존의 지출을 어떻게 재편성하면 된다는 숫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를 통해서는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왜 다른 프로그램에 사용하지 않고 기본소득에 사용해야 하는가?'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집단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필요(needs)에 대응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며, 돌봄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할 때,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은 전 국민에게 미미한 금액의 현금을 쥐어줄 뿐인 기본소득이 먼저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 기본소득이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어렵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의 불안정 노동에 대한 해법으로는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은 앞서 언급한 재정소요 문제에서 기본소득보다 낫다. 또한 기존의 복지프로그램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개선하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사회적 수용가능성도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분배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기존 제도의 개선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효과가 나타난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만큼이나 실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충분한 검토와 합의 없이 재정소요가 큰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자칫 저소득층에 대한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이들의 적어도 일부는 명시적으로 기존 복지프로그램의 삭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설사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도입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치적 결정이 나타날 위험이 없지 않다.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포괄적 실업부조와 결합함으로써 기본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편성 문제를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 고용이력이 없거나 실업급여를 소진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생활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제도로 포괄적 실업부조를 도입하고 이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연계함으로써 고용보험 수급권이 없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업부조는 어느 국가에서나 자산조사를 거친다는 점에서 '권리로서의 급여'라는 측면에서 손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효과에서 낮은 수준의 급여 이상을 약속하기 어려운 기본소득보다 실질적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소득 기반으로 제대로 설계하자 

사실 기본소득의 여러 버전만큼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도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다. 20대 국회의 막판에 고용보험 적용 범위 확대가 예술인에 대한 특례로 귀결됐던 것처럼, 전속성 높은 일부 특수고용 노동자를 찔끔찔끔 가입시키며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고 이야기하는 접근은 불안정 노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한다는 것을 전제로 기여와 급여를 재설계해야 하며, 고용 관계가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소득보장제도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를 어떻게 포괄할지, 기업의 기여를 어떤 식으로 수취할지, 급여지급의 구체적인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2021년부터 실행 예정인 한국형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의 좁은 적용 범위, 낮은 급여 수준, 짧은 수급기간 문제를 개선하여, 이 제도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포괄적 실업부조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숙제다. 

이와 같은 기여와 급여체계의 설계, 보완적 제도의 설계, 대상범위 확대의 속도 문제들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따라 전 국민 고용보험은 정치인들의 말 잔치가 될 수도 있고 불안정 노동에 대한 실질적 보장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얻은 교훈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정리하면, 기본소득은 지금 여기의 불안정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보호로서 전 국민 고용보험보다 앞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고용보험은 여전히 임금노동 관계는 아니라도 '일'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론자들이 가정하는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의 소멸이 현실화된다면, 그때는 기본소득이 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을 통한 노동과 소득의 분리라는 상상력은 소중하지만, 일자리의 소멸이라는 가정이 실제로 도래할 것인지, 언제 도래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져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노동시장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위협은 '일의 소멸'보다는 '고용 관계의 변화'이기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111526335163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