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원격 의료, 의료 영리화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2018. 8. 23. 15: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원격 의료, 의료 공공성 강화와 결합하라






문재인 정부의 의료 규제 완화 흐름이 심상치 않다. 국민 건강보다는 업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의료의 공공성 강화 흐름도 뒷걸음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여기에 보건복지부와 청와대가 원격 의료 허용의 목소리를 내면서 과거 정부의 의료 영리화 프레임이 다시 작동되기 시작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원격 의료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다시 등장했다.

다시 등장한 원격 의료 논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원격 의료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의료 민영화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말이 아닌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원격 의료 자체가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우리 사회가 원격 의료를 절대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원격 의료가 필요할 것인지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다. 그런 측면에서 무작정 원격 의료=의료 민영화 딱지를 붙이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해 온 원격 의료에 대해 의료 영리화 정책이라 비판해 왔다. 원격 의료의 '순기능'은 없이 역기능만 초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의 목적은 기존의 대면 진료를 원격 의료로 대체하겠다는 것과 관련 산업 육성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귀결은 의료의 질의 하락, 의료 전달 체계의 붕괴, 무한 경쟁식 의료 체계, 국민의 의료비 부담으로 귀결하리라는 우려가 컸다. 

그렇다면, 원격 의료가 의료 민영화 논란을 피하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있을까?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아 의료기기 규제 완화 행보를 벌이고 있다. ⓒ청와대


원격 의료의 세 가지 유형 

원격 의료(telemedicine)는 크게 세 가지 유형(미국 의학연구소분류 IOM)이 있다. 첫째, '저장 전달형(store and forward)' 원격 의료다. 보통 환자로부터 수집된 생체 신호나 의료 이미지 등의 의료 정보를 전문의 진단 등을 위해 전송하는 형태이다. 주로 병리학, 영상의학 등을 해당 전문의에게 보내 판독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원격 모니터링(remote monitoring)' 원격 의료다. 의료진이 원격에 떨어져 있는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실시간 대화형(real-time interactive)' 원격 의료다. 실시간으로 환자와 의사 혹은 의사와 의사간에 오디오와 비디오를 통해 의료를 제공하는 유형이다.  

위의 세 유형의 원격의료는 꼭 필요한 영역에서 활용된다면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자.  

첫 번째 유형은 이미 우리 의료에서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조만간 활성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일차의료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 사업'이 본격화될 때 활용한다면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혈압, 당뇨병같은 만성질환은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다. 환자가 내원했을 때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내원하지 않더라도 원격지에서 전화, 이메일, 앱 등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관리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의사 환자 관계도 더 돈독해질 것이고, 일차의료가 주치의의 성격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차 의료의 강화에 복무하는 긍정성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째 유형이다. 이 원격 의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형이다. 그런데 미국은 세 번째 유형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반드시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하고, 오디오-비디오를 통해 의사와 쌍방 소통해야 한다. 인증된 고가의 원격 의료 장비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집에다 이 유형의 원격 의료를 위한 장비를 갖추고 있기란 거의 어렵다. 

주로 활용하는 방법은 의사 특히 전문의가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 일차의료기관에 내원했을 때 의사가 환자를 진단·치료하는데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실시간 오디오-비디오 장비를 이용하여 도시 지역이나 큰 병원의 전문의와 연결하여 진료의 자문을 얻는 방법으로 활용한다. 기존의 대면 진료를 대체할 목적이 아니라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메디케어(Medicare:노인에 적용되는 공공의료)에서 세 번째 유형에 대해 원격 의료 수가로 보상한다. 하지만, 조건도 엄격하다. 전문의 등에 대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 지역(Health Professional shortage Area, HPSA)이어야 하며, 의료기관 내에서 제공할 때로 한정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의료인 사이에서 진행되는 원격 의료로 보는게 타당하다. 

이 세 번째 유형이 불필요한 걸까? 아니다. 전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불법인가? 아니다. 허용되어 있다. 우리의 의료법에서도 의료인 간 원격 의료는 가능하다. 정말로 필요한 원격 의료는 의료인 간 원격 의료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 활성화가 안 되어 있을까? 제대로 된 수가 책정이 안 되어 있어서? 아니다. 의료전달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를 두고 의원 간에, 대형병원-병원-의원 간에 무한 경쟁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요구하지 않는다면, 의뢰나 회송이 이뤄지지 않는다. 의료인 간 원격 의료는 더 그렇다. 

의료기관 간에 서로 역할이 구분되고 서로 의뢰 회송 시스템과 같은 전달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접근성의 문제로 직접 의뢰 회송하지 못한다고 할 때, 원격 의료를 활용해서 상급병원의 진료와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직접 대면진료보다는 못하지만, 진료를 못 받는 것보다는 당연히 낫다.  

정부가 간절히 원하는 원격 의료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 의료체계의 무한 경쟁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의료 공공성 강화의 주요 과제이다. 

