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월 67만 원에 온갖 수모, 성추행에 도둑 누명에…

2016. 5. 26. 16:1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기요양보험법 개정, 왜 4년이나 걸렸나?




 [구슬기 남인순 의원실 비서관]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는데도 월 평균 임금이 67만 원에 불과한 직종이 있다.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가진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이다. 가정에 방문하여 어르신을 돌보는 재가 요양 보호사의 평균 월급은 67만 원, 시설 요양 보호사는 월 122만 원. 시간으로 따지면 최저 임금도 되지 않는다.

2008년 '노인 장기 요양 보험'을 도입할 때 제시된 수가 표준 모형에서 재가 요양 보호사의 월급은 140만 원, 시설 요양 보호사의 월급은 190만 원대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요양 보호사들은 2008년 제도를 도입할 당시 예측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

월급 67만 원을 받는 사람들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재가 요양 보호사들은 식사 보조, 목욕 등 어르신 돌봄 이외에 다른 가족을 위한 가사 노동을 수도 없이 요구받는다. 가족들을 위해 김치를 담는 것은 기본이고, 마당에 장독을 묻기 위해 땅을 파본 적이 있다던 요양 보호사도 있다.

도둑으로 의심 받는 일도 허다하다. 밍크코트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해고당한 요양 보호사가 있는가 하면, 해고당한 지 두 달이 지나 참기름을 가져간 것 아니냐는 전화를 받은 요양 보호사도 있다고 한다.

어르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가족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화 <시>(감독 이창동)에서 그려진 바 있듯이, 돈을 줄 테니 가슴과 아랫도리를 만지게 해달라거나, 자기 옆에 누우라고 하는 할아버지도 있다고 한다.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은 급격한 산업화와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 참여 증가로 과거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던 노인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담당하기 위해 2007년 4월 제정되었다. 2008년 7월부터 제도가 시행되었으니 올해가 제도를 시행한 지 만 8년이다.


▲ 2012년 9월 24일 국회 앞에서 "요양 보호사 노동 인권 개선과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여는 전국 요양 보호사 협회 회원들.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전면 개정 공동 대책위원회


그런데 요양 보험을 둘러싼 문제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9일 장기 요양 보험 제도의 공공성 강화와 요양 보호사 처우 개선 내용을 담은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왜 4년이나 걸렸을까?

2012년 6월 2일 시민 사회 단체와 남인순 의원이 주최하여 국회 도서관에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을 위한 행동 개시 출범식 및 토론회'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딱 4년 만에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4년 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법안이 통과하는데 4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을까?

19대 개원 직후인 2012년 6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요양 보호사협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참여연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시민 사회 단체는 '노인 장기 요양 제도의 공공성 강화와 요양 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공대위)'를 만들어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함께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당시만 해도 이 여정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토론회 개최 후 1년간 공대위와 남인순 의원실은 10여회가 넘는 간담회를 통해 공공성 강화와 요양 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을 만들어 2013년 7월 대표 발의했다.

이후 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은 2014년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에 상정되었으며, 복지위 법안 심사 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오제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간 요양 시설 재무 회계 규칙 신설' 내용과 함께 그해 12월 복지위 대안으로 통과됐다.

법사위에서 가로막힌 개정안

국회 복지위에서 아무런 논쟁 없이 통과된 법이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대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된 후였다. 복지위에서 '민간 요양 시설 재무 회계 규칙 신설 및 장기 요양 급여 중 일정 비율 이상 요양 보호사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이 복지위를 통과한 것을 뒤늦게 안 민간 요양 시설이 법사위에서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법사위 제2소위 위원들을 집요하게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 요양 시설 관계자들은 "낙선 운동을 하겠다", "법이 통과되면 자살하겠다"는 등의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등 법사위 제2소위에서 법안이 심의될 때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압박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안 저지에 나섰다.

노인 요양 시설은 사회 복지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과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로 나뉜다. 그런데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은 재무 회계 규칙이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은 재무 회계 규칙이 없어서 건강 보험 공단에서 지급한 장기 요양 급여가 요양 보호사에게 제대로 지급이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요양 보호사는 자신들이 가져가야 할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낮은 요양 보호사의 급여를 조금이라도 인상하기 위해, 2013년부터 요양 보호사에게 처우개선비 10만 원을 지급했는데 그조차 시설에서 요양 보호사에게 제대로 지급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에 김성주, 오제세 의원이 민간 요양 시설 재무 회계 규칙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남인순 의원이 장기 요양 급여 중 일정 비율을 요양 보호사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 내용이 민간 요양 시설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계속해서 계류된 것이다.

2014년 12월에 법사위에 상정된 법안은 제2소위에 3번(2015년 5월, 2016년 4월, 2016년 5월) 상정되어 논의되었으며, 많은 논란 끝에 2016년 5월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 운동을 시작한지 4년만의 일이다.

오랜 산고를 거친 만큼 제대로 시행돼야

국회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법안이 개정되거나 제정되고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행위자가 법 개정 혹은 제정을 위해, 혹은 이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이 중 지난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대안)'만큼 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격렬히 대치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이 법안은 공익과 사익, 시설장과 요양 보호사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지닌 것이다.

법 개정 과정에서 복지부는 의견 청취를 위해 17번의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은 법안에 반영되었다. 또한 앞으로 개정될 시행령과 시행 규칙에도 반영될 예정이다.

법 개정을 위해 4년이 걸린 법, 법 개정을 위해 복지부에서 17번의 간담회를 개최한 법.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법 개정을 위해, 그리고 법 개정을 막기 위해 격렬하게 대치한 법. 시민사회 단체가 똘똘 뭉쳐 결국은 통과시킨 법. 정책 행위자 간 다양한 역동의 결과물인 '노인 장기 요양 보험법 개정안(대안)'이 앞으로 제대로 시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