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박근혜 '아버지의 꿈', 그 실체는…

2012. 12. 4. 20:4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 공약 쟁점 부각이 절실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대선이 보름 남짓 남았지만 아직까지 정책 논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최악의 정책 실종 선거로 기록될 듯하다. 양자 간 TV토론도 내일(4일)에야 처음 열린다. 복지 공약 쟁점도 이 파도에 휩쓸려 보이지 않는다. 후보마다 복지국가를 약속하므로 복지 영역에선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후보 간 복지 공약 차이가 없는 걸까?

과연 복지 공약에서 후보 간 차이가 없을까? 지난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들의 당락을 결정지은 잣대는 무상급식, 보편복지 지지 여부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복지 쟁점을 중심으로 양편을 형성해 맞싸웠던 2년이다. 그런데 1년 만에 차이가 없어졌을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에선 후보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사자들의 외침과 움직임이 있는 공약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다른 복지 공약에서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한다. 다만 논점으로 드러나지 않은 탓에 수면 아래 숨어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무상급식, 보편복지 담론을 통해 지지세를 늘려왔던 야권 정치세력의 무능이 한몫을 하고 있다. 어쩐 일이지 올해 들어 야권의 복지 행보가 소극적이다. 말로는 복지국가를 외치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접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강한 복지에 어울리는 재정 방안도 깔끔하게 내놓지 못한다. 자신의 작은 복지 정책이 드러날 것을 원치 않는 새누리당이 바라는 수순을 따라가고 있는 꼴이다.

'증세는 독배' 주장에 정면 승부하는 '증세 정치' 필요

물론 조세 저항이 강하게 존재하는 한국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분명한 재정 방안을 내놓고 복지 민심과 논의하고 보완해 나가는 활동, 즉 시민을 향한 '증세 정치'가 절실하다. 하지만 유력 후보로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문재인 후보에게서 이러한 활동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직까지 재정 방안의 구체적 내역도 발표되지 않았다.

안철수 전 후보 역시 그렇다. 지난 7월 <안철수의 생각>에선 다수 시민이 능력껏 세금을 내는 보편 증세를 역설하고선 막상 지난달에 발표한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에선 증세를 사실상 철회하고 복지 공약 수위도 낮추었다. 지난 2~3년 민심이 만들어낸 복지 열망에 야권 정치세력이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2012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번 주에 문 후보의 총괄적 복지 공약과 필요 재정 규모, 재원 방안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은 발표이지만 복지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내실 있는 방안을 선보이길 바란다. 그래야 복지 공약 논점을 생산적으로 드러내고 후보 간 차이를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다. 논점이 형성돼야 복지 민심을 지지 세력으로 모을 수 있고, 집권해서는 그 힘을 토대로 공약을 실행할 수 있다.

박 후보의 4대 질환 국가 책임, 고액 진료 질환의 15%에 불과

박 후보와 문 후보의 복지 공약 중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주제는 보건의료이다. 이는 복지지출에서 가장 큰 재정이 소요되는 영역이기에 후보 간 차이를 검증하는 핵심 기준으로 삼아도 될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문 후보는 질환 종류를 따지지 않고 1년에 환자 1인당 본인부담금이 100만 원을 넘는 의료비는 모두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지는 '100만 원 상한제'를 약속했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공약이 실행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병원비 불안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박 후보는 4대 중증 질환(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국가 책임을 발표했다. 국민들이 큰 부담으로 느끼는 상징적 질환만큼은 국민건강보험이 해결하겠다는 약속이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두 후보 공약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이 겪는 질환 종류가 워낙 많아 박 후보가 약속한 4개 질환이 고액진료비 질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연 500만 원 이상 고액 진료의 15%, 연 1000만 원 이상 고액 진료의 17%). 만약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언급된 4개 질환 환자는 다행히 의료비 부담에서 벗어나겠지만 디스크, 간, 장, 안과 등 85%의 다른 고액 진료 환자는 계속 의료비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박 후보는 무상급식에서 아이들을 차별하는 선별복지론을 고수하더니 이제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차별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듯하다. 물론 앞으로 남은 보름간 이 논점이 유권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추가 재정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의료비 불안을 해소하는 듯한 정치적 성과를 얻어갈 수 있다. 정책 공약 검증이 절실한 이유이다.

▲ 입원한 중증환자. ⓒ한국간병인협회 홈페이지

신자유주의 근로 연계 복지냐, 노동시장 불안정 보완하는 기본 생활 지원이냐?

일자리 관련 공약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박 후보는 창업 지원, 해외 취업 등을 강조하지만 현재의 노동시장 조건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에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두 후보가 공공부문에서 만들고자 하는 일자리 공약의 구체성을 따져본다면 후보 간 차이가 확인될 수 있다.

실업급여 관련 공약에서도 차이가 있다. 문 후보는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현행 실업급여를 강화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에겐 구직 촉진 급여를 지급하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후자는 일종의 실업부조 형식의 제도 도입이다. 반면 지난 총선공약을 보면 새누리당에선 실업급여 강화, 실업부조 도입을 찾아보기 힘들다. 일하는 것을 복지의 조건으로 삼는 시장 중심주의 정치세력의 근로 연계 복지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공약, 재정 배분 여부 확인해야

한편 복지 인프라를 공공화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무척 중요한 과제이다. 두 후보 모두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역대 선거에서 복지 인프라 공약이 가장 '빈 약속'이었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민간복지 주체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어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공복지 인프라 확대 공약에선 후보의 복지 철학, 공약 실행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 인프라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깊이를 검증해야 하고, 공공 인프라 확대를 위한 재정 배정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두 후보 모두 연 10~12만 호씩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데, 연 10만 호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약 10조 원이다. 후보들의 복지 재원 공약에서 공공임대주택 건설 몫에 얼마가 배정되어 있을까? 만약 그 재정 책임을 전적으로 LH공사에 넘기는 공약이라면 이는 사실상 '빈 약속'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박 후보의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약속, 과연 지켜질까?

기초노령연금은 선거 때만 대우받는 공약이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선거일을 앞두고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인수위원회에서 이 공약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임기 5년간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기초노령연금 인상 공약을 이행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귀를 닫아 왔다.

지난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가 진두지휘한 지난 총선에서도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방안은 새누리당 공약집에 없었다. 워낙 많은 재정이 소요되는 공약이기에 이제 새누리당 정책에서 기초노령연금 일괄 인상안은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지난달 5일 박 후보는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월 20만 원 정도의 기초연금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일이 다시 반복되려는가? 강력한 실현 로드맵과 재정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이제는 새누리당에 여러 번 속았던 어르신들이 이 약속을 수긍하지 않을 듯하다.


문 후보의 2017년 필요재정, 박 후보의 2배에 육박할 듯

곧 발표될 재정 방안에선 차이가 더욱 뚜렷할 것이다. 현재 두 후보 모두 임기 중 연평균 조달 규모를 발표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공약의 수위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임기 5년째 복지 확대 목표와 재정 확보 규모를 살펴보아야 한다.

박 후보의 2017년 재정 확충 규모는 31조 원이다. 복지 공약이 재정 확충 금액을 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으므로 복지공약은 약 30조 원 안팎일 듯하다. 문 후보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2017년 복지공약 소요액이 5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모두 복지국가 후보로 자처하지만 복지 공약에 필요한 재정 규모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재정 방안 공약에서 쟁점은 증세 여부이다. 박 후보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과 같은 증세는 없다고 못 박았다. 지출 개혁, 조세 감면 축소, 탈루소득 과세 등을 통해 자신의 필요재정을 모두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 역시 지출 개혁, 탈루소득 과세 등을 주장하기에 이 영역에선 논점이 생기지 않을 듯하다(지출 개혁 방안의 구체성 기준에서 보면 두 후보 모두 한계를 지닐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국 숙제는 증세를 주창하는 문 후보에게 떨어져 있다. 강한 복지 공약을 내건 만큼 감당해야할 숙제이다. 지금까지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의 부자증세를 철회하는 수준으로 증세 방안이 나올 듯하다.

과연 문 후보는 이러한 증세를 통해 복지 공약에 필요한 재정 부족분을 모두 마련할 수 있을까? 문 후보는 박 후보와 시민사회 양쪽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이미 참여연대는 부자증세를 뛰어넘는 법인세 인상을,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모든 직접세에 부과하는 목적세로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남은 기간뿐만 아니라 대선 이후에도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영역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의 황당한 부자증세 비판

보편 복지를 주창하는 정치권이 증세에 소극적인 건 '선거에서 증세는 독배'라는 통설이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이전과는 달리 미래 대한민국 복지를 위해선 기꺼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복지 민심이 커가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정치권의 증세 경계감은 여전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 정치권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만큼 아직 시민사회에서 증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라도 세금을 대한 시민사회의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 2월 발족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가는 일이다. 최소한 서민들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세금폭탄론을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아가 시민 스스로 재정 지출 혁신의 주체가 되고 복지국가를 위해선 '내라!'를 넘어 '내자(낼 테니 내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세금 관련 시민단체의 주장은 황당하고 안타깝다. 오랫동안 세금 관련 활동을 벌여온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달 29일 '부자증세의 불편한 진실 10가지'를 발표했다. 이 내용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다.

주로 세금을 덜 내는 '세테크' 홍보활동에 주목해 온 이 단체는 복지 확대 공약과 부자증세 논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부자에 대한 세금은 서민에게 전가되기 쉽다"며 부자증세를 비판하고 심지어 "부자들에게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어 부자들이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까지 주창한다.

지난 10년간 '국내 유일의 조세 시민단체'라고 자부하는 단체의 주장으로 믿기지 않는다. 이 단체가 가입해 있고,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계납세자연맹의 주요 슬로건 목록에서 '민영화와 규제 완화', '낮은 세 부담'도 눈에 띈다. 우리 시민사회의 일부 세금 논의가 아직도 과거 인식에 묶여 있다는 답답한 방증이다.

남은 2주일, 차이를 드러낼 토론을 기대한다

2010년 무상급식 논란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잔여적이고 선별적인 복지틀을 넘어 보편복지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 꿈을 향해 가는 길에 넘어가야할 주요한 고개이다. 박 후보의 생애주기별 맞춤형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에 담긴 공약의 실체를 시민들이 직시해야 한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문 후보는 강한 복지 공약에 조응하는 명확한 재정 방안과 복지 확대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보름 남짓 남은 기간만이라도 복지 공약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지난 2~3년 복지 민심이 만들어낸 소중한 성과가 덧없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후보들의 적극적인 차이 드러내기 토론,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 묻는 유권자들의 날카로운 검증이 필요한 2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