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6. 14:14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ㅣ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시절부터 존재했으나 뒤늦게 우리 사회에 알려졌다. 5년 전,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으로 이름을 바꾸고 금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릴 때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비판했고 지난 총선에서 공약까지 내걸었으나, 여당이 되어서는 정부 몫이라며 뒤로 물러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대통령령만 고치면 해결되는 일이다.
정부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고수하는 근거는 공공부조 복지의 ‘보충성’ 원리다. 생계급여는 정부가 정한 기준선과 가구 소득을 비교해 부족액을 보충해주는 현금복지이기에 새로 기초연금을 받거나 인상되면 그만큼 삭감돼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현금복지는 보충성 원리로 설계된다. 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운용하면 오히려 어려운 사람이 차별받는다. 기본 원리로 삼되 대상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연금이다. 하위 70%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받지만 기초생활수급 노인 40만명은 받은 만큼 생계급여가 깎이기에 최종 가처분소득은 그대로다. 기초연금 때문에 오히려 최빈곤 노인과 일반 노인 사이 소득 격차가 커져 버린다. 청년 현금복지에서도 그렇다.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을 시행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는 사실상 혜택이 없을 거라고 안내하고, 서울시는 올해부터 아예 기초생활수급자를 청년수당 대상에서 제외했다.
어떻게 해결할까? 생계급여를 산정하는 가구의 소득인정액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된다. 지금도 아동수당, 보육료 지원, 장애인연금, 국가유공자·참전유공자 수당 등은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서 예외 소득으로 처리돼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은 예외로 설정하기 어렵다고 반론을 편다. 아동, 장애인이 있는 가구는 추가 지출이 생기므로 아동수당, 장애인연금을 별도로 제공하지만 노인 가구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노인 가구의 지출 특성도 논란의 주제이지만, 나는 ‘노인 간 형평성 확보’만으로도 충분히 예외의 근거가 된다고 판단한다. 아동수당이 추가지출을, 유공자수당이 국가 공헌을 이유로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제외되듯, 기초연금도 노인 간 사회수당의 형평성을 위해 따로 주면 된다.
우리나라 복지체제 발전 과정의 특징에 주목하자. 오랫동안 취약계층 복지와 사회보험이 주축이었으나 근래 사회수당형 현금복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수당형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착된 이후 특정 인구 집단에 일괄로 제공되는 현금복지이기에, 보충성 원리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기초연금·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처럼 가장 어려운 계층이 혜택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생긴다. 사회수당형 현금복지는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빼는 게 바람직하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에서 이 문제가 풀리리라 예상했다. 지난 총선 공약이 그랬고, 취약계층을 중시하는 포용국가를 주창하니 당연한 기대였다. 그래서 정부의 태도가 더욱 당혹스럽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해결하라 촉구하면 비수급 빈곤층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대답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가난함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방치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포용국가 정부가 두 가난한 집단을 두고 우선순위를 따질 줄이야.
학계 일부에서는 문제는 인정하되 해법은 생계급여 인상이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생계급여가 오르면 기초연금을 공제해도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니 이게 정공법이라는 설명이다. 맞다. 이러면 깔끔하다. 그런데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전체를 손봐야 하는 대공사다. 이 방향으로 개편 작업을 하더라도 지금 매달 발생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개선하는 조치가 먼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장기 과제를 핑계 삼아 현재의 문제를 방기하는 꼴이 된다. 실제로 생계급여 인상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학계에서 나온 해법이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진척되었는가? 내년까지 3년간 생계급여 평균 인상률이 2.06%로, 박근혜 정부 3.38%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도 계속 ‘생계급여 인상론’만 되풀이 말할 건가?
결국 예산의 문제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30만원을 별도로 보장하려면 연 1조6천억원이 든다. 보건복지부가 발걸음을 주저하고 뒤에서 기획재정부가 브레이크를 거는 이유다. 정부에 요청한다. 거꾸로 생각해달라고. 예산 규모가 큰 건 그만큼 많은 노인이 설움을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지만 최하위 계층의 분배가 개선되지 못하는 배경에도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의 취지에 맞추어 최빈곤 노인들의 가처분소득 증대는 내수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 심의가 막바지로 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가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10만원이라도 부가급여로 제공하자며 약 4천억원의 예산을 늘렸다.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았지만 일부라도 예산으로 개선하려는 국회의 노력이다. 먼저 이 예산이 무사히 예결특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 바란다. 이어 정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학계는 사회수당형 현금복지가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의 복지 체제에서 가난한 사람의 공공부조가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본격 연구하기 바란다.
[이슈논쟁] ‘줬다 뺏는 기초연금’ 논란
<편집자주>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결산소위원회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상의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동시에 받는 노인에게 부가급여 형태로 내년부터 월 10만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65살 이상 노인 중 하위 70%에 속하는 526만명이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약 40만명의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 30만원을 받더라도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당하므로 사실상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정부는 공공부조의 기본 원리인 ‘보충성’을 앞세워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에서 그만큼 공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켜왔으나, 결과적으로 더 가난한 노인들이 기초연금에서 배제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것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국회에서 심의된 예산안은 일종의 차선책으로 나온 중재안인데, 앞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 문턱까지 넘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에도 예결위 문턱을 넘지 못한 전례가 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76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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