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또 속는 거겠지?

2019. 11. 20. 09:4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내년 예산안을 정하는 정기국회가 보름도 남지 않았다. 올해도 국회 마지막 날까지 우리 사회 가난한 어르신들이 애를 태우실 듯하다. 내년에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월 10만원씩 기초연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 합의가 본회의까지 무사히 통과할지 걱정돼서이다.

 

왜 부가급여 형태로라도 10만원을 지급한다는 걸까? 기초연금은 하위 70% 노인에게 제공된다. 당연히 최하위에 속하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받는다. 그런데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만큼 금액이 삭감된다. 기초연금으로 30만원 받고 생계급여에서 30만원 깎이는 방식이다. 이러면 일반 노인은 기초연금 인상분만큼 소득이 늘지만,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기초연금이 아무리 올라도 최종 가처분소득은 늘 그대로이니, 오히려 노인 사이에 역진적 격차가 커진다. 이에 지난주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가 기초생활수급 노인 40만명이 사실상 기초연금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으니 10만원이라도 따로 지원하자고 합의한 거다.



지금까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계속된 근거는 공공부조의 ‘보충성 원리’이다. 생계급여는 정부가 정한 기준선(중위소득 30%)과 가구소득의 차이를 보충해 주는 현금복지이기에 기초연금 수입이 생겼으니 생계급여에서 그 금액을 공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물론 보충성은 공공부조 복지의 기본원리이다. 그렇다고 이를 경직적으로 운용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자리 잡은 후 사회수당형 복지가 도입되는 경우이다. 일반 계층은 신규 현금복지를 온전히 누리는데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보충성 원리에 의해 가처분소득이 제자리에 머물러 형평성 문제가 초래된다.



이는 근래 청년 현금복지에서도 발생한다. 구직청년에게 제공하는 청년수당도 생계급여에서 그 금액이 깎여버리니 기초생활수급 가구의 청년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를 아예 청년수당 신청 자격에서 빼버린 이유이다. 경기도의 청년 역시 청년기본소득을 받아도 같은 금액을 생계급여에서 삭감당한다. “저 친구들은 받을 수 있고 왜 나는 못 받을까. ‘가난한 건 죄일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뉴스에서 들은 어느 청년의 말이 가슴을 누른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수당형 복지가 발전하고 있다. 이 제도에 보충성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계층 간 가처분소득의 격차가 커진다. 우리가 무심히 방치했으나 당사자 빈곤 노인들의 외침으로 세상에 알려진 일이다. 복지가 빠르게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꼭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나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가 전액은 아니지만 10만원을 지급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부족하나마 응답한 셈이다.



애초 누려야 할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도 빈곤 노인들이 본회의 통과를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약속을 어기는 일이.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을 20만원으로 올리면서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 감액 방식을 도입했는데,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겐 감액을 적용하지 않고 전액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빈곤 노인들은 이를 자신에게 기초연금 혜택이 제공된다는 의미로 이해했으나 결과는 전액 지급, 전액 삭감이었다. 어르신들이 한탄한다. 아니 그럴 거면 왜 우리에게 전액 지급한다고 말하는가?



정치권이 움직였다.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을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해 최빈곤층 어르신에게 기초연금을 보장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총선 결과 민주당은 제1당이 되었고, 같은 공약을 내건 국민의당, 정의당까지 합치면 의석수가 과반을 넘었으며, 이어 대통령선거 승리로 행정권력까지 얻었다. 그래도 정부와 여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대통령령 개정으로 해결되는 사안인데도 말이다.



포용국가 정부가 이럴 수 있나요? 올봄에는 어르신들이 청와대 앞까지 폐지 리어카를 끌고 행진하였고 언론도 절박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침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월 ‘올해 업무계획’에서 ‘전액은 아니더라도 일부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역시 여기까지다. 후속 조치는 없었고 내년 정부 예산안에도 관련 항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국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작년에도 보건복지위원회가 10만원 지급을 의결했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삭감해버렸던 기억 때문이다. 지난해 일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내년은 총선이라 선심성 지역예산 쪽지가 더 많을 텐데, 우리 10만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르신이 자꾸만 물으신다. 또 속는 거겠지?


* 출처 : 경향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2975640

 

[정동칼럼]또 속는 거겠지?

내년 예산안을 정하는 정기국회가 보름도 남지 않았다. 올해도 국회 마지막 날까지 우리 사회 가난한 어르신들이 애를 태우실 듯하다. 내년에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월 10만원씩 기초연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보건복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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