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구청에서 뛰어내린 동네 어르신께 이웃이 있었다면…

2012. 10. 30. 17:5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풀뿌리들이 서로 의지하는 마을공동체



박지현 은평구 초록길 마을도서관 관장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는 동네 큰 느티나무 옆에 초록길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 동네 시민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작은 도서관이다.

마을도서관 '공간'으로 이웃을 만나다

이 작은 도서관은 책을 읽고 빌려주는 '도서관' 기능만 하는 곳은 아니다. 학교 마치고 학원 외엔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고민을 나누며 커피 한 잔하는 엄마들의 카페이기도 하다. 독서, 그림, 바느질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소모임 공간이고 동네사람들이 '무언가' 논의하고 계획하는 작은 사랑방이기도 하다.

작년 겨울 문을 열었으니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책'을 매개로 우리 이웃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고 이를 통해 소통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우리의 꿈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이 작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서히 주인이 바뀌어가고 있다. 처음 시작했던 활동가 중심의 추진위원들이 아니라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 날마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주인이 되고 있다. '마을 공동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이 작은 공간을 통해 동네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웃고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귄다. '공간'이 가지는 힘이 참 크다.

▲ 서울 은평구 역촌동 초록길 도서관에서 소모임을 하는 주민들. ⓒ초록길도서관

나는 지금부터 이 공간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우리 동네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이름은 가명임).

두 아이 엄마, 무상보육의 틈새를 원망한다

도서관 바로 옆집에 살면서 매일 와서 살다시피 하는 선아엄마는 어린이집 문제로 고민이 참 많다. 지난 5월에 동생이 태어나서 네 살 먹은 선아를 어린이집에 맡겨야하는데 한 달 정도 어린이집을 못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좀 시설이 좋다 싶은 곳은 정원이 차서 대기해야했다. 영유아 무상보육이 갑자기 시행되면서 구립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어린이집도 꽉 찼다.

동생이 태어나기 한 달 전에야 자리가 나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만삭의 몸으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도서관에 들리곤 했다. 왜 우냐고 물으니 아이가 아직 적응하지 못해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밀어 넣고 오니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지금은 선아도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고 동생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지만 선아엄마는 날마다 몸이 아프고 힘이 들어 죽을 지경이란다. 젖을 먹이고 있으니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없고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으려니 손목이며 허리며 성한 곳이 없다. 시간제 베이비시터라도 불러 몇 시간이라도 쉬라고 했더니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했다. 아이를 낳으면 그 가정지원을 해줘야지 왜 어린이집을 통해서만 지원을 하는지 모르겠단다. 무상보육이야 찬성하지만 곳곳에 틈새가 많아, 집에서 고생하며 갓난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억울한 심정이다.

그래도 집 안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못 살았을 거라며 집 옆에 이런 작은 도서관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면서 정기후원금도 내고 맛있는 음식도 가져 오기도 한다.

무상의료? 말로 그치지 말고 실제 정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골목에서 가장 부지런한 여자는 권 선생이다.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도서관으로 와서 몇몇 주부들과 한자공부를 한다. 한자공부가 끝나면 이어지는 주부영어교실에 참가하고, 그 후엔 도서관에서 열리는 특강을 듣거나 공부를 하고 점심 먹고는 중국어를 배우러간다. 오후엔 아이들에게 '역사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하면서도 방송통신대 공부까지 하고 있다. 가르치는 건 일이고 배우는 건 휴식이고 즐거움이란다.

최근 권선생의 시어머니께서 올라오셨는데 인근 병원에서 인공관절수술을 하셨다. 병원비가 500만 원 가까이 나왔다. 항상 씩씩하고 밝은데 요즘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일분일초도 아껴 부지런히 일하지만 남편이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터라 쥐꼬리만 한 월급에 아직 전셋집 신세를 못 면하는 처지인데 병원비 부담이 오죽할까?

정치권에선 무상의료, 무상의료 하는데, 제발 말로만 그치지 말고 조속히 서민들의 병원비 걱정이 사라지는 그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루 5000원 생활비, 한 달 100만 원 아이 치료비

우리 도서관을 찾는 여자들 중 가장 알뜰한 이는 신영 씨다. 결혼하기 전에는 제빵사로 일을 했다는데 지금은 아이를 키우며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하며 주부영어교실도 참가하고 틈나는 대로 도서관을 찾는다. 이 이의 남편은 몇 년간 실직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몇 년간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녀가 전해주는 살림비법은 이렇다. 일곱 개의 봉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거기에 오천 원 씩 넣고 그 돈으로만 하루를 산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살았고 심지어 저축까지 했다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씩씩하고 성격 좋은 경자언니, 학교 다닐 때 껌 좀 씹었다며 무용담을 들려주곤 한다. 영화 '써니'에 등장할 법한 인심 좋은 이 언니도 별 걱정 없이 살 것 같지만 아이 때문에 보통 고생이 아니다. 인근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없어 다른 동네에 있는 구립어린이집에 매일 차를 태워 데리고 다닌다. 구립어린이집도 차량운행 좀 했으면 좋겠단다.

