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사회보험료 더 내자

2018. 4. 25. 10:4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어느새 문재인 정부 1년이다. 촛불시민의 염원대로, ‘나라다운 나라’를 향해 가고 있을까?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문재인 정부가 순항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국정농단에 대한 청산이 진행되고, 한반도에 전해오는 평화의 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공정거래 구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복지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재원으로 설계된다. 지금까지 복지논의를 이끌어 온 건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세금복지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로 인해 중앙정부, 지자체, 교육청이 복지예산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과세수 덕택에 무난히 예산이 편성되었다. 물론 초과세수로 운영되는 복지는 불안정하다. 얼마 전 출범한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증세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니, 여기서 세금복지의 재원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복지 분야는 어떨까? 문재인케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복지의 확대가 눈에 띈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시작된 복지바람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고 있다. 항목만 보면 서구 복지국가의 모양새를 대략 갖춘 셈이다.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온 부양의무자, 장애등급제, 사회서비스 인프라 등에서도 단계적인 개혁이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복지국가로 가고 있는 걸까? 왠지 이 경로를 밟아도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에 도달할 거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어디가 비어 있을까?


남는 영역은 사회보험이다. 근래 세금복지가 발전했지만 우리나라 복지체제의 핵심 기둥은 연금, 의료, 요양, 실업, 산재를 책임지는 사회보험이다. 현재 사회보험은 전체 복지 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앞으로는 8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복지의 중심부를 차지하면서도 사회보험은 급여가 빈약하고 사각지대가 넓다는 문제를 지닌다. 4차 산업혁명까지 거론되는 시대여서 사회보험이 온전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래도 다수가 노동하는 사회에서는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다. 


문재인 정부도 사회보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급여 확대도 제안한다. 그런데 이에 뒤따라야 할 사회보험료 주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재인케어를 보자.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는 괜찮은 정책이다. 하지만 재원은 국민건강보험 누적흑자액의 일부 사용과 건강보험료의 통상적인 자연증가분에 의존한다. 첫 1~2년은 누적흑자액으로 충당한다지만 이후가 불명확하다. 국민연금도 그렇다. 지금도 급여에 비해 보험료가 낮은 구조인데도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은 명시돼도 보험료율에 대한 문구는 없다.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그나마 내년에 조금 오를 예정이지만 이 역시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최근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보듯이, 실업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고용보험료의 대폭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 


이해는 간다. 시민들의 부담을 감안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보험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제안한다. 작년 가을부터 내용을 채우고 있고, 조만간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 출범할 ‘사회전략회의’도 이를 강조할 듯하다. 과연 포용적 복지국가론은 사회보험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수립할까? 재원 없는 공문구라 비판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의 한계를 넘어설까? 


물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보완책도 필요하다. 사회보험료가 힘겨운 불안정 노동자, 영세자영자 등에게는 보험료 지원을 늘려야 한다. 아예 사회보험 밖에 있는 취업자에게는 실업부조를 제공하고, 빈곤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의 추가 지급도 요청된다. 사회보험을 강화하면서 세금복지를 보완하는 투 트랙이다.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 1년, 복지 확대를 위해 노력한 기간으로 평가된다. 다만 사회보험료를 성역으로 두는 한계도 확인된다. 이제 터놓고 이야기하자. 복지국가로 가려면 그만큼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내고 또 기업이 절반을 책임지는 사회연대 재정이다. 공적 사회보험이 튼튼할수록 비용이 더 드는 민간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기에 사회보험료 인상은 결과적으로 가계비를 절감하는 일이다. 


조만간 내년 건강보험료 논의가 시작된다. 여름이면 5년마다 시행되는 재정추계에 따라 국민연금 보험료도 의제로 떠오를 예정이다. 실업 안전망 대책도 절실하다.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민간보험 대신 공적 사회보험으로 우리 생활을 보장하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42117045&code=990308#csidxb9c1b4e9c68297cbda36ab235dcca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