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성남시, 최초로 '어린이 무상 의료' 문을 열다

2019. 1. 17. 13:0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비급여 포함한 진짜 '어린이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오는 7월부터 성남시에서 아이들 병원비 걱정이 사라질 예정이다. 성남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18세 미만 '어린이 병원비 완전 100만 원 상한제'를 전격 시행하기로 결정하고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시작했다.

성남시, 18세 미만 병원비 책임진다


이 사업이 시행되면, 성남시에 사는 아이는 아무리 큰 병에 걸리더라도 연간 병원비 중 100만 원까지만 부담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시가 모두 지원한다. 이는 기존 국민건강보험의 '본인부담 상한제'에서 제외됐던 비급여 진료비까지 포괄하기에 아픈 아이를 둔 집은 앞으로 병원비 부담에서 사실상 자유로워진다. 물론 미용이나 성형 등 의료적 성격이 아닌 비용은 지원하지 않는다.  

성남시의 이번 사업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판단된다. 지난 2000년 직장과 지역 보험을 통합해 전국민 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 출범한 이래 꾸준히 보장 수준을 높여왔지만 아직도 보장률 62.6%(2016년 기준)에 머문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아픈데도 제 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중병에 걸릴 경우 가계가 파탄나곤 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운동' 


성남시의 사업은 2016년부터 시작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운동이 낳은 성과이기도 하다. 3년 전인 2016년, 어린이 단체, 사회복지사 단체, 복지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어린이 병원비'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전부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우선 어린이부터 병원비를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현재 26개 아동, 복지단체가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추진연대'를 꾸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던 단체들도 어린이 병원비 보장에는 한 목소리를 냈다. 기존 의료, 복지단체에 아동 단체들까지 가세하면서 목소리는 더 강해졌다. 

'왜 어린이부터인가?'라는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희귀, 난치성 질환 등 고비용의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2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어린이 병원비조차 모금이나 민간 보험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 스웨덴, 벨기에, 프랑스 등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들도 아이들에게는 성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장을 시행하고 있다. 

서구의 어린이 병원비 보장 사례

독일    : 18세 미만 진료비의 본인 부담 전면 면제
스웨덴 : 20세 미만 외래진료비 및 입원진료비 전액 면제
벨기에 : 19세 미만 650유로 초과 본인부담금 면제
프랑스 : 16세 미만 아동 본인부담금 경감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추진연대는 몇몇 후보자들에게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제안했다. 정책 협약까지 맺은 후보 중에 은수미 성남시장 후보가 당선되었다. 은 시장은 당선 직후부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담당팀을 꾸리며 구체적인 준비에 나섰다. 성남시의료원 정책연구소와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추진연대는 이 제도를 실제 지자체 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연구를 해 힘을 보탰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성남시서부터 조만간 완전한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가 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린이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 정책 협약을 맺은 은수미 성남시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 ⓒ이상호


성남시에 1년 이상 거주해야  

이 제도가 시행되면 성남시의 아픈 어린이 중 연간 100만 원 이상 병원비를 쓰고 있는 1318명이 당장 혜택을 볼 수 있다. 우선 어린이보험 등 민간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가구를 지원하며,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등 국가에서 시행중인 기존 의료비 지원제도를 먼저 적용한 후 나머지를 성남시가 지원한다. 이를 위해 성남시는 연간 14.5억 원이 필요하다. 올해는 7월 하반기부터 시행하므로 이에 절반 수준인 7.3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성남시 예산 3조 48억 원에 비추어 보면 큰돈이 아니다. 성남시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추경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다. 

이후 점차적으로 성남시에 필요한 재정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어린이 실손의료보험을 해약하는 가구가 생길 수 있다. 사전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중 이 제도를 시행하면 18.8%가 '해약하겠다'고 답했다.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널리 알려지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부에서 추진 중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보장 수준이 70%까지 오르면 성남시의 부담은 줄어든다. 성남시의료원 정책연구소는 이러한 재정 증가, 감소 요인을 종합해 2022년까지 필요한 재정 추계를 내 놓았다. 

▲ <표 1> 성남시 18세 미만 100만원 초과의료비 지원사업 재정 전망(출처 : 성남시의료원 정책연구소, "18세 미만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추진 모형 개발 정책보고서", 2019년 1월 9쪽).


결국 중앙 정부가 시행하는 전국 사업으로 발전해야 

또 하나의 논점은 아이 병원비 지원을 받기 위해 성남시로 이사를 가는 가구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성남시는 1년 이상 거주한 가구에 한해 지원할 예정인데, 고비용, 지속적 치료가 필요한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다른 지역 어린이 가구의 유입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이사 오는 가구가 많다면 성남시의 재정 부담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계속해서 성남시에만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 이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어린이 병원비부터 국가가 온전히 보장할 수 있도록 100만 원 상한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이들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 추진연대'가 주최한 어린이 음악회에 이러한 약속을 영상으로 보내왔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연대'가 주최한 어린이 음악회에 보낸 영상에서 어린이들에게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약속했다(내만복TV 동영상 갈무리). ⓒ내만복TV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영유아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을 지자체서 시작해 전국으로 발전시킨 경험이 있다. 또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캐나다의 의료보장 제도도 한 개 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처럼 성남시에서 시작한 어린이 병원비 100만 원 상한제는 중앙정부 제도로 발전해 가야 한다. 나아가 어린이에서 성인까지 보장이 확대된다면 병원비 보장만큼은 복지국가에 이를 날도 멀지 않았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5264#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