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잘 죽여주는 나라가 '복지국가'

2016. 12. 22. 13:0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웰다잉 플래너'로 활동하는 이유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을 잘 죽여주는 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럽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은 살아온 모습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서 고통 없이 신속한 죽음을 유도하는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정반대로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의 수업은 "잘 죽겠습니다!"라고 시작하고 "잘 살겠습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죽음을 고민하고 공부하며 찾아다니던 학창 시절, 조금 더 가까이 죽음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에 호스피스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얻은 깨달음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삶에 대한 상처나 원망, 두려움, 후회, 욕심이 많은 분들은 임종 하실 때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어렵게 돌아가셨다. 반면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간직하며, 기쁘고, 즐겁게, 나누며, 행복하게 사셨던 분들은 조금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 한 문장은 내 삶의 가장 큰 지침이 되었고, 사람들의 행복한 죽음을 돕게끔 이끌었다. 굳이 특정한 종교의 교리가 아니더라도, 심오한 철학의 논증이 아니더라도, 내가 바라본 죽음의 모습은 곧 삶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람들의 행복한 삶과 죽음을 돕는 웰다잉 플래너로서 활동하고 있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를 설립하여 1인 기업가로, 사회복지사로, 강사로 전국을 누비며, 고등학생에서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잘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고 있다. 

잘 죽으려면 현재를 잘 살아야 

누군가는 사는 것도 힘든데 죽는 것까지 굳이 준비해야 하냐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죽음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잘 죽도록 돕는 일은 곧 잘 살도록 돕는 일이다.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고, 소중한 것들을 추스르며, 우선 순위를 생각함으로 현재의 삶을 잘 살도록 돕는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살펴본다면, 사람들은 행복하게 죽지 못하고 있다.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의 타이틀이 익숙해진 지 오래이다. 2시간마다 3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세 모녀가 반지하 방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만성질환과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번개탄을 피워 함께 삶을 마감한 나라, 그래서 이제는 자살이라는 비극이 익숙해져버린 나라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자살은 주검이라도 추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1인 가구가 늘어감에 따라 죽어서조차 발견되지 못하는 고독사 역시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부산, 돌아가신 지 5년 만에 겨울옷을 껴입은 채 백골로 발견된 할머니의 죽음은 오늘날 죽음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던 사례가 아닐까? 골목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고시원에도 고시생이 거의 없다. 높은 보증금과 월세마저 부담스러운 이들이 한 평 남짓한 곳에 기거하고 있으며, 때론 고시원이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300여명의 아이들을 차디찬 바다 속 에서 꺼내지 못한 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죽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사회의 모습이 보였다. 

완화 의료 제도 정착 안 된 한국  

이런 비극적인 죽음을 설령 피한다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의 대다수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 치료에 의존하다가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차디찬 침대 위에서 쓸쓸이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임종 환자들의 진료비를 살펴보면 평생 써왔던 진료비의 절반을 임종 한 달 전, 4분의 1을 임종 3일 전 지출한다. 병원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이렇게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그렇다 보니 환자 보호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연명 치료를 거부할 경우 우리나라에는 호스피스 시설이나 완화 의료 제도가 보편화되지 않아 적절한 통증 조절 치료를 받을 수 없으며, 환자들은 결국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는 데도 결국 돈이 필요하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013년 폐원시키기 전 진주의료원 호스피스 완화 센터의 한 일반 병실. 진주의료원은 6인실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4인실을 제공했다. 말기 암 환자들은 이곳에서 전문 의료진의 돌봄을 받으며 임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렇듯 오늘날 우리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비참한 삶이 비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어가는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의료적 측면이 기준이지만,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서 발표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죽음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1942년 영국 복지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의 요람은 가벼워지고, 무덤은 허물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하필 죽음이냐고 묻는다. 수많은 복지 분야가 있다. 아동 복지, 청소년 복지, 장애인 복지, 여성 복지, 가족 복지, 심지어 동물 복지에 이르기까지 삶과 밀접한 모든 분야는 곧 복지가 된다.  

누구나 반드시 한번은 죽음을 맞이해야 함에도 오직 삶의 복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죽음 복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길 꺼린다.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곧 삶과 생명을 대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두렵고 무섭고 낯설지만, 죽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복지사로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그들이 잘 죽도록 돕는 일이 곧 잘 살도록 돕는 일이라고 나는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에게 전하곤 한다. 

생사학의 창시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했다. '죽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모습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복지국가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나라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나라, 잘 죽을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복지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다가, 천수(天壽)를 다 누리며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의 품안에서 고통 없이 미소 지은 채 편안히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잘' 살다가 '잘' 죽을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물음표, 말줄임표, 쉼표가 아니라 느낌표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나라,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닌 완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내가 꿈꾸는 복지 국가는 그러하기에 잘 죽여주는 나라, 웰다잉을 완성해주는 나라이다. 온 나라에 호상(好喪)이 가득할 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