의료산업 활성화의 연장선이었던 원격 의료 

그런데, 그간 정부가 원격 의료를 추진해왔던 핵심 문제 의식은 이것을 모두 놓치고 있었다. 오로지 산업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추진해왔었다. 그렇기에 정부는 원격 의료를 의사-환자 간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수단, 병원에 가지 않고 손쉽게 처방전만 발행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야 원격 의료 장비를 환자에게도 팔수 있으니까! 비용 효과 분석도 오로지 대면 진료를 대체함으로써 의료비 절감이 얼마인지를 추계하는 것 뿐이었다. 원격 의료를 대면 진료 없이 처방전만 리필받을 수 있는 제도로만 바라본 셈이다. 

이는 결국 지금의 3분 진료로 대변되는 취약한 대면 진료는 원격 리필 처방으로 대체되어 약처방은 쉽게 받을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환자 관리는 안 되어 오히려 환자의 건강 관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합병증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도 늘어날 것이다. 의료전달체계는 더욱 심화된 경쟁이 벌어지고, 동네의원 간에, 병원과 동네의원 간에 환자를 뺏고 빼앗는 무한 경쟁이 악화될 것이고, 그 와중에 대형병원의 원격 의료에 나선다면 환자 쏠림은 더욱 심각해지고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었다. 단순히 편리성 대가로 값비싼 원격 의료 장비를 구매해야 하므로 국민의 의료비는 더 상승하면서도 의료의 질은 하락하는 최악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더 이상 원격 의료를, 대면 진료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허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원격 의료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기존의 대면 진료를 대체하고자 함이 아니다. 기존의 대면 진료에서도 부족한 환자 관리 수준과 질을 높이고(원격 모니터링을 통해서) 의료 접근성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조건(섬 지역, 전문의가 없는 시골지역 등)하에서 의료인 간 원격 진료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켜 의료의 질을 높이려는 수단이어야 한다. 

또한, 의료 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의사의 방문 진료(왕진)을 허용하는 것이다. 현재 방문 진료는 불법이다. 의사가 방문하여 진료를 하고 싶어도 불법이라 진료도, 처방도 막혀 있다. 왕진을 허용해주기만 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독거노인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해소할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의사가 고혈압, 당뇨병을 가진 환자를 진료할 때 3~5분 진료로 약물만 처방하고 있다. 의료기관 방문횟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두 배가 넘는다. 일차의료의 질은 낮다. 동네의원의 당뇨병 관리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전체 당뇨환자들 중 단지 25%정도만이 제대로 조절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으로 인한 입원이 OECD 최고 수준으로 높다.  

만성질환이 제대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의사 환자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추적 관리도 제대로 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만성질환 관리사업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만성질환 환자에게 정기적으로 치료 계획을 세우고 교육하고 상담하며, 내원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의사-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대면 진료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때, 지속적인 환자관리를 위해서는 IT기술을 활용한 원격 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혈당이나 혈압, 체중 변화 등은 환자가 스스로 체크하면서 전화, 이메일, 앱 등을 통해 담당 의사에게 정보가 전달되고 상담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관리능력은 향상될 것이다. 이때는 자연스럽게 대면 진료 방문회수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1개월 단위로 약물 처방이 이뤄지지만, 관리가 잘 이뤄지고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면 3개월 6개월마다 내원 진료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처방전 리필을 원격으로 허용해주어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이렇듯 원격 의료가 공공적 의료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순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검토 없이 오로지 관련 산업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만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찾는다면, 원격 의료=의료 민영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없으며, 성공할 수도 없다. 

원격 의료, 의료 공공성 강화와 결합하라! 

정부가 정말로 원격 의료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먼저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라. 의협에 가로막힌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해라. 그리고 의뢰-회송 수준을 넘어선 환자 중심으로 의료 공급자를 통합·조정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라. 미국의 책임 의료조직과 같은 모델이 한 예다.  

또한, 일차의료의 기능을 강화해라. 동네의원 중심의 만성질환관리 추진단이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그리고 공공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할 방안을 즉시 발표하라. 올해 초에 발표한다던 공공 보건의료 발전 종합 대책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정부가 정말로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싶다면, 원격 의료가 아니라 먼저 의료 공공성을 강화해라. 부족한 병원의 의료 인력을 늘려라. 우리나라 병원의 의료인력 수는 OECD 3분의 1수준이다. 커뮤니티 케어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건강생활 지원센터를 읍면동 곳곳에 건설하라.  

돈이 없다고? 법만 지켜라. 지난해 건강보험에 지원해야할 국고지원액은 7조 4649억 원(예상보험료 수입의 14%)이었지만, 5조 4201억원에 불과했다. 부족한 2조 원을 건강보험 인력확대에 투입한다면, 7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진정으로 정부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민의 의료 접근성과 의료질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원격 의료를 추진한다면, 과감하게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과연 정말로 원격 의료의 순기능만을 위해 추진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겠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보건 의료 정책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성격으로 결론내고 싶지 않기에.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08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