아이가 어릴 때 인지발달이 늦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장애라 할 수도 없고 발달과정에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경계에 있는 아이들은 오롯이 부모가 모든 치료비용을 다 부담해야한다.

심리치료, 놀이치료 등은 30분에 3만5000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한 달에 백만 원 이상 씩 몇 년간 치료를 했다고 한다. 둘이 벌어도 힘든 상황인데 아이 곁에 항상 엄마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맞벌이도 할 수 없고 더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선후보들, 믿을 수 없다!

마흔 둘의 나이에 둘째를 가진 수민엄마는 보육문제도 문제지만 노후가 걱정이란다. 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남편과 본인은 환갑이 된다. 아이들 키우며 노후준비를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국민연금을 내도 과연 늙어서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민엄마랑 이야기 나누는데 수민아빠가 찾아와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상보육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좋기는 한데 항상 불안하다고 한다. 조세제도를 바꾸지 않고는 재정의 한계가 있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며 지금 대선후보들의 공약들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세금을 아무리 잘 거두려 해도 큰 부자들은 법을 악용하여 빠져나가는 방법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결국 서민들만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수민엄마가 거든다.

'반찬 봉사 모임' 결성하다

날마다 와서 책 읽고 가던 앞집 사는 혜진엄마는 몇 달 동안 한 번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키가 작고 야위었고 뭔가 불안해보이며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한 번씩 큰 물병을 갖고 와서 정수기 물을 받아가기도 했다. 한 번은 엄마들끼리 모여 있는데 누구 아르바이트 할 사람 없냐고 권 선생이 이야기를 했고 멀찍이 떨어져있던 혜진엄마가 처음으로 본인이 하고 싶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자리를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그 후론 인사도 하고 다른 엄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한다. 그 집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다. 남편은 집을 나가버렸고 양육비나 생활비를 보내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돈도 떨어지고 쌀도 떨어지고 아이 장난감과 살림살이를 팔고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데 공과금도 밀리고 인터넷도 끊어졌다고 한다.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전세보증금 9000만 원이 있어 수급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당장 굶지 않고 살려면 전세금을 빼야하는데 이도 집 나간 남편 앞으로 되어 있을 것인데….

도서관에서 토요동아리 프로그램을 하는데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밥을 해먹는다. 혜진이가 왔기에 같이 먹자고 밥을 주었는데 여섯 살 아이가 어른 먹는 양으로 두 그릇을 먹었다. 집에서 제대로 못 먹는 듯하다. 혜진엄마의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어도 몸과 마음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남들 딱한 사정보고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권 선생이 먼저 제안을 했다. "우리가 조금씩 반찬 만들어서 도와주면 어때?" 하루 5000원으로 사는 신영 씨가 제일 먼저 동의한다. 알고 보니 그동안 어렵게 사는 청소년 아이들을 돕고 자원봉사도 해왔었다. 선아엄마는 반찬 만들 자신은 없다며 반찬값이라도 조금 보태겠다고 한다. 여기에 두 명의 엄마들이 더 동참하겠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관장인 나도 빠질 순 없지 않나? 이렇게 뜻이 모이다보니 이왕에 하는 것, 폐지 모으는 독거노인 몇 분도 살펴드리자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반찬 봉사모임'이 결성되었고 다음 달부터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복지의 사각지대, 우리 동네 어르신의 자살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 사정을 더 잘 안다고 했다. 다들 빠듯하게 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비록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을, 나의 노후를 책임져 주리라 믿음을 갖기 어렵다. 지금 당장 이웃의 아이가 굶주리고 있고 난방비가 없는 어르신들은 냉방에서 올 겨울을 보내게 될 터인데…. 현재 복지제도가 이들 하나하나 보살피지 못하니 그 사정을 아는 이웃들이 작은 맘이라도 모으기로 한 것이다.

며칠 전 60대의 남성이 생활고를 비난해 은평구청 위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이웃동네에 사셨던 분인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 구청을 선택했을 거라 한다. 그분이 관공서를 죽음의 장소로 선택한 것이 몇 푼이라도 받아쓰던 연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항의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족과도 떨어져 지하방에서 외롭게 살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그 분이 바로 우리 옆 동네 분이라 더욱 맘이 아프다.

복지국가, 풀뿌리 마을공동체와 함께 가야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만난 우리동네 사람들, 동네에 이런 작은 공간이 있어 서로 소통하고 생활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서로 의지하고 도우려한다. 죽음을 택한 그 어르신 옆에 의지되는 이웃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선택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마을공동체가 복원되고 이웃이 서로 소통하고 살아간다면 좀 가난해도 의지하며 살 수 있다. 사회복지와 풀뿌리 지역운동이 함께 가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또한 함께 모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이 사회의 모순을 인지한다면 그 것은 크든 작든 변화의 힘으로 분명 작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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