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장애인 권리 보장법'을 제정하라

2016. 4. 22. 17:5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동정과 시혜를 걷어차고 권리의 시대로




 [김선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계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장애인권을 보장하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특히 광화문 지하역사에서는 장애 등급제와 부양 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24시간 농성이 4년째 진행 중이다.

장애 등급제 무엇이 문제인가

이들은 왜 이리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걸까? 우선 장애 등급제를 살펴보자. 장애 등급제의 역사는 '장애인의 날'이 만들어진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제정되고, 1982년 장애 등급 기준이 발표됐고, 1987년 장애 등록 제도가 시범 실시되었다. 이어 1988년 1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장애인 등록 제도가 시행되었고 1989년 '장애인 복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일본 방식과 같은 장애 등급제가 제도화되었다.

장애 등급제는 장애인 사회 서비스의 절대 기준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현행 장애 판정은 행정 편의적, 의료적 기준만으로 이루어져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에 부응하지 못한다. 

장애 등급 심사란, 의사가 판정한 장애 등급이 적절한지 여부를 서류로 심사하여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선 의료 기관의 의사가 장애 등급을 판정하는 구조에서, 심사 기준과 달리 주관적 판단이나 인정에 이끌려 판정을 후하게 해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사기단까지 동원되어 '가짜 장애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 등급 판정의 형평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애 등급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가짜 장애인을 적발한다는 이유로 진짜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도 받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의학적으로 비슷한 판정이 나더라도 개별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와 생활 방식 등을 행정 편의적으로 나눠 천편일률적인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부양 의무제, 연락 끊긴 가족 때문에 자립 못한다고? 

다음으로 부양 의무제 문제를 살펴보자. 부양 의무제는 근로 능력이 없는 자를 부양해야 할 의무를 '1촌과 그 배우자'에게 부여한다. 부양 의무자의 소득이 특정 기준을 초과하면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수급자가 되지 못하거나 지원이 제한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다. 가난이 굴레가 되어 대물림 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참담한 제도다.

노동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기초 생활 수급비가 유일한 소득인 경우가 많지만, 부양 의무자 기준이라는 독소 조항에 묶여 가족의 눈치와 여러 사회적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나면서 부양 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현실로 다가왔다. 시설에서 나와 기초 생활 수급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수십 년간 연락하지 않았던 가족이 집 한 채 있다는 이유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수많은 시민 사회 단체들은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와 최저 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부양 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등의 미온적인 대책만을 내놓았다.

 


▲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6 4.20 장애인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장애인의 정치 참여와 지역 사회 참여 보장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 권리 보장법 제정해야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이래로, 한국에서 장애인 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이후 지난 10년간 장애인 교육권 투쟁,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투쟁, 사회 복지 시설 비리 투쟁과 공익 이사제 도입 운동, 장애인 탈시설 운동 등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일어났다.

특히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으로서 의미가 크다. 중증장애인들이 '때로는 반인권적인 일도 발생하지만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장애인 생활 시설이 아닌 '위험한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이 생선처럼 펄펄 뛰는' 지역 사회로 나오겠다는 탈시설의 선언을 온몸으로 말한 시기였다.

이러한 투쟁은 중증 장애인들이 마이너스(-) 삶에서 영(0)의 삶을 살기 위해, 기본적인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래서 투쟁한 만큼 조금씩 전진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장애 등급제와 부양 의무제 폐지라는 장애인 문제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 문턱에 와있다.

이제 장애인들은 이 모든 요구를 담은 '장애인 권리 보장법' 제정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 법을 통해 장애 담론을 바꾸고 복지의 구조를 바꾸고자 한다.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이념과 구조의 전환이다. 우리는 의료적 기능 손상이 아닌 사회적 관계로 장애를 재정의할 것이다. 장애 등급과 가구 소득 따위의 임의의 행정 기준이 아닌,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기반한 개인별 지원 체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권리 보장과 권리 옹호이다. 그동안 철저하게 은폐되어왔던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들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장치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탈시설이다. 시설 보호는 오직 장애인의 무권리 상태와 가족의 고통에 의해 유지되고 강화되어 온 사회적 배제 장치였다.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자립 생활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대행당하고 보호받는 삶이 아닌 당사자의 필요와 요구에 기반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법은 혁명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재정의할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존 맥나이트의 말 그대로, 우리는 혁명을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