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노무현 대통령은 왜 국민연금을 깎았을까?

2018. 12. 5. 17:0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미래 세대 부담 덜고 기초연금 도입








국민연금 개혁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11월 초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인상을 담은 국민연금 개편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보험료율 인상을 자제해 달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 달라" "국민연금 의무 가입 규정을 폐지해 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 관련 청원이 수두룩했다. 

참여정부 시절, 연금 개혁으로 홍역 치러 

국민연금 개혁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때가 또 한 번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도 홍역을 치렀다. 당시 연금 개혁은 2003년에 착수해 2007년 완성되었다. 주 내용은 '소득대체율(=급여율) 60%에서 40%로 인하'였다. 국민은 가뜩이나 적은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당시 책임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최악의 복지부 장관'으로 낙인 찍혔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평가는 적절한 것일까? 당시에도 국민연금이 용돈 연금이라는 불만이 팽배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유 전 장관은 국민연금을 깎기로 했다.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가입자들의 이해관계를 넘어, 미래 세대와의 연대 차원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을 깎는 대신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해 하후상박식 연금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깨닫고 나면, 미래 청년들에게 가중될 부담과 국민들의 노후 대비에 대한 그들의 고뇌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예리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03년, 첫 번째 국민연금 재정 계산 실시 

국민연금법 제4조(국민연금 재정 계산 및 장기 재정균형 유지)는 국민연금법이 제정된 이후 10년이 지난 1998년에 도입되었다.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재정 안정화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다. 규정에 따르면,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해야 한다. 또한 재정 전망과 연금 보험료의 조정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하고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객관적으로 재정을 진단하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분담 몫 조정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하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법에 따라 2003년 재정 계산이 최초로 실시되었다. 계산 결과, 현행 보험료율 9%, 급여율 60%를 유지하면, 국민연금은 2047년에 고갈된다. 보험료율과 급여율 조정 등 제도 개혁이 없다면, 21세 청년이 막상 65세가 되었을 때 연금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후에는 미래 세대 부담 하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참여정부의 연금 개혁 최우선 목적은 재정 안정화였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율을 낮추고자 했다. 재정 고갈 위기에는 급속한 고령화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가입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설계된 연금 구조였기 때문이다. 1988년 도입 당시 보험료율은 3%, 급여율은 70%였다. 이후 보험료율이 단계적으로 올라 9%, 급여율이 60%로 낮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 간 재정 불균형이 컸다. 당시 재정 균형을 달성하는 필요 보험율은 대체로 급여율 10% 당 약 4%로 알려져 있었다(지금은 수명 연장으로 수급 기간이 길어져 필요 보험료율이 약 5% 수준으로 상향). 당시 급여율이 60%라면 보험료율은 약 24%여야 했다. 현실적으로 한 번에 적정 보험료율까지 인상하기는 어렵다.

유 장관은 보험료율을 12.9%로 올리고 급여율을 50%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유 장관은 장관직을 사퇴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율은 현행 9%를 유지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대신 급여율은 2008년 50%로 즉시 인하한 뒤, 2028년 40%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 결과, 재정 안정화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기금 소진 년도가 2060년으로 13년 미루어진 것이다. 

2007년 개혁 효과, 세대 간 형평성 도모하고 저소득층에게 유리

재정 안정화로 인해 미래 세대가 떠맡는 부담도 완화되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사보험에 비해 수익비가 월등히 높았다. 수익비란 납부한 보험료 대비 받는 연금액 비율이다. 사보험 수익비가 대략 0.8 정도일 때, 국민연금 수익비는 2.4 수준이었다. 가입자가 100원을 납부하면 240원을 받는 구조다. 140원이 추가 이익이다. 이 크기가 미래세대 부담 몫으로 볼 수 있다. 수익비가 높을수록 현 세대가 얻는 추가 이익이 크다. 하지만 미래 세대 부담은 더 커진다. 2007년 개혁으로 가입자 평균 수익비가 1.9로 낮아졌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 형평성이 완화되었다. 급여율 하락 효과였다.  

떨어진 급여율 때문에,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단편적이다. 2007년 개혁으로 새로 도입된 기초노령연금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소득 하위 70% 노인 모두에게 지급된다.

국민연금법 상 급여율이 60%에서 40%로 20%포인트 떨어질 때, 평균 소득 국민연금 가입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가입 기간이 대략 20년이라고 가정하면, 급여율 하락의 실질 효과는 약 10%이다. 법정 급여율은 가입기간 40년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실제 가입기간을 감안하면, 급여율 20% 포인트 하락은 실질적으로 10% 포인트 하락 효과를 지닌다. 이는 새로 도입된 기초노령연금 급여율 10%로 보전된다. 다시 말해 실질 급여율에서 평균 소득 가입자의 보장성은 연금 개혁 전후 비슷하다.  

주목할 점은, 가입자 계층별로 분석하면 2007년 개혁은 하후상박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급여율이 60%에서 40%로 떨어지면 급여액도 3분의 1 삭감된다. 상위 계층일수록 삭감된 급여액이 크다. 하위계층은 상대적으로 적다. 상위계층일수록 손실을, 하위계층일수록 이득을 본 것이다.  

이러한 기초노령연금 도입은 2007년 개혁에서 또 하나의 성과였다. 국민연금 제도 밖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 결과이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노동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험료를 제때 낼 수 없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취약계층에게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급여율 10% 금액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발전한 게 현재의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은 2018년 9월부터 25만 원으로 지급되고, 내년에는 소득 하위 20%부터 30만 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 있는 결정은? 

연금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노후를 위한 사회 연대와 사회안전망 문제다. 2002년 TV 대선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국민연금 급여율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노 전 대통령은 '용돈연금 만들거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자 연금을 깎았다. 미래 세대가 타의에 의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떠맡지 않도록 했다. 그 대신 여야 연금 정치의 결과이기도 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었다. 기초노령연금은 나이가 들고 소득이 없어도 마지막까지 국민을 지켜주는 장치였다.  

2007년 6월 담화문에서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관점이 드러난다. "(연금개혁)법안 처리 지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는 늘어나게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은 조속한 개혁안 처리를 호소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가?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19781#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