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KTX 승무서비스는 한 팀이다

2018. 6. 20. 15:3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그제, KTX 해고 승무원들이 청와대까지 행진을 벌였다. 대통령에게 철도공사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시위이다. 13년째 계속되는 일이다. 승무원들은 2006년 파업으로 해고를 당한 이래 농성, 시위, 재판 등 가능한 모든 활동을 벌였다. “이토록 처절하게 저항해도 잘 굴러가는 이 사회에 절망한다.” 예전에 서울역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가며 승무원이 한 말이다. 2015년에는 대법원의 판결로 복직의 희망이 무너지자 한 분은 목숨까지 끊었다. 세 살 아이를 남겨두고서.


만약 승객이 객실 출입문에 있는 알람손잡이를 당겼다면 누가 와야 할까? 가장 근방에 있는 직원이 오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가 열차팀장이든, 승무원이든. 갑자기 옆좌석 승객이 구토를 하거나 경련 증상을 보인다. 어느 직원이 도와줘야 할까? 아마 객실로 먼저 들어온 직원이 승객을 보살피리라 예상할 것이다. 그가 열차팀장이든, 승무원이든. 그런데 현재 KTX에서 두 사람의 업무는 엄격히 분리돼 있다. 알람손잡이 응답, 승객 건강, 화재 예방, 긴급 대피 등 안전 업무는 오로지 열차팀장의 업무이다. 실제는 어떨까? 


상황마다 승무원은 승객을 도울 수밖에 없다. “아, 그건 열차팀장의 일이에요.” 이럴 순 없지 않은가? 복잡해 보이지만, 논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재 KTX 10량 편성 열차를 보면 객실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각각 회사가 다르다. 열차팀장은 철도공사, 승무원은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회사가 달라도 되는 걸까? 여기서 두 노동자의 역할이 별개냐, 즉 승무원이 열차팀장과 아무런 관계없이 업무를 수행하느냐가 관건이다. 사실 승객이 보기에는 어리둥절한 논점이다. 연령대를 보아 이분이 선임자이겠구나 예상할지언정 두 사람 모두 승객을 돌보는 직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진상 승객을 제압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승객들이 승무원을 하대하거나 희롱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승차권 검표 과정에서 시비가 붙기도 한다. 승무원이 혼자서 대응하기 힘든 상황일 때 누가 도와야 할까? 김 장관 같은 시민도 있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동료 직원이 오리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업무 매뉴얼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고객서비스는 오로지 승무원의 일이다. 현실은 어떨까? 물론 열차팀장이 와서 승객을 달래며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이 하는 일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공식 매뉴얼이 열차팀장은 안전만, 승무원은 고객서비스만 담당하라지만, 고속으로 승객을 나르는 열차 위에서 두 사람은 승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늘 열차를 함께 타는 선후배 노동자로서 오늘도 업무 규정을 ‘위반’해야 하는 이상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왜 이렇게 인위적으로 업무가 분리되었을까? 2004년 KTX가 운행을 시작할 때에 이들은 사실상 한 팀이었다. 열차를 탑승하기 전에 열차팀장과 승무원이 점검회의를 열었고, 객실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함께 대응했다. 승객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한 팀의 팀장과 팀원이었다.


그런데 2006년 철도공사는 당시 여성으로만 구성된 승무원들을 다시 자회사로 배치했다. 입사할 때가 마침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되는 시점이어서 일단 자회사인 홍익회에 채용된 후 철도공사 정직원으로 바뀐다는 약속을 믿었던 승무원들에게는 황당한 일이었다. 이어 철도공사는 열차팀장은 안전, 승무원은 고객서비스만 담당하도록 업무 규정도 바꾸었다. 두 사람의 업무가 겹치면 자회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게 위장도급으로 불법이 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한 억지 구분이다.


몇 년 전에는 문제가 풀리는 듯했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열차팀장과 승무원이 하나의 팀으로 일하기에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두 노동자의 업무가 다르니 철도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한 승무원을 해고한 게 정당하단다. 최근 드러난 대법원과 청와대의 재판 거래 의혹 중 하나이다. 


이제 해결하자. 노동존중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무원들이 청와대로 행진해야 하는 상황이 부끄럽다. 여전히 인위적인 구분에 얽매여 승무원도 안전업무를 수행한다는 판정이 분명해야 직접 고용이 가능하다며 지금까지 시간을 보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금세 풀린다. 시민에게 물어보아라. 객실을 오가는 열차팀장과 승무원이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 이들은 함께 승객을 살피는 한 팀이고, 그러기에 선임자 직책도 열차 ‘팀장’ 아닌가?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 KTX 승무원들이 철도공사 노동자로 일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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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192120045&code=990308#csidx5bbd92bdd0fafdb8708a06a46a1d95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