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헬조선' 청년의 이상한 스터디...찢고 밟고 치고!

2015. 12. 2. 17:2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취업하면 장땡? 이제는 일자리 안전망!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서 면접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과도한 스펙 경쟁이 낳는 사회적 비용에 우려를 표하는 정부 입장에 화답하며 면접과 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채용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취업 준비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 많은 입사 서류를 대기업 직원들이 언제 검토하고 있겠냐. 학벌이나 스펙을 안 본다는 건 거짓말이다"라는 불신의 반응이 들려온다. 스펙9종 세트와 더불어서 이제는 성품까지 자기 계발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압박 면접 : 또래 친구에게 더 깊은 상처를 안기도록 노력하라

취업 준비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압박 면접 후기'가 올라온다. 이런 식이다. "그 학력으로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나?", "외동이라는데 외동들은 원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면모가 많지?", "회사에 오래 다닐 타입은 아닌 거 같은데 해명해 봐", "기혼 여성은 조직 생활 어려운데 결혼할 거야?"

축의금 줄 것도 아니면서 결혼 계획은 왜 묻는지 모르겠다. 기업 측은 스트레스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 모멸적인 면접 방식이 기업과 청년에게 이로울 지는 따져 볼 일이다.

종로·신촌·강남 등 학원가에서는 압박 면접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스터디 모임이 성황리에 진행된다. 같은 처지에 놓인 취업 준비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업의 질문 트렌드를 분석하고, 면접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면접 스터디 그룹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파트너는 또래 친구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는 언사를 노골적으로 내지르면서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기업은 압박 면접 제도를 통해 청년들로 하여금 무분별하게 경쟁하고 서로에게 상처 입히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지시하지만,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지원자의 인성을 중요하게 여기겠다고 한다. 모순이다. 

지난 10월,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6개 금융 공기업의 공개 채용이 진행되었다. 460명을 채용하는데 4만2000명이 지원자로 몰려 평균 경쟁률이 거의 100대1에 육박한다. 6개 공기업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192 대 1에 달했다. 

경기도 산하의 10개 공공 기관의 경우 11월 통합 채용 시험을 통해 80명을 채용하는데 6885명이 몰렸다고 한다. 학업을 마치고 직업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청년들에게 경쟁률이라는 숫자로 담담하게 펼쳐진 취업 절벽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좌절의 연속이다.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이 분투가 유독 외로운 것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 박근혜 정부의 엑스칼리버? 

지난 9월 미디어리서치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집중해야 할 정책을 물었다. 39.2%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지목했다. 2위인 복지 정책 확대(13.4%)에 비해 3배 높은 응답률로 압도적인 1위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다수의 시민들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놓고 한국 사회를 압박하는 뇌관으로 진단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와서 청년, 미래 세대를 주요한 국정 과제의 추진력을 얻기 위한 포장지로 활용해왔다. 노동 개혁, 공적 연금 개혁, 대학 구조 조정, 국정 교과서 등 굵직한 중점 현안이 진행될 때에는 '청년(미래 세대)을 위한다'는 말이 반드시 포함된다. 가장 최근에 대통령이 국회에서 진행한 국정 연설에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무려 32번이나 등장했다. 


▲ 청년유니온, 청소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연대은행 토닥,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빚쟁이유니온(준) 등 청년단체가 지난 5월 22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공적 연금은 강화돼야 한다. 정부·여당은 청년을 인질로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프레시안(허환주)


물론 정부가 청년 문제를 두고 놀고 있지는 않다. 연간 1조8000억 정도를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편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정책의 내용이 청년이 느끼는 삶의 필요와 심각하게 괴리됐다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청년들을 '청년 인턴'과 같은 불확실한 단기 일자리로 내몰았다. 

고용노동부의 대표 사업인 취업 성공 패키지의 경우 취업 성공률은 70%에 달했지만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은 40% 수준에 불과하고, 전체 취업자 중 61%가 150만 원도 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로 진입했다. "이대로만 열심히 하면 저도 잘될 수 있는 거죠?"라고 묻는 청년들에게, "그건 모르겠고, 일단 취업률을 높여야 성과 발표를 할 수 있어"이라고 답하는 꼴이다. 

대학을 구조 조정하는 근거도 취업률이다. 정부는 경제 영역과 구분되게 학문의 공간이 갖는 특수성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고 졸업 정원의 몇 퍼센트를 경제 활동으로 내몰았는가를 두고 대학의 가치를 규정했다. 대학은 열악한 노동 시장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가혹하게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엑셀에 개별 함수로 기록 되어 정부에 취업률 성과 지표로 보고되고, 구조 조정을 하지 말라는 요청으로 쓰인다. 

또한 정년 연장에 조응하는 정책으로 제기된 임금 피크제는 어느 날 느닷없이 청년 일자리 창출 대책이 되어 있었고, 그 효과와 무관하게 청년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구하려면 부모 세대와 경쟁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파괴적인 고민에 빠져들게 하였다. 

정부가 말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 개혁 논리가 불편했던 까닭은 다른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야만의 논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 생존 법칙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일터의 대다수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가 엑스칼리버처럼 휘두르는 '청년 일자리 창출' 구호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일자리 창출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일자리인지, 어떤 삶인지 묻지 않는 취업률 타령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깊은 모멸감을 안기는 폭력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제는 일자리 안전망에 주목해야 

청년들이 압박 면접 스터디를 하면서까지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이유는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안정적인 생애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몇 만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언적 구호보다, 현존하는 대다수 일터의 노동을 인간답게 가꾸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한국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전 산업에 걸쳐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고용보험으로 대표되는 일자리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현재 고용 보험 제도를 통한 실업 급여의 수급 요건은 문턱이 대단히 높아,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생활 안정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비정규직 중에서 고용 보험에 가입하는 비율은 38.7%에 불과하다. 특수 고용 노동자도 제외된다. 무엇보다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 유일하게 '자발적 이직자(퇴사자)'를 배제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던 한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직장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자발적 이직이라는 이유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직장 내의 따돌림, 불합리한 업무 지시, 성희롱과 폭력,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 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든 상황들이 '자발적인 퇴사'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져 고용 보험의 보장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청년 세대를 열악한 노동 시장에 가둬놓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들에게 이직과 생활 안정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장기간 취업 준비를 이어오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현행 고용 보험 제도는 이들을 완전히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취업 성공 패키지 사업을 통해 이들에 대한 직업 훈련과 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취업률 높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사업의 실효성이 충분치 못하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청년들이 가꾸어 가는 다양하고 자발적인 활동의 시간(interval)을 보장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의 청년 수당 도입을 우리 사회가 의미 있게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부와 여당은 실업 급여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노동 개혁 입법으로 제출함으로써 일자리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서울시의 청년 활동 수당을 두고 "명백한 포퓰리즘 정책", "무분별한 무상 복지 사업"이라며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지방 정부에 페널티를 줘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디테일한 업무 지시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사회 진입에 곤란함을 겪는 청년들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지방 정부의 노력은 표 매수 행위로 규정하는 보수 진영의 태도는 참으로 고약하다. 

기존의 고용 보험 제도는 후퇴시키고, 새롭게 시도되는 사회 안전망은 결사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각자도생의 '헬조선'에서는 약자들이 서로 돌봄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란 말인가. 일자리 안전망을 둘러 싼 최근의 논쟁이 건강한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