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장애인 수급자 수 줄인다고요?

2015. 9. 23. 23: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2016년 장애인 예산안 진단


현근식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위원



국제 사회에서 장애인 정책은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들에 대한 인권 존중의 차원에서 수립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최초로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이 수립되었고 이후 5년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기 장애인 정책 계획이 마련되고 있다. 여기에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가 더해짐에 따라 장애인 정책은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 정책이 오랜 기간 차별받고 불평등을 겪어온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배분하는 예산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정책은 정부가 책정하는 예산의 양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매해 정해진 예산에 맞게 장애인 수급자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OECD 만년 꼴찌인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 

국제적인 비교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애인 관련 예산을 살펴보자. OECD 장애인 공공 지출 항목은 근로 무능력(Incapacity-related benefit)을 가리키는데, '장애로 노동시장에 완전 혹은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근로 무능력을 가질 때 국가가 부담하는 현금, 현물, 서비스 급여'를 말한다.

근로 무능력 급여는 장애인 관련 공공 지출과 국민 연금의 장애 연금, 산재 연금, 법정 감면 혜택까지 포함하여 계산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예산이라고 일컫는 장애인 관련 지출보다 훨씬 포괄적인 지표이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자료 '부문별 사회복지지출 수준 국제비교평가'를 보면, 우리나라의 근로 무능력 부문 예산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번뿐만 아니라 매년 그러했다. 한국의 근로 무능력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44%로 1위인 스웨덴의 5.09%에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OECD 평균 2.56%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국제비교지수로 비교해 본 결과 한국의 근로 무능력 부문은 20.83으로, OECD 28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 국제비교지수는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노인 인구, 국가 부채 등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복지 지출 수준을 평가한 것으로, 기준이 되는 국제 평균 지수는 100이다.




▲ 출처 :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그래프로 재편집(OECD 회원국 중 칠레, 멕시코,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터키, 미국은 설명변수의 결측치가 많고 국제비교지수 도출이 되지 않아 제외됨).


우리나라의 장애인 관련 지출이 OECD 국가 중 가장 바닥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 최근 20여 년간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증대하고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어 왔기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진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 대도시 중심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장애인 콜택시라 부르는 교통 약자 운송수단도 구축되었고, 활동 지원 제도를 통해 중증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거나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회 돌봄 서비스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미흡하다. 국제 비교 수치가 이를 보여주고 있고, 이는 한국의 장애인 복지 수준을 정확히 알게 해주는 경종이다. 

여전히 미흡한 2016년 장애인 예산안 

지난 9월 8일 박근혜 정부가 제출한 2016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아직도 장애인 정책은 빈양한 수준이다. 정부는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 “안정적 사회생활 유지를 위한 기본 소득 보장 및 자립․자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예산 편성의 주요 취지이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소득 보장은 물가상승률을 따지면 이전 해만도 못하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장애인 사업예산은 약 2조 원에 머문다. 보건복지부 총지출 규모 55조5653억 원의 0.36%에 불과하다. 이는 예년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예산 증액을 보면, 장애인 활동 지원 330억 원, 등급 심사제 운영 28억 원,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 90억 원, 일자리 사업 45억 원, 재활병원 건립이 70억 원, 발달장애인 지원 15억 원 등이다. 반면 예산 삭감은 장애인 연금 135억 원, 장애 수당 67억, 장애인 거주 시설 기능보강 70억 원, 장애 아동 가족 지원 18억 원, 장애인 의료비 지원 1억 원 등이다. 





▲ 2016년 보건복지부 주요 장애인 사업 예산(안). (단위: 억 원)


장애인 연금 수급자 수를 줄이다니… 

삭감된 사업으로 장애인 연금을 살펴보자. 장애인 연금은 5483억 원으로 135억 원이 삭감되었다. 정부는 장애인 연금 수급자가 2015년 35만8000명에서 2016년에는 35만1000명으로 7000명가량 줄었다고 설명한다. 장애 수당도 1246억 원으로 약 67억 원이 감액되었는데, 장애인 연금과 마찬가지로 수급자 수가 올해보다 약 1만4000명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지원액은 장애인 연금 기초 급여의 경우 20만3000원에서 20만5000원으로 2000원을 올렸을 뿐이고, 장애 수당도 재가 장애인 중 기초 수급자에게 지원하는 액수만 4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인상됐다.  

