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병원비 국가 보장’ 어린이날 선물로 어떤가

2016. 5. 4. 15:1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엄마가 아이를 꼭 부둥켜안은 애절한 사진이다. “저는 절대 포기 안해요. 엄마잖아요” 제목이 적혀 있다. 4살 아들은 뇌병변 장애로 혼자서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한 달 치료비만 300만원.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해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덮치는 경련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근래 몇 번 경향신문에 어느 아동지원단체가 낸 모금 광고의 사연이다.


얼마 전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분에게서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 선생님이 난산으로 돌아가시고 아이는 장애를 갖고 세상에 나왔다. 주위 사람들이 모금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봤지만 집안이 무척 어려워야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을 문의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아버지는 병원비를 구하러 미친 듯이 다녀야 했고 그럭저럭 중간층에 속했던 집은 완전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이 죄인이 된 기분이란다. 민간 어린이복지재단에서 활동하는 분이 말을 이었다. 방송에 아픈 아이들 사연이 나가면 울먹이면서 돕고 싶다고 전화하시는 분들이 많다. 후원자 대부분이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어서 아름다운 나눔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론 아이들을 모두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란다. 이제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달라는 요청이다.

주위에서 아픈 어린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모두 마음이 무겁다. 오래전에 나는 딸아이가 이른둥이(미숙아)로 태어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매일 아픈 아이들을 만났었다. 병실 게시판에 건강하게 퇴원한 아이들의 사진과 감사 편지가 걸려 있지만 한편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도 많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오로지 딸아이만 생각했으나 사물함에 전달된 병원비 청구서를 보면서 걱정이 생겼다. 순식간에 수백만원이다. 옆 인큐베이터에 몇 달째 머물러 있는 아이 병원비가 궁금했으나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간호사가 알려준 미숙아 의료비 지원제도 덕분에 본인부담금 대부분을 해결했다. 보건소에서 지원서를 쓰면서 이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아이들을 포기하거나 가계가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소득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지원액에 상한이 있으며 선천성 이상아의 경우에도 6개월 입원 기간까지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는 제도이지만, 나에게는 아마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나라답다고 느낀 경험인 듯싶다. 그래서 모금 광고에서 본 아이와 엄마에게 더욱 미안하다. 커가면서 큰 병을 앓는 아이들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모금에 호소해야 하는 4살 뇌병변 아이의 엄마, 돈을 벌려고 곳곳을 다니지만 무너지는 가계를 어찌할 수 없는 아빠가 나일 수도 있는데 우린 계속 이 아픔을 방치해 오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나의 경우처럼 국가가 나서면 된다. 현재 15세 이하 어린이 입원비 중 급여와 비급여를 합쳐 부모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연 5000억원이다. 지난해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누적 흑자액이 17조원이다. 여기서 3%인 5000억원만 사용하면 어린이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어린이날을 기념해 엊그제 아동권리헌장을 선포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제정했단다. ‘아동은 필요한 의료를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도 명시됐다. 아동권리헌장을 알리기 위해 여러 행사도 진행 중이다.

그래, 국민으로서 나도 아이들에게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겠다. 정부도 제발 그러하길 바란다. 한달 전 기획재정부가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발족했다. 국민건강보험 흑자액이 쌓이니 운용 수익률을 제고하도록 자산운용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안건 중 하나다. 한쪽에선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의 관심은 어떻게 17조원을 굴릴까에 쏠려 있다.

내일은 어린이날.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이다. 모든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준비하자. 건강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로서,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으로서 국가에 요청한다. 아픈 사람을 지원하는 제도가 국민건강보험이다. 설령 긴급 의료 재난에 대비한 예비자금을 감안하더라도 돈은 충분하다. 이번에 선포한 아동권리헌장에 맞게 어린이 병원비를 지원하자. 아이들 가족, 어린이단체, 대통령, 정당, 건강보험공단 등 온 국민이 모여 ‘오늘부터 어린이병원비는 국가가 보장한다’고 선포하는 어린이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