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선 후보들, 유승민과 박주민을 본받아라

2017. 3. 9. 17:2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대선 후보들이여, 주거권을 말하라




한국 주거 현실의 실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주거권 유린"이다. 재산 증식 수단으로 집을 보도록 몰아가는 정부와 국회, 언론, 건설 자본의 농간과 야당의 묵인, 지식인과 언론의 부화뇌동 내지 침묵의 결과이다. 이로 인해 세입자의 주거권이 짓밟히고 무주택자의 주거 불안이 끝도 한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주택자는 을 중의 을이고 세입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불평등, 불공정의 전형이고 적폐 중의 적폐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는 물론 정치인들 대다수도 주거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 산 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이다. 일부 야당에서 주거 문제를 때로 언급하긴 하지만 립 서비스 수준이다. 

계속 거주권 보장, 이제 결단할 때 

문명국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라는 예외 없이 무주택자에게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주거 분야는 글로벌 스탠다드 근처에도 못가고 주거 후진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2년마다 이사를 강제 당하거나 터무니없는 보증금 또는 임대료 인상을 강요받는 일이다. 주거권을 보호해야 할 법률이 오히려 주거권을 파괴하는 현실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반대로 주거권을 파괴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6조 3항에 아무런 단서도 없이 임대인이 2년마다 임대차 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을 두고 있다. 주거권 파괴 조항이다. 세입자는 왜 거절하느냐고 물을 수도 없다.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큰 비율의 임대료 상승을 요구하는지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 주거권의 핵심은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무는 것이다. 계속 거주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 2015년 4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7대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민주거안정 연석회의 회원이 단체의 구성 취지 및 경과 보고와 관련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 시민 항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자체가 아니라 항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민중들은 높고 견고해져만 가는 불평등 구조. 그에 따른 극심한 차별 구조를 깨고 신분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요즈음 누구나 적폐 청산을 말한다. 추상적인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현상의 변화에 머무는 정치 개혁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사회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촛불 시민 혁명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오랜 세월 민주주의를 열망한 나머지 자유권에 갇혀 사회권 실현이 시대적 과제라는 걸 잊어 버렸다. 이제 사회권이다. 사회권의 핵심에 주거권이 있다.  

대선 후보 출마 선언문에 '주거권'이 없다 

자천 타천 '대선 후보들'은 출마 선언문을 뿌리면서 사자후를 토하고 있지만 주거권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지지를 받는 순으로 보면 선두는 야권 인사들인데 주거 문제를 적폐 문제로 보는 후보도 없고 공정한 사회를 가로막는 문제가 주거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낸 후보도 없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후보들이 내어놓은 출마 선언문에 주거 문제가 들어있지 않다. 후보에게 주거 문제가 관심 밖이거나 깃털보다 가벼운 문제로 바라보는 사고의 표현이다.  

출마 선언문은 삼국지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하고자 하는 말을 압축해서 국민에게 제시하는 표문이다. 출사표에는 후보와 후보를 둘러싼 집단의 철학과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들어날 수밖에 없다. 의식주 가운데 가장 무겁고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주거 문제가 빠져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면 유승민의 출마 선언문이다. "전월세로 고통받는 서민, 젊은이들을 위해 소형 주택, 임대 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일단 박수를 보낸다. 실천이 뒷받침되기 바란다. 가장 개혁적인 후보로 여겨지는 이재명의 출마 선언문에 주거의 '주'자도, 세입자의 '세'자도 안나온다. '공정'을 수도 없이 외치고 있지만 서민들, 특히 가장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생존을, 삶의 질을, 생활 안전을 좌우하는 '주거'가 빠져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왜 주거 문제가 빠져 있는지 답하기 바란다.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를 제일 많이 받는 것으로 나오는 문재인 후보 역시 주거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문 후보는 그동안 전월세 상한제, 계약 갱신 청구권을 여러 차례 말하긴 했다. 하지만 당 대표로 있을 때도 실천 의지를 제대로 안 보였다.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도 주거 문제는 찬밥 신세다. 2차에서 청년 주거를 언급하는 후보가 있긴 했지만 1차에선 한 번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연합뉴스


정치 개혁에 갇혀 있는 대선 후보들 

사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의식주다. 그 가운데서도 주거 문제는 사람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다. 오랫동안 자가에 살았거나 임대를 내어 놓는 사람들은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상류층은 '뭐가 문제야?'하고 되묻는다. 자신들은 호의호식하니까 민중들, 특히 무주택자들의 아픔과 설움, 괴로움, 자괴감, 모멸감, 창피함, 수치심, 우울감을 모른다.  

모든 대선 후보가 적폐청산을 말하면서도 주거권을 말하지 않는 것은 정치 개혁을 넘어 근본적인 사회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촛불 혁명을 말하는데 실제는 정치 개혁에 머물러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다.  

밥 먹듯이 물과 공기 마시듯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주거권이다. 인구의 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주거권을 유린당하고 있는데 모른 척 하는 것은 '혁명'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세입자 2400만 명과 예비 세입자 1600만 명이 '2년 거주제' 걷어치우고 한 곳에 계속 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아우성인데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자신들과 무관한 문제이므로. 존재의 조건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지만 존재의 조건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는 생생한 사례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소득 할당제'와 '자산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 공탁금제도 개선해야 한다. 선출직의 공탁금제를 폐지하는 게 옳은 일이자만 적어도 소득 비례에 의한 공탁금 납부를 해야 한다. 소득 최상위에 있는 인물들이 공직을 독점하는 한국 정치구조, 이게 바로 적폐다. 정치 개혁, 사회 개혁, 민중 생존권 보장, 주거권 보장을 가로막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주거권을 말하지 않는 이유 

대선 후보들이 '주거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보 본인이 재산과 부동산이 많고 자가를 가지고 있어서 무주택자들이 느끼는 한과 설움을 못 느끼는 경우이거나,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 기득권층'인 건설 자본과 건설업자, 임대인들과 자산가들의 존재와 그들의 반응이 두려워 회피하는 경우다. 그것도 아니면 주거 문제에 무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미 본인이 부동산 특권층이거나 유주택자인 삶을 산지 오래되어 무주택자의 아픔과 슬픔을 모르는 경우는 이해해 줄만 하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처럼 강자 쪽을 의식해서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면 개혁의 관점으로 보나 언행일치라는 관점으로 볼 때 용납할 수가 없다. 세 번째 경우는 매우 난감한데 주거 당사자들과 소통하거나 주거권에 충실하고 주거 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얼마 정도는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도 후보가 뜨거운 가슴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주거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표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근본책임을 따지면 주거 운동하는 사람들과 주거 당사자 책임이다. 

민주당은 '계속 거주권' 입법화 작업에 나서라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계약 갱신 청구권은 현재 2년제에 2년을 보태 모두 4년의 거주를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주거권 보장이 아니다. '머물고 싶은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무는 게' 주거권의 핵심이다. 주거권은 생존권적 기본권이다. 기본권에 기한을 정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2년제를 4년제로 바꾸면 전월세 상한제도 연장된 2년만 보장된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 도로 현재의 주거권 파괴 상태로 돌아간다. 주거권 파괴에 동조하면서 약간의 개선을 추구하는데 머무니까 여당과 정부 측으로부터 4년치를 한꺼번에 올린다는 공격을 받는다. 국민 80%에 이르는 주거권에 목말라하는 세입자, 예비세입자 대중들과 함께 권리를 외치면 여당도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2년제나 4년제나 주거권을 파괴하는 제도이긴 마찬가지다. 토라진 어린아이 달래듯이 정치해서는 안된다. 노동3권도 2년 보장제, 4년 보장제를 도입하자고 하지 않듯이 주거의 권리 역시 온전하게 보장해야 한다. 야당은 주거권을 위해 싸우고 세입자와 함께 외치고 입법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한다. 

지난 해 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강제로 이사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계속 거주권' 입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좀 높다고 생각하지만 5% 상한 규정도 담았다. 주거권 박탈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단비 같은 소식이다. 박주민 의원은 상가 세입자의 '계속 영업권'도 입법 발의했다. 민주당이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계속 거주권'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박의원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의당, 국민의당도 박 의원의 입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기 바란다.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제 세입자 당사자가 나서야  

이제는 세입자도 예비 세입자도 더 이상 참지 말아야 한다. 자기 권리 자기가 찾아야 한다. 촛불 혁명 정신이라고 하면 주권자가 스스로 '주권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세입자는 이 나라의 주권자이기도 하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나와 우리의 주권이 짓밟힌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할 때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걸 이번 촛불시민 항쟁이 잘 보여준다.  

지역별로 뭉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럿이 함께, 이게 안 되면 혼자라도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해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신은 최근 1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물어보고 "계속 거주권 입법을 위해 애써 달라",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 달라", "공공 임대주택 확대 공급을 위한 예산 방안을 내라"고 말하자. 반드시 녹음하고 기록한다. 다른 주권자에게 알린다. 동네방네 알린다. 주권자들의 반응을 가감 없이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자기 의식을 갖지 못하면 '휴면 상태의 주권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함께 주거권 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주거교육 기회도 만들고 주거 관련 책도 같이 읽고 신문도 같이 읽고 토론도 열심히 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뭉치기만 하면 위대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 계속 거주권 보장, 전월세 상한제 도입, 주거 급여 확대, 공공 임대주택 200만 호 확보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 

(최창우 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은 '집걱정없는세상'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