정부는 장애인 연금과 장애 수당의 수급자 수를 사상 처음으로 큰 폭으로 축소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등록 인구가 8000명가량 감소한 사실이 장애인 복지 수급자 수 축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정부는 말하겠지만 다음 두 가지 요인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장애인 등급 재심사에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장애인 연금·수당의 수급자 수를 축소했다. 장애인 연금을 받으려고 신청하면 지원 대상인 1, 2급 중증 장애인조차도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 등급 재판정을 하는데 이때 많은 장애인이 등급이 하락하거나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된다. 자료에 의하면 등급 외 판정은 2009년 한 해 전국적으로 794건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2만6838건으로 5년 사이 무려 33배나 증가했다.

둘째, 장애 등급제 폐지 후 새로운 장애 판정 제도의 개발이 여의치 않거나 날림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장애 등급제 폐지 후 새로운 장애 판정 제도에는 기존의 의료적 손상만을 기준으로 삼는 장애 모델 대신 사회적 장벽과 차별로 인한 장애 정도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판정 제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오히려 사회적 요인보다 의학적인 노동력 상실의 정도를 중심으로 장애 판정 기준을 맞추려고 해 전국적인 장애인 인구가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장애인의 개념에 사회적 요인을 중심으로 삼아 사회서비스를 받아야 할 장애인 범주를 넓혀온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사실상 장애인 복지 지출 예산에 맞춰 수급자 수를 자르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 더 늘려야 

반면 중증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 예산은 약 5009억 원으로 올해보다 330억 원이 늘어났다. 정부는 중증 장애인의 활동 보조 가산 급여를 신설해 약 126억 원을 편성해 최중증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질을 높이고 수급자 수도 6만1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장애인에게 만족도가 높은 활동 지원 예산 증액 편성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증액으로 현재 초미의 관심사인 최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 보조 24시간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중증 장애인이 활동 보조인이 없이 혼자 있다가 사망하는 참변을 예방할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활동 보조원으로 일하는 돌봄 노동자의 급여의 현실화도 시급하다. 현재 활동 지원 수가(활동 보조인이 1시간 일하고 받는 급여)는 월 평균 209시간을 일해도 약 120만 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 예산은 4370억 원으로 90억 원이 증액되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생활시설) 입소자의 수가 2만4776명으로 약 110명이 늘고, 지원 단가도 연간 2622만3000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정부의 탈시설 자립 생활 지원 중심의 장애인 정책에 어긋나는 예산 편성이라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장애인 생활시설 입소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2016년 보건복지부 예산에는 탈시설 정책의 기조가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16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을 방문해 작성한 방명록. ⓒ청와대


발달 장애인 지원, 법은 제정되었으나… 

마지막으로 발달 장애인 지원 예산안을 보자. 2014년 제정된 '발달 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정부는 2016년 해당 예산을 55억 원을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의 세부 내용을 보면 공공 후견 지원, 부모지원, 가족 휴식 지원 등으로 발달 장애인에 대한 종합적 지원 정책과는 거리가 있고, 예산액 규모도 실효성이 의문시될 정도이다. 지적 장애인이나 자폐증 장애인이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사회 보장이 전무한 현실에서 발달 장애인의 보편적 시민의 권리 보장은 아직도 발걸음도 떼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보건복지부 2016년 장애인 예산 편성에서 장애인의 삶의 질을 기본적으로 변화시킬 정책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장애인 소득 보장 정책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오히려 퇴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 보장이 미흡해 차별을 받고 있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그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관련 공공 지출의 국제적인 평균 수준을 따라가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크고, 격차를 단기간에 메울 수 있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 예산 확충하고 증세에도 나서라 

장애인 예산의 확충은 장애인계에서 오랜 기간 동안 투쟁해온 사안이다. 역대 정부는 장애인계의 거친 요구에 해마다 자연 증가분의 예산을 편성하거나 장애인 당사자가 요구하는 정책을 동정적이고 시혜적 입장에서 신설하는 방법으로 대응해왔다. 그 결과 장애인 정책은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미봉책에 머물러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재정 형편을 이유로 장애인 정책을 현 상태로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축소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친다.  

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수준의 복지 지출을 늘리고 장애인 관련 공공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체 예산 편성에서 장애인 예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면 불필요한 지출 개혁뿐만 아니라 조세 부담률을 올리는 증세에도 나서야 한다. 정부가 복지 지출을 확대하리라는 신뢰만 쌓이면 장애인들도 세금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소득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한 조세 정책을 펼친다면 적극적으로 따를 용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