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어린이 무상의료, 지금 시작하자

2019. 2. 13. 12: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어느 정부든 임기를 마친 후 가장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정책이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긍정적인 정책으로 무엇이 꼽힐까? 아마 ‘문재인케어’가 유력한 후보이지 않을까 싶다. 집권 이전부터 꼼꼼히 준비되었고 구체적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중에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함이 남는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목표가 기존 63.4%에서 조금 상향된 70%에 머물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비급여의 우선 정비, 국민건강보험의 중장기 재정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신중한 행보이다. 


뜻이 이루어지는 걸까? 근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로드맵에 의하면 올해부터 1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가 사실상 제로화된다.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이전 아동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이를 위한 재정방안을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제안할 예정이다. 비록 아동에 한정되지만 이러한 기조라면 머지않은 시기에 모든 연령으로 전면화될 수 있기에, 아동 의료비 제로화는 대한민국 복지를 한 단계 높인 정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더 과감해야 한다. 전체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어렵다면 특정 인구집단에 집중하는 전략도 괜찮다. 어린이부터 병원비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어린이 무상의료’는 어떤가? 이미 시민사회에선 수십개 어린이단체, 복지단체들이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상표와 내용물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의료비 제로화라고 부르지만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에 한해 본인부담을 최하 5%까지 낮출 뿐이다. 과중한 의료비의 핵심 원인인 비급여는 예비급여로 전환돼 공적 관리체계로 들어오지만 여전히 50~90%의 높은 본인부담을 별도로 환자에게 청구한다. 2016년에 5세 이하 어린이의 입원비 전체 내역을 보면, 법정급여 본인부담금은 8%에 불과하지만 비급여 비용은 3배인 24%에 달했다. 이러한 의료비 구조에서 비급여가 빠진 제로화는 이름값을 하기 어렵다. 정부가 보완책으로 비급여까지 포함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내놓았지만 대상이 하위 50% 계층에 한정되고 지원금도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절반에 그쳐 역시 한계를 지닌다. 


반면 눈을 지자체로 돌리면 대담한 시도가 발견된다. 경기도 성남시는 ‘18세 미만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추진 중이다. 올해 7월부터 의학적 성격의 비급여 진료까지 포함해 1년에 환자 부담이 1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을 성남시가 책임진다. 아무리 아파도 100만원까지만 가족이 지불하니 고액 질환의 경우 사실상 어린이 무상의료라고 불릴 만하다. 


생각보다 소요예산이 많지 않다. 18세 미만 중에서 한 해 병원비가 100만원이 넘는 사람은 약 4% 정도이다. 중앙정부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 소아암 및 미숙아 지원 등 기존 공적인 대책과 민간의료보험의 보험금까지 적용하고 남는 본인부담금 중 100만원 초과액을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남시에 따르면, 1년에 15억원 정도이니 가성비가 높다. 일부 지자체도 성남시 시도를 주목하고 있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물론 성남시의 100만원 상한제는 여러 논점을 지닌다. 우선 민간의료보험과 정면충돌한다. 성남시 정책에선 민간의료보험의 보상금을 먼저 적용하기에 사실상 민간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지원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20세 미만 10명 중 대략 8명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이들이 내는 한 해 보험료가 연 4조~5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사업이 진행될수록 민간의료보험 해약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아픈 아이가 있는 집이 성남시로 전입하는 ‘의료 이주’도 예상된다. 성남시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면 지원받을 수 있으니 이사도 생각할 수 있다. 


논란이 생기겠지만, 전향적인 일이다. 서구 복지국가가 그러하듯이, 병원비는 민간의료보험 대신 공공재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 이주도 당사자에게는 절박한 선택이다. 오죽하면 이사까지 단행하겠는가. 문제는 두 논점 모두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성남시는 이 사업이 성공할수록 예산 부담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공공재정으로 전체 국민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지역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건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어린이 병원비 해결을 위한 성남시의 선도적 발걸음이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비 제로화 이름에 걸맞은 어린이 무상의료, 지금 시작하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22033015&code=990308#csidxca048080f178265bf32237b448d4f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