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4. 13:56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공동운영위원장
국민건강보험 누적흑자액이 20조원이다. 곳곳에서 돈이 없다고 난리인데 어찌 여기만 풍족하다. 병원비를 모두 충당하고도 남아서일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계속 60%대 초반이다. 돈이 있는데도 병원비 지원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환자들은 직접 본인부담금을 내거나 사보험에 의존해야 했다.
반론이 등장한다. 고령화로 인해 병원비 지출이 빨리 늘어 몇 년 후에 흑자액이 모두 소진된다는 주장이다. 지금 보장성을 확대하는 제도 개혁을 하면 나중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설명이나 동의하기 어렵다.몇몇 시민단체들이 몇 년 전부터 ‘건강보험 하나로’를 주창해 왔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구체적 방안은 ‘100만원 상한제’이다.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모두 합쳐 한 해 100만원까지만 환자가 내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진다. 병원비가 총 500만원이면 내가 100만원, 공단이 400만원, 총 1억원이면 내가 100만원, 공단이 9900만원 부담하는 제도이다. 이를 위해 대략 연 15조원의 돈이 필요한데, 기꺼이 우리가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제안이다. 이전에는 공단의 여유 재정이 없어 차라리 보험료를 더 내겠다 했는데 어느새 흑자액이 20조원에 이른다. 사실상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 온 결과이다. 이제는 획기적으로 보장성을 늘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건강보험은 당해 지출을 당해 마련하는 부과방식 재정구조의 제도이다. 지금 당장 병원비로 고통받는 가입자들이 있는데 돈을 그냥 쌓아두겠다는 건 애초 국민건강보험의 취지에 어긋난다. 만약 미래에 지출이 늘어나면 그때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리면 된다. 이미 10가구 중 8가구가 사보험에 가입해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빈약한 탓에 더 많은 보험료를 사보험에 내야 하는 현실을 시민들은 잘 안다.
국민건강보험으로 병원비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사보험에 의지할 이유가 없기에 그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에 내면 된다. 이 방식은 기업이 절반을 부담하고, 소득에 따라 정률로 납부하므로 사회연대 가치까지 구현할 수 있다. 기본 내용만 제대로 알려진다면 가입자들이 흔쾌히 나설 거라 기대한다.
또 반론이 나온다. 환자들의 병원비 부담이 가벼워지니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재정 누수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실제 사람들이 병원에서 과잉 진료를 느끼고 있어 이러한 지적은 설득력을 지닌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과잉진료의 대부분은 비급여 진료에서 벌어진다. 앞으로 의료 성격을 지닌 비급여진료를 모두 급여로 전환하고 진료비 지불방식도 낭비를 방지하는 제도(포괄수가제나 진료비 총액제)로 개편해 의료행위의 총량을 관리하면 된다. 결국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도 걸림돌이다. 제38조 준비금 조항은 매년 전체 지출의 5% 이상 금액을 적립해 50%까지 조성하라고 명한다. 아무리 20조원을 비판해도 보건복지부가 끄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이다. 우린 법에 따라 적립하고 있다! 이 준비금은 예기치 않은 의료재난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재원이나 기준금액이 과도하다. 독일, 일본, 대만 등은 1~3개월분을 적립하는 데 반해 우리는 6개월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도 추가 지출은 0.2개월분에 그쳤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스스로 비상 감염병 사태, 경제위기, 부채충당금 등이 동시에 일어나도 약 3개월분이면 충분하다 밝히고 있다.
이제 제발 병원비 문제는 사회가 해결하자. 살림이 어려운 가구도 가계비를 쪼개 사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입자들이 요구하자. 적정 적립금만 남기고 흑자액을 모든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자고. 어린이 입원비의 경우 5000억원이면 민간 모금 없이 해결할 수 있다. 이후 필요한 재정은 사보험에 내는 돈의 일부만 국민건강보험으로 전환하면 된다. 현재 노동계와 직능단체들이 가입자 대표로 참여하는, 보장성과 보험료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다. 이 회의장에 찾아가 국민건강보험의 주인인 가입자들의 결의를 힘껏 전달하자. 정부와 국회도 의료대개혁에 나서라. 정부는 의료 성격의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는 작업을 실행하고 국회는 조속히 준비금 조항을 완화해야 한다. 대형병원, 사보험의 반발이 있더라도 병원비 해결을 열망하는 시민을 믿고 나서기 바란다.
여기 20조원의 흑자액이 있다.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절호의 기회이다. 가입자, 정부, 국회가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위해 모여 앉는 자리는 불가능할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131842005&code=990308#csidx74c6403f130f3258a70ef3446b6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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