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민연금의 역설

2018. 10. 17. 10:5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유리.”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시민 홍보자료에 담은 문구이다. 사회복지학계에서 국민연금을 소득재분배 제도라고 평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말 그럴까? 본격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앞두고 꼭 점검해야 할 주제이다. 


국민연금의 독특한 급여산식 덕택이다. 국민연금액은 자신의 소득에 연동된 비례급여가 절반,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에 연동된 균등급여가 절반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대체율이 소득에 완전 비례해 계층별로 동일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균등급여로 인해 누진구조를 지닌다. 저소득층일수록 유리한 재분배제도라고 말할 만하다. 우선, 연금공단의 이야기는 맞다. 보통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40%라고 소개되지만, 이는 평균소득자 기준이고 계층별로는 누진적이다. 40년을 가입하면 하한소득자(월 30만원)는 자신의 소득 대비 100%를, 상한소득자(월 468만원)는 30%를 받는다.


이번엔 상반된 이야기. “고소득자일수록 혜택이 크다.” 어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로 밝힌 국민연금의 특징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의뢰한 분석을 보면,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 총액과 받을 연금 총액의 차이, 즉 순혜택은 고소득자일수록 많다. 예를 들어 가입기간이 20년으로 같더라도 100만원 소득자는 6779만원, 국민연금 상한소득자는 8887만원을 더 받는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상황을 감안해 소득별 가입기간을 다르게 가정하면 격차는 훨씬 늘어난다. 10년 가입한 100만원 소득자는 순혜택이 약 3000만원, 40년 가입한 상한소득자는 거의 1억9000만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으로 인해 두 사람의 경제적 처지가 노후에 더 벌어진다. 


사실 국민연금에서 역진성 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8월에는 한 시민단체가 내놓은 분석자료가 언론에 보도되자 연금공단은 해명자료를 내고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몰이해”라고 반박했다. 고소득층의 순혜택이 많을 수는 있지만 균등급여가 존재하므로 ‘역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동문서답이다. 급여산식의 누진성을 부정하는 지적이 아니다. 급여 변수만을 보면 국민연금은 분명 재분배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급여에 기여액을 결합해서 계산하면 소득이 높을수록 순혜택이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연금공단은 급여산식의 구조만을 다루고, 다른 쪽은 급여에 보험료까지 조합해 순혜택을 분석한 게 차이이다. 둘 다 객관적 진단이라면, 주목해야 할 건 상반된 평가가 나오게 된 원인이다. 정작 연금공단이 시민들에게 알렸어야 할 내용이다.


낮은 보험료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확정급여형 제도이다. 은퇴 후 받을 연금액이 보험료 수준과 무관하게 정해진다. 아무리 급여산식에 균등급여가 작동하더라도 보험료 수준이 낮으면, 보험료는 완전소득비례이기에 고소득자일수록 납부하는 절대액에서 부담이 줄어들고, 그 결과 순혜택이 커진다. 이에 보험료가 올라야 재정안정화뿐만 아니라 계층 간 순혜택의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국민연금은 OECD 회원국 연금에서 예외적으로 수지불균형을 지니고 있는 제도이다. 연금수리적으로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보험료율은 약 16~18%이지만 현재 9%이다. 서구의 나라들이 대부분 공적연금에서 수지균형을 이룬 반면 한국은 이 나라들과 비교해 수급개시연령이 빠르고 수명 연장으로 수급기간마저 더 긴데도 보험료는 급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더 내고 더 받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 다. 지난번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나온 ‘11%/45%’ 방안은 어떨까? 보험료 수준이 관건이다. 여기서 보험료율 인상 2%포인트는 대체율 인상 5%포인트를 충당하는 재정이다. 여전히 기존 40%체제가 지닌 수지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한다. 현세대 노동시장 중심부 가입자의 이해에 치우친 제안이다. 


재분배 제도로 설계되었지만 현실에선 고소득층일수록 유리한 ‘국민연금의 역설’, 어찌해야 할까? 이론적으론 보험료율의 대폭 인상이 해법이다. 하지만 서민 가계가 힘든 상황에서 사실상 실행하기 어렵다. 현행 순혜택 구조에서 대체율 인상이 적절한지, 그에 따른 추가 보험료율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냉엄하게 봐야 하는 이유이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으로 가자.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벼랑으로 내모는 건 곤란하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겐 법정연금으로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있다. 연금 삼총사로 우리의 노후보장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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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62039025&code=990308#csidxfe1e97a341513f2b262ec9af1fb